
여전히 당신과 함께
| 10_집.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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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한번 만났던 이름도 모르는 남자가 우리 집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당당하게 들어온 상황에는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여주는 이런 상황에 대한 대처법을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태형의 속을 알 수 없는 새카만 눈동자에 아까 그 자세 그대로 얼음처럼 굳어버린 여주의 흔들리는 동공이
어스름히 비춰졌다.
"ㅇ, 어떻게..."
여주가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꾸욱 깨물었다가 간신히 입을 떼자, 태형은 싱긋 가볍게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다 방법이 있죠.ㅎ"
이걸 대답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왜.. 나한테 이러는거에요?"
계속해서 경계심을 풀지 않는 여주를 보며, 태형이 약간의 거리를 두며 해치지 않는다는 의사를 내보였다.
"일단 진정하고, 난 '아직' 여주씨를 어떻게 할 마음이 없거든."
"..아직, 이라면..."
여주가 겁먹은 얼굴로 불안한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아직 주저앉아있는 상태로 조금씩 뒷걸음질을 쳤다.
그 모습을 보던 태형은 피식 웃으며 여주에게 천천히 다가와 벽으로 서서히 밀어붙이더니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여주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그건.. 여주씨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지.ㅎ 허튼 짓하면 조금 다칠 수도 있고."
그러고는 다정한 척 웃으며 여주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더니 집 안쪽으로 더 들어갔다.
"와- 집 좋네, 여주씨. 돈 많은가 봐?"
"....."
태형이 거실을 둘러보며 여주에게서 등을 돌린 상황. 여주가 정국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최적의 순간이었다.
여주는 황급히 등 뒤로 숨겨두었던 핸드폰을 꺼내 정국에게 자신의 지금 상황을 최대한 요약한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집.V]
여주는 황급히 메시지를 보내고 다시 핸드폰을 숨기며 태형이 있는 뒤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런데-
"-뭐해?"
"헉-!!"
태형은 어느새 집구경을 마쳤는지 여주의 바로 뒤에 와서 서있었다. 놀란 여주는 입을 뻐끔거리며 동그란 눈동자를 구슬처럼 도르륵 굴렸다.
태형이 자신의 메시지를 본 건지 못본 건지 알 수가 없으니 여주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할지 몰라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버렸다.
"어.. 그게... 아무것도 아ㄴ.."
"전정국?"
아, 봤구나. 봤어. 봤다고.
아까보다 눈에 띄게 표정이 굳은 태형을 바라보며 여주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떠오르는 생각은 하나 뿐이었다.
'X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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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컷 독한 술을 퍼붓고도 얼굴이 조금 붉어진 것 외에는 평소와 달라진 것 하나 없이 태연한 윤기가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왔고 자신의 집앞에서 기웃거리는 한 여자와 마주쳤다.
"..뭐하세요?"
"민윤기 씨, 이신가요?"
윤기는 여자가 누구 집을 잘못 찾아왔나 생각하고 있었지만, 곧이어 그녀의 입에서 들려오는 자신의 이름에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아?' 하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민윤기 씨 당신을 찾아왔어요. 잠시 들어가서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뭐.. 들어오세요."
윤기는 자신에게 할 이야기가 있다는 그 여자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문을 열고 함께 들어갔다.
그 여자가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는 자신의 손을 뚫어지듯 쳐다보며 미소를 짓고있는 것도 모른 채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