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라는 선 (범규)

ep1. 언제나 옆자리

"최범규 학교 왔대!!!!"

그 말에 여자애들이 우르르 정문으로 뛰어갔다.
언제나 그렇듯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인사를 받으며 검도용 검을 질질 끌며 들어오는 범규가 나를 발견하곤 사르르 웃음을 지었다.

"아.는.척.하.지.말.라.고"

작게 입모양으로 말하자 범규가 순식간에 표정을 무표정으로 바꿨다.

"너네도 참..피곤하게 산다"
"쟤랑 아는 척하면 더 피곤해"
"그러다 쟤 여친이라도 생기면 어쩔려고. 둘이 진짜 아무감정 없어? 최범균 엄청 서운해하던데"
"쟤랑 6년지기야. 그런 사이도 아니고 난 남자친구 있어"

그렇다.
나와 저 눈에띄는 검도부 범규는 초등학교때부터 친한 6년지기 소꿉친구이다.

...


"아 짜증나 울보 옆자리야"

초등학교 시절,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애였다.
외동에 남부러울것 없게 큰탓에 학교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했고 소심한 성격탓에 매일 울곤 했으니까.
남자애가 앉으며 큰소리로 말했다.
그때 내 앞자리였던 범규가 눈이 마주치곤 내 옆자리인 남자애에게 말했다.

"나랑 바꿀래?"

늘 인기좋고 친구도 많은 그 애는 흔쾌히 바꿔주겠다고 했고 원래 옆자리였던 남자앤 냉큼 바꿨다.
나 때문인가 싶어서 고개를 숙이고 울음을 참던 그때 그 애가 바꾼 남자애에게 말했다.

"유지! 난 최범규!"

손을 내미는 범규의 손을 잡자 범규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

"잘 지내보자 짝꿍"

...

초등학교 3학년,그렇게 범규의 다정함으로 시작된 친구관계는 어쩌다보니 고등학교까지 이어졌다.
초등학교에서도 중학교에서도 인기가 좋았던 범규는 어째서인지 늘 나에게 붙어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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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지!! 나 배고픔!!"

반이 갈려도 늘상 점심시간만 되면 반에 찾아오곤 했으니까.
그렇게 자그마치6년이란 시간동안 늘 범규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내옆에 있었다.

"최범규 좀 조용히해 왜이렇게 목소리가 커"
"배고프다고오오오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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찡찡대듯 내 어깨를 잡고 흔들어대는 범규에 내가 결국 웃으며 말했다.

"알겠어 ㅋㅋㅋ 가자"

항상 붙어있는 둘을 보면 늘 따라오는 말이 있었다.

"둘이 사겨?"

라든지

"유지랑 범규는 좀..안어울린다 ㅎㅎ"

라던지.
여자애들의 경계와 질투를 중학교 내내 받았다.
결국 더는 이런 피곤함과 요란함을 갺고 싶지 않았던 난 범규에게 여름방학때 말을 꺼냈다.

"저기.. 범규야" 
"왜? 나랑 고등학교 같이 올라가니까 막 세상이 아름다워? 고맙다고?"
"겠냐?"

귀여운척을 하며 쭈쭈바를 먹는 범규에게 정색을 하며 말하자 범규가 웃었다.

"ㅋㅋㅋㅋ"
"아니 이게 아니라...야 우리 모른척하자"
"고등학교에서?"
"응"

장난끼 넘치던 범규의 표정이 굳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너 옆에선 공부가 안될것 같기도 하고 눈에 너무 뛰잖아. 나 꿈이 있는거 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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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무 시끄러웠어? 그냥 조용히 같이 공부하면 안되는거야"

"너가 시끄럽다기보단..넌 눈에 뛰잖아. 그리고 같이 있으면 항상..그런게 있어. 그러니까 좀 모른척하자"
"..알았어"

서운한 표정은 감출 수 없었지만 범규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우린 학교에선 모르는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손절한건 아니였다.
남자친구와 만나지 않을땐 학교에서 집까지 범규가 데려다 주었고 가끔은 집에 놀러와서 몇시간동안 놀다가 가기도 했으니까.
속상한 일이 있을땐 누구보다 먼저 달려와서 위로해주기도 했으니까.
친구이기에 좋은 관계, 영원해야만 할것 샅은 관계였다.
오늘도 하교후 카페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학원가기전 예습을 하던 내 앞에 범규가 앉았다.

"고유지 예습중?"

내가 안보고 그냥 끄덕이자 범규가 테이블에 엎드리며 내 줄 이어폰을 손가락으로 꼬았다.

"맨날 공부하면 안지겨워?"
"안지겨워 매일매일 해도 모르는게 수십개가 있어"
"유지야 사람은 알지 못해도 행복해"
"아는게 힘이야"
"모르는게 약이란 말도 있어"

둘은 눈을 마주치고 웃음을 터트렸다.
난 줄 이어폰을 빼고 범규에게 말했다.

"여기서 뭐하고 있어?오늘 시합있다더니"
"안그래도 엄마가 여기로 오는중"
"놀아달라고 온거야?"

범규가 대답하려는듯이 입을 벌렸다가 다시 다물었다.
아까의 밝은 표정이 사라진채로.
그리고 내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고유지 여기서 뭐하냐?"

허스키하고 남자치곤 높은 목소리. 
내 남자친구인 남진구였다.

"오빠?"
"또 얘랑 있냐?"
"아냐 우연히 만난거야"

범규와 내가 함께있는걸 싫어하기에 내가 황급히 말하자 범규가 팔짱을 끼더니 입꼬리만 슬쩍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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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하지만 남진구는 가볍게 무시하곤 나에게 물었다.

"내일 시간 있냐? 영화나 보게"
"아..나 내일 학원 9시에 끝나는 날인데.."
"아씨..이미 예약 했는데"
"미안 얼마였어?"
"5만원"

5만원.
어처구니 없는 숫자였다.
vip좌석을 빌려도 그정돈 아니겠다.

"다음에 같이가자 미안해 오빠.. 학원 빠지면 혼난단 말야"
"걍 친구 한명 데려가서 보지 뭐 내일 빼곤 나 시간없어"

그렇게 남진구가 떠나고 범규는 일어나며 물었다.

"영화관 티켓이 어떻게 5만원이야 도데체. 뭐 어디 멀리가서 보고 오나"
"요즘 데이트도 잘 못했는데.."

시무룩해진 나를 보고는 범규가 한숨을 쉬며 물었다.

"내일 출첵하고 튀던지"
"어차피 걸릴걸"
"내가 너 아파서 먼저 갔다고 해주면 돼잖아"

그 생각을 못했다는듯이 내가 쳐다보자 범규가 웃었다.

"데이트 재밌게 하고와. 시무룩해 지지 말고"

왠일로 응원을 해주나 싶어서 물었다.

"왠일로 너가 도움이 돼?"
"너 시무룩해져있는게 싫어서. 나 간다?"

조금 감동을 받은 내가 웃으며 말했다.

"고맙다!! 시합 화이팅!!"

그렇게 '친구'로의 마지막 날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