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다시 만난 순간,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널 다시 만난 순간,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모두들 대피하십시오. 모두들 대피하십시오.>


갑자기 아파트 집집마다 전부 방송이 켜져 저 말만 계속해서 반복이 되며 온 동네를 시끄럽게 하고 있었다.

사실 저번에 어떤 꼬마아이의 장난으로 이런 방송이 나온 적이 있었기에 난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고는 옆집에 살던 내 부랄친구 김태형한테 찾아갔다.


"야 김태형, 문 열어."


저 놈 또 궁시렁 대면서 부시시한 얼굴로 대문을 열어주며 날 집 안으로 들여보내준다. 맨날 저래서 이제는 익숙하다.


"또 왜 왔는데에..."


이미 잠옷차림과 부시시한 얼굴, 세수도 안 한 얼굴에다가 얼마나 잤는지 부어있는 눈을 봐서도 '아 얘 방금 일어났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 늘어지는 말을 듣자마자 바로 확신했다. 김태형 방금 일어났다.


"아니 집집마다 이렇게 시끄러운 방송 틀어져서 다들 이 말 저 말 다 하고 있는데 넌 방송 소리도 안 들리냐?"


"지는 자고 있으면 내가 소리를 질러도 못 들으면서."


응. 사실이다.


"그건 그렇고, 넌 세수나 하고 와라...;"


"응 니 똥 굵다."


아직도 시끄럽게 들려오는 방송 소리가 거슬리긴 하지만 내가 끄고 싶어도 못 끄는 걸 알기에 그냥 포기하고 세수하러 간 김태형을 기다릴 겸 베란다에 잠깐 나가 창 밖을 구경하는데,

이게 뭐지? 밖에 무슨 좀비 영화를 찍나 진짜 너무나도 살벌하게 사람들을 물어뜯으며 고통에 가득 찬 목소리로 앓는 사람들이 널려있는 걸 봐버렸고, 난 그제서야 사태를 파악하고 세수를 거의 다 마친 김태형을 화장실에서 데리고 나와 얼른 짐부터 싸라고 했다.


"갑자기 짐은 왜 싸는데?"


"조용히 하고 무기같은 거 칼 같은 거 그 뭐냐 아무튼 가장 필요한 것만 챙겨 아주 조금만."


김태형 역시 날 미친놈인가 하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평소같으면 뭘 쳐다보냐 이런 식으로 말을 걸었겠지만 지금은 사태가 심각한 걸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폰이랑 보조배터리, 라이터 등 가장 필요한 거 몇 가지만 가방에 챙겨넣어 김태형을 소파 위에 앉혔다.


"지금 밖에 좀비 있다."


이 새끼 역시 내 말을 안 믿는 눈치다. 내가 생각해도 미친새끼처럼 보이겠지만 지금만큼은 정말 진지하게 말을 이어갔다.


"베란다로 봤었는데 밖에 완전 피바다 급으로 난리였고, 만약을 대비하기 위해서 짐 싸라고 했던 거니까 내 말 못 믿겠으면 베란다 가서 내려다 보던지. 15층이라 아주 잘 보이니까."


김태형 아직도 안 믿기는지 진짜로 베란다에 나가 창문으로 밖을 내려다 보더니 완전 굳어버렸다.


"아니 이게 뭐임."


얼빠진 얼굴로 뒤돌아 날 바라보더니 겁먹은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는 꼴이 보인다. 웃기지만 웃을 상황이 아니다. 일단 혹시 모르니까 우리 집으로 김태형을 데리고 와서 지낼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본다.


"나랑 우리 집으로 가서 같이 지내자."


"? 옆집이잖아;"


"바보냐? 너 혼자 있다가 위험한 상황이 되버리면 너 혼자서 생존할 수 있겠냐?"


"아 맞네"


하...역시 공부는 잘하지만 이런 대가리는 안 돌아가는 김태형이 너무나도 고답이다. 답답해서 빡치긴 하지만 일단은 김태형 집에 있는 음식이나 쓸만한 것들을 전부 다 우리 집 안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이걸 언제 다 옮겨어..."


"궁시렁 거리지말고 빨리 옮겨라, 좀비 올라오겠다."


"네네 전정국 님 아주 잘나셨어용"


짐을 다 옮기고선 힘들긴 힘든지 소파 위에 풀썩 앉아 잠시 눈을 붙였다.

잠이 쏟아졌던 건지 3시간이나 자버린 것 같다. 그래서 김태형은 어디있지?
눈 앞에 안 보이는 김태형을 찾기 위해서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두리번 거려봤지만 거실에는 없는 것 같았다. 결국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내 방 앞으로 걸어가니 약간 신음 소리가 들려오길래 방문을 조용히 조심스럽게 열어봤더니...


"으응, 정구,가앗...! 하읍, 흐응... 조아 하읏,-"


김태형 뒤 쑤시고 있다.

처음 본 모습이라 놀라긴 했지만 저 곱상한 얼굴로 내 이름을 부르면서 물이 질질 흘러내리는 뒤를 쑤시고 있는 모습이 꼴린 덕에 내 아랫도리가 반응을 하며 바지 앞부분이 불룩해졌다. 응... 딸치고 싶어졌다. 결국 난 방문 옆 벽에 기대어 방문 틈으로 김태형의 모습을 보면서 잔뜩 해버렸다.

생애 처음으로 김태형을 보면서 딸을 쳤다. 존나 꼴려서 급하게 하기도 했지만 왠지 모르게 그 때부터 며칠 후... 김태형한테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설마 나 게이가 되버린걸까.


[긴급 재난 문자: 생존자들은 즉시 인천 국제 공항으로 모여주십시오.]


폰의 진동이 울리면서 긴급 재난 문자가 뜬 걸 확인하고는 김태형이랑 밥을 먼저 챙겨먹고 천천히 밖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부모님들이랑은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그냥 포기하고 김태형이랑만 인천 공항으로 갈 작전을 세워 나서는 것이다.

그나저나 김태형 보면 볼수록 존나 예쁘게 생긴 것 같다. 나 진짜 게이가 되버린 건가?

파이프와 후라이팬으로 좀비들을 무자비하게 조패버린 뒤 차를 뺏어 타, 김태형이랑 인천 공항까지 열심히 달려갔다. 뭐 운전은 바로 야메로 한 거다.


"정국아, 나 할 말이 있는데..."


"? 갑자기 왜 이래 내 이름을 막 그렇게 부르고."


갑자기 운전을 하는 도중에 김태형이 나한테 말을 건다. 그것도 고백할 것 같은 의미심장한 말 걸기로.


"아, 아니야!"


역시 수상하다. 뭔가가 있는 것 같은데. 차에 치여가는 좀비가 징그러운 건 둘째치고 난 김태형의 저 의미심장한 말이 더 신경쓰였다.

그러고 보니 벌써 인천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 내려야하는데 좀비가 많이 있다. 지금은 좀 잠잠한데 내리자마자 들이닥칠 것 같았다. 일단 김태형 보고 상황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원래 정문은 무조건 막아둔 것 같으니까 비상구 쪽으로 갈 생각인데, 너 내 뒤에서 꼼짝말고 있어야 한다. 너 존나 약해빠진 거 이 세상 사람들 다 알 정도로 약한 거 아니까 괜히 허세 부리지 말고 알겠냐?"


"지랄하네."


차 천장이 열리는 구조의 차라서 차 천장을 열자마자 바로 좀비를 쳐내며 차 위로 올라가 김태형을 끌어올렸다. 김태형도 좀비 무섭다고 후라이팬 마구 휘두르는데 다 맞아서 더 웃겼지만 최대한 길을 내어 비상구 근처까지 갔다.


"야, 잠시만 좀 쉬자."


"전정국 센 척 작살나게 하더니 별 거 아니네?"


"응 닥치고."


사실 원래대로 라면 힘이 아직 남아있어야 정상이지만, 김태형이 후라이팬을 놓쳐버리는 바람에 위험해져서 순간적으로 좀비를 맨 손으로 제압해 후라이팬을 다시 쥐어줬었을 때 손목 좀 물렸다. 응 아파. 아프다고 나 더 살고 싶어.


"나 고백할 거 있는데, 들어줄 수 있냐?"


"뭔데?"


"나 아까 좀 물렸어."


"...?"


안 믿는 눈치길래 손목을 보여주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하나 더 말하자면 난 너만 들여보낼 생각이다. 이 꼴로 저길 어떻게 들어가겠냐 ㅋㅋ"


"...전정국"


"왜."


"...좋아해 정국아, 많이."


갑작스럽게 받은 고백에 좀 놀랐지만 애써 외면하고는 널 일으켜 세워 비상구 쪽으로 데려가고는 잡고 있던 손을 놓아주며 무거운 입을 겨우 떼어내 말을 꺼냈다.


"나 없어도 잊어먹지는 말고, 알겠냐?"


...김태형 왜 우는데 저 이쁜 얼굴로 왜 울고 난리야 존나 마음 찢어지게.


"정국아, 나 한 번만 안아주면 안 될까..."


마지막 부탁인데 들어줘야겠지. 안 그래도 안고 싶었는데 잘 된 것 같다. 김태형을 꼬옥 끌어안고는 입술에 입을 맞춰 버렸다. 김태형 눈 동그랗게 뜨고는 놀라면서도 좋아하는데 그 모습이 또 너무 귀여워서 더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보내야된다.


"얼른 가."


"나 사실 너 8살 때부터 좋아했다? 지금 18살이니까 11년째 짝사랑했네... 그래서 말인데 정국아, 사랑해... 많이 사랑해."


비상구 문을 열어 널 들여보내고는 문을 닫으면서 정말 마지막 말을 꺼냈다.


"나도 좋아해 태형아, 사랑해."


존나 슬퍼서 미칠 것 같았지만 그래도 보내야 되는 걸 어떻게 하겠냐... 문을 막 열라고 하는 김태형을 못 나오게 하려고 문 앞에 앉아서 문을 못 열게 막았다. 막 울면서 내 이름 부르는데 생각해보니까 나도 예전부터 김태형 좋아하긴 했던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건지 미친듯이 눈물 밖에 안 나왔다.


"태형아... 보고싶다."


점점 눈 앞이 흐려지는데 자꾸 김태형이 떠오른다. 미치겠다. 빌어먹을 좀비가 되면서도 김태형이 생각나서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아까 키스라도 할 걸 그랬나보다. 뒤 쑤시는 모습 봤을 때 덮칠 걸 그랬다. 존나 이뻤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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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전정국은 인간으로 남지 못하게 되버렸지만 김태형은 그런 전정국을 끌고 들어가서 연구원들에게 맡겼다. 원래대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빌고 빌어서 전정국을 맡긴 거였다.


"정국아, 보고싶어..."


마침내 엄청나게 큰 유리 케이스 같은 곳 안에 정국이가 앉아있는 채로 옮겨지는 걸 봐버렸고, 그 모습을 봐버린 탓인지 정말 마음이 아파죽던 태형이는 대성통곡을 하며 미친듯이 울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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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좀비는 다행히도 전정국 빼고 다 없어져서 평화로웠지만 김태형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매일 정국이를 보러 연구소에 살다시피 들렀다. 유리 케이스 안에 있는 정국이는 항상 날 바라봐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 눈 앞에 있는 거로 만족한다.


"정국아, 좋아해."


오늘도 어김없이 연구소에 들러서 매일 하는 말을 하고는 유리 케이스에 입을 맞추곤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반복되는 생활을 지내며 태형이는 나이가 먹을대로 먹었고, 정국이는 연구원들의 실험 덕에 점점 원래대로 돌아올 기미가 보였다. 태형이는 이 소식을 접하고는 너무나도 기뻐했지만 또 하나의 소식을 듣고 좌절을 했다.


"전정국 학생이 만약 돌아온다고 해도 평생을 살아가야 됩니다."


...평생 안 죽는다고 그러네, 난 나이가 먹어서 곧 있음 죽을 것 같은데 말이야.

그렇다. 현재 김태형의 나이는 88세, 엄청난 시간이 흘러갔다. 전정국이 돌아온다고 해도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을 거고, 이만큼 늙은 내 자신을 보여줄 자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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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이 지나고, 김태형은 숨을 쉬지 않았다. 되게 타이밍 맞게 전정국은 원래대로 돌아왔고... 전정국은 깨어나자마자 김태형의 장례식장에 참석했다.


"김태형, 나 돌아왔어."


"


"왜 대답이 없어 태형아..."


아무리 말을 걸어도 그저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한 곳만 바라보는 네 사진에다가 계속해서 말을 걸어봤자 돌아올 대답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도... 말은 하고 싶었다.


"다 기억해, 매일마다 찾아와 준 거."


"진짜 안 잊고 매일 찾아와 주더라..."


"웃는 모습 못 본지 꽤나 되긴 된 것 같았는데, 여기서 다시 보네."


"사랑해 태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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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형이는 죽기 전에 유서에 소원을 적었었다. 다시 태어나게 해달라고.
그 소원이 이루어져 태형이는 기억을 다 가진 채로 다시 태어나 무럭무럭 자랐다. 물론 그 연구소를 TV로 보면서 훌쩍거리는 날이 많았지만.

그렇게 무럭무럭 자라나 대학생이 되었다. 차도 있고, 돈도 있고, 벌써부터 직업도 있다. 완벽하게 다 준비가 된 상태로 연구소를 직접 들러봤다.


"와... 변한 게 없네."


여기저기를 막 보면서 정국이를 찾아다녔지만 정국이는 보이지 않았다. 정말 깨어났을까. 연구소에 보이지 않는 정국이는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실망감을 잔뜩 끌어안고 연구소에서 나와 큰 길로 나가 고개를 제대로 들어봤는데,


"어? 쟤 전정ㄱ..."


말문이 턱, 막혔다. 어떤 여자랑 스킨십을 하며 웃고있는 네 모습에 충격이라도 먹은걸까. 아니야 오히려 이게 정상이지... 그치... 남자인 날 좋아할 리가. 예전에 받았던 그 대답도 그냥 나 편하게 살라고 하는 말이였을거야...

큰 충격에 빠진 태형이는 횡단보도로 건너가 정국이 앞에 섰다.


"정국아, 나 기억해?"


"?"


"나 태형이."


놀란 눈으로 날 쳐다보는 전정국. 짜증나... 속상하고 서러워. 정말... 많이 좋아하는데, 넌 아니네.


"잘 지내..."


이 한 마디로 난 정국이 눈 앞에서 사라지듯이 집으로 돌아갔다.

전정국이 너무 보고싶다. 근데 살고 싶지 않다. 다시 태어난 의미가 없다. 내가 누굴 다시 만나려고 태어났는데 이게 뭘까, 예상치도 못한 변수가 일어나버렸다. 이럴 줄은 몰랐지... 이렇게 되버릴 줄은 상상도 못했지. 우리 아파트 옥상은 되게 쉼터처럼 꾸며놔서 안정이 될 정도로 편안했기에 오늘도 옥상 쉼터로 올라가 난간에서 아래를 내려봤다.

정말 타이밍도 딱 맞지. 전정국이 보인다. 눈도 마주친 것 같다. 근데 왜 이리 마음이 아프냐...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난간에 앉았다.


"정국아... 나 이제 살 이유가 없는 것 같아."


"이 거리에서는 안 들리겠지만, 말해볼게."


울면서도 환하게 웃으며 말을 꺼낸다.


"사랑해 정국아, 보고싶어..."


이 말을 끝으로 난간에 보이던 형체는 사라졌고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그 동네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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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