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밤은 우리를 등졌지만

한 남성이 낮은 음성으로 욕을 읊조렸다. 직선으로 곧게 뻗은 입꼬리. 올라간 눈매와 짙은 눈썹, 그리고 큰 눈. 그의 첫인상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싸늘한 분위기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 언제나 작게 일렁이는 분노를 눈에 담고 다녔다. 그는 항상 무표정이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도, 상당히 기분 나쁜 말을 들어도, 그의 얼굴에서 변화를 볼 수 있었던 적이 없었다. 물론, 웃을 때는 빼고. 그때는 뭔가 달랐다. 고요했던 분노가 꽤 큰 불씨를 퍼뜨리며 타오르고 있었다.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턱을 괸 그의 속에서 조바심이 커져가고 있었을지도. 아무것도 없는 바닥을 뚫어질세라 쳐다보며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하는지, 여러 잡음에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맞은편에 앉은 나조차도 함부로 말을 꺼내지 못했다. 처음 보는 그의 행동들이 나를 경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심각한 분위기에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움직일 수 없는 인형처럼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저 그가 먼저 내게 말을 꺼내거나 먼저 일어나길 기다렸다. 오고 가는 대화 없이 몇 분이 흘렀다. 아직 10분밖에 안 지났네, 속으로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 상황, 느낌, 그리고 기다림에 너무 지친 나머지 고개를 젖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지수야.”
드디어 그가 입을 열었다.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조금이나마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 나는 10분이라는 짧고도 갑갑한 시간 동안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 그의 부름에 고개를 들어 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는 여전히 바닥을 응시하고 있었다. 지수야? 그를 향한 나의 시선을 느끼지 못했는지 나의 이름을 한 번 더 불렀다.

“응. 듣고 있어, 말해.”
그는 분명히 망설이고 있었다. 입 밖으로 가볍게 꺼내지기 어려운 말을 내게 하려던 것이다. 뭐가 그리도 불안한지, 자꾸만 입술을 뜯고 있었다. 나한테 뭐 숨긴 거라도 있는 거야? 호기심은 계속 커져만 가는데 그는 애타게 하기만 했다. 그 상태가 조금만 더 유지됐다면 정말 짜증이 났을지도 모른다.
“입술 뜯지 마, 피 나겠다.”
아, 내 말에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마치 본인도 그러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처럼. 이어 알겠다고 말하고선 틀어져 있던 그의 자세를 풀어 나와 마주 보았다. 테이블에 팔꿈치를 올린 상태로 손가락을 뜯었다. 뭐가 그리 불안한 건데. 도대체 뭐길래 어떤 일이든 서슴없이 말하던 네가 이렇게 망설이는 건데, 응? 그가 뜯던 손을 내 손으로 감싸 내렸다. 이번에도 표정을 보니 또 그때야 알아차린 모양이다. 뭐야, 최승철. 진짜 이상해, 오늘. 불안함을 표출하는 그의 행동들이 나까지 긴장 속에 잡아먹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안겨주었다. 왠지 몇 초 뒤, 큰 사건이 펑, 하고 터져 버릴 것만 같은 기분.
“편하게 말해. 말하려는 게 도대체 뭐길래 그렇게 망설이는 건데?”
아, 그게 말이야..., 또 또 또. 또 저런다. 그래도 말을 꺼냈으니 곧 있으면 듣겠다, 싶었다. 제발 답답하게 굴지 말고 얼른 말하라고, 평소처럼. 다시 제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댄다.

“네가 다음인 것 같아.”
뭐? 내가 다음이란다. 이번 달 희생자만 열두 명. 그리고 열세 번째 희생자, 그게 나라고? 첫 번째와 두 번째 희생자는 평범한 인간으로, 사람들이 그자가 노리는 건 *노멀이라고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세 번째는 *해프, 네 번째는 *데빌이었다. 지금 이 세계에 현존하는 인간의 형태 중 3가지를 죽인 셈이다. 그리고 데빌을 죽인 걸 보면, 그자의 능력은 뛰어난 데빌만큼이나 대단할 것이다. 나는 매우 곤란하고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아마 승철이라면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고, 그럴 이유도 없으므로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노멀: 평범한 인간의 형태. 완전한 육체와 영혼을 소유하고 있다. 인간의 형태 중 가장 흔한 유형. 그들이 지닐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은 없다.
*해프: 이승과 저승의 사이에 머무는 인간의 형태. 영혼은 노멀과 같지만, 육체는 일주일에 하루 정도 잃게 된다(이를 스피릿 타임이라고 일컫는다. 이 기간에는 햇빛에 매우 약해진다. 하지만 약을 복용하면 그동안 평소처럼 지낼 수 있다. 노멀은 가지지 못하는 특별한 능력 일부를 사용할 수 있다.
*데빌: 저승에서 온 인간의 형태. 영혼은 악 그 자체이며, 원한다면 육체를 잠시 가질 수 있다(최소 5시간, 최대 12시간. 시간은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 네 가지 유형 중 두 번째로 희귀하다. 해프보다 사용 가능한 능력이 더 많고, 더 강하다.
현실이라기엔 흐릿한 풍경이 꿈속의 내가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자각몽. 나는 오밤중에 어두운 골목에 서 있었다. 내가 왜 여기 있지. 의문을 가지며 앞으로 한 발짝씩 내디뎠다. 싸늘함과 잔인함, 그리고 불행으로 가득 찬 차가운 공기 속에 내던져진 상태였다. 주위를 둘러봤자 보이는 건 미로처럼 복잡한 좁은 길들이었다. 공간의 크기가 예상되지 않는 곳이었다. 고요함 속에 깊이 파묻힌 곳이라 나도 모르게 소리 없이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히 나아갔다. 발꿈치부터 천천히. 꽤 오래되어 보이는 골목이었다. 벽은 훼손된 부분이 상당했으며, 몇 없는 가로등도 모두 나간 상태였다. 아씨, 무서워 죽겠네. 도대체 나는 왜 이런 데로 온 거야. 집 근처긴 한 건가?
좌우를 살피며 쥐 죽은 듯 걸어가던 와중이었다. 대기는 갈수록 차가워졌다. 얼른 여기를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찼다. 두려움으로 가득한 몸을 겨우 이끌며 혼란스러운 정신을 다잡았다. 우측 길로 들어가려다가 흠칫하고 말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를 마주해버린 것이다.
벌벌 떨렸다.
무섭기만 하다.
얼른 벗어나고 싶다.
이런 장면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왜 또 트라우마 속에 갇혀야 하는가.
길고 검은 코트를 걸친 무시무시한 실루엣의 한 남성이 누군가의 영혼과 능력 모두 흡수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살해한 것이다. 흡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데빌 이상의 레벨이어야 가능하다. 물론, 데빌도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데빌의 육체로 남을 흡수하는 능력을 가질 가능성은 0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데빌이 살아있다는 것은, 아, 살아있었거나 부활한 것인가. 씨발새끼. 왜 아직 살아있는데? 왜 안 죽는데.
그자가 그 자리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자마자 쓰러진 사람에게로 다가가려고 했다. 그게 나의 한계였다. 죽어가는 그가 아는 사람이어서, 소중한 사람이어서, 홍지수여서. 그가 싸늘한 주검이 되는 것을 바로 앞에서 보려니 내 마음이 이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확 내뱉어 버리고 싶은 말들은 한순간에 눈물과 같이 훅 차올랐다. 울컥울컥, 겨우 뱉어지는 듯했다.
“지수야... 홍지수? 너 왜 거기 있어. 이런 장난 재미없으니까 얼른 일어나. 다 짠 거잖아. 홍지수, 빨리 일어나라니까? 지수... 지수야, 아니잖아, 그치? 내가 생각하는 거, 아니잖아. 너 죽는 거 아니잖아. 나랑 평생 친구라며. 나 혼자 아니라며. 제발, 아니라고 부인 좀 해줘.”
“승철, 이네....”
갸랑갸랑한 목소리로 겨우 뱉어내는 듯한 목소리. 겨우 말을 하고서는 피식, 하고 웃는다. 저 바보.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와? 죽지 마, 안 돼. 나 너 없으면 안 되는 거 알잖아. 나한테 남은 거, 네가 마지막인 거 너도 뻔히 알고 있잖아.
눈가에 맺혀있던 눈물이 왈칵 쏟아져서 감추려 고개를 뒤로 젖혔다. 눈을 감아 고여있던 눈물이 내려가도록 했다. 힘 없는 그의 손을 붙잡았다. 두 손으로 세게 감쌌다. 그를 잡는 내 마지막 발악이 되고야 말았다. 서럽게 울부짖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지수야, 조금만 참아. 내가 얼른 구급차 부를게. 알겠지?”
불안해 미칠 것만 같았다. 그는 그런 내 마음은 아는지, 내가 살리고 싶어하는 마음을 아는지. 휴대폰을 집어든 내 손을 아무 말 없이 잡아 내렸다. 바로 감길 것만 같이 풀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작게 고개를 저었다.
“지수야?"
침묵이었다. 그가 그 순간부터 고집한 건 목숨이 아니라 침묵이었다. 한 번이라도 목숨을, 생존을 갈망해주지. 나쁜 놈. 지수의 온기가 점차 사라졌다. 아주 느리게 식어갔다. 내 손을 잡은 손에만 온기가 돌았다. 그가 힘을 주며 나를 잡은 것 같았다. 어쩌면 이게 지수가 내게 건네는 작별 인사가 아닐까. 애절함을 호소했다. 그런 나는 또다시 소중한 사람을 잃고 좌절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아, 맞다. 이거 꿈인데. 꿈인 거 알고 있었는데. 끔찍한 악몽. 나는 언제 깨어나는 걸까.
하얀 천장.
아침 햇볕.
알람 소리.
미세한 울림.
아, 꿈이었구나. 다시 깨달았다. 이건 그저 꿈이다. 그렇다, 꿈일 뿐이다. 그 무엇도 아닌 가상의 세계. 분명히 지수에게는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있어선 안 된다. 나 자신에게 꿈이라고 세뇌하는 듯 연신 외쳐봐도 불안한 건 마찬가지였다. 혹시나 예지몽 같은 건 아닌지. 두려움과 조바심이 엉망으로 뒤섞였다.
최악이었던 악몽의 흐릿한 울림이 귓가를 맴돌았다. 그에 그 꿈에 대한 것 말곤 어떤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눈 끝에 맺힌 눈물을 옷소매로 꾹꾹 눌렀다. 송골송골 맺힌 땀, 나도 모르게 흐르던 눈물. 꿈에서도 꿈이라는 것을 자각했지만 일부의 기억처럼 남아있다. 마치 내가 겪은 일인 것처럼. 기억이 조작되는 이상한 느낌에 휩싸였다. 나는 끔찍한 악몽이 불러온 감정에 지배되었다.
그리고 그 악몽은 자꾸만 반복되며 제 몸집을 불렸다.
***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이미 ‘나’라는 존재에서 벗어난 모습이었다. 붉어진 눈시울, 눈에 맺힌 눈물. 형체를 잃어가는 몸.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내 안의 깊은 곳에서부터 막대한 크기의 무언가가 나에게서 벗어나려고 했다. 왠지 토해내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에 그것을 억눌렀다. 버겁다. 힘들다. 그것의 몸집은 커져가고 있지만, 나는 이를 막을 능력이 되지 않았다.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아니야, 다시 들어가. 나오지 마. 제발, 움직이지 마. 눈을 세게 감고 숨까지 참으며 노력했다. 우글거렸다. 금방이라도 입을 뚫고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이런 잔인한 생명체가 내 안에 잠들어 있었다니. 그리고 내가 그것을 나오지 못하게 평생 봉인해야 한다. 한 명의 희생자가 되는 것이다. 세계가 엉망이 되지 않기 위한 헌신일 뿐이다.
뜨거운 무언가가 내 혀를 감쌌다. 나의 밖으로 나오려고 발버둥 쳤다. 크게 꿈틀거리며 입을 벌리게 하려 했다. 그만해줘. 멈춰줘. 얌전히 잠들어 있어. 제발, 제발, 제발.
아-.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형체도 없는 어둠이 막대한 제 몸을 이끌고 기어이 벗어났다.
목구멍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내가 억제하기엔 그것의 힘이 너무 강했다. 나약하기만 한 나는, 무능한 나는 결국 뱉어내선 안 되는 것을 내보내고 말았다. 세상은 그의 편인 것이다. 사람들의 두려움으로 뒤범벅이된 것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그것이 스며든 대기가 싸늘해졌다. 내 한계를 마주했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난 이미 지배되었다. 그가, 사악한 그가, 모두에게 최악의 고통인 그가 깨어났다. 하필 내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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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후 재업했습니다. 등장인물은 차차 추가될 예정이예요.
마지막은 일부러 누구 시점인지 표기하지 않았습니다!
모두 좋은 하루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