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밤은 우리를 등졌지만
목각
새벽 1시 50분. 벌써 이렇게나 됐네. 잠은 오지 않는데, 할 게 없어서 이어폰을 귀에 꽂고 노래를 듣고 있었다. 듣던 플레이리스트의 마지막 곡이 끝나 다른 곡을 선택하려고 휴대폰 화면을 확인한 순간에서야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간 감각 없이 노래를 들으며 생각을 비우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나저나 1시 50분이라-. 곧이다. 그 시간이 다가온다. 내가 나를 잃어버리는 시간. 잠시 내가 아닌 나로 살아가는 시간. 인간을 뛰어넘는 존재로서 숨 쉴 수 있는 위험하지만 자유로운 시간이다. 요즘은 딱히 할 일이 없다. 결국 현재 내 일상은 심심하고 갑갑하다는 것이다. 굳이 준비해서 나가고 싶지도 않고, 딱히 외출의 핑계도 없다. 하지만 내가 다른 나로 변하면 귀찮은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솔직히 말하자면 인적이 드문 밤의 서늘한 공기를 맞으며 나가는 게 좋은 것이다. 왠지 모르게 낮은 끌리지 않는달까. 아무튼 갖가지 이유로 이때 외출하는 것을 선호한다.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시작이구나. 내가 억제할 수 없는 나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고체와 액체, 그 사이의 형태로 멋대로 형체를 바꾸며 나를 삼켰다. 목구멍에서부터 뿜어져 나온다. 검은 회오리바람이 나를 덮치는 것 같았다. 보이는 건 오직 검은색 물체의 움직임이었다. 우글거리는 게 보기 좋진 않았다. 솔직히 징그러웠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이게 정녕 생물의 형태인가, 싶기도 했다. 시각적으로는 물컹해 보였다. 마치 움켜쥐면 힘없이 푹,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엄청난 속도로 나를 덮치는 이것이 나의 다리를 삼키기 시작했다. 검은색이 나를 집어삼킬 때면 내 육체와 이것이 서로 뒤바뀌는 느낌이다. 육체는 잠시 미지의 세계에 빠지는 듯한.
약 10초 동안 모든 것이 완료되었다. 이제 나는 인간이 아니다. 잠시 다른 생물의 영혼이 되어 한 생명체에 내 영혼을 깃들게 하는 것이다. 인간의 능력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지닌 생명체 속. 처음에는 미숙했지만, 지금은 움직임이 꽤 부드러워졌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그때보다 더 능숙하게. 이 몸을 다루는 건 내 하루의 4시간을 차지한다. 이런 일상이 매일 반복되니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
몸집은 커졌지만, 무게는 더 가벼운 몸을 이끌고 창밖으로 날았다. 바람을 가르는 기분은 언제나 상쾌했다. 스트레스가 싹 사라지는 느낌. 공기와 내가 서로 뒤섞였다. 내가 마치 공기라도 되는 듯했다. 항상 서늘한 밤의 바람을 가르면 숨통이 트인다. 시원한 밤이 영원하면 좋을 텐데. 밤은 영원하기에는 너무나도 위험한 시간이었다. 전은 아니었을지라도, 지금만큼은 그렇다.
머리가 띵하고 어지러웠다. 오늘도 같은 궤도를 따라가고 있었다. 밤의 어느 순간부터 내 필름이 끊긴다. 그때, 시야는 아득해지고, 머릿속은 뒤죽박죽 섞여버린다. 정신을 붙잡으려 안간힘을 써봐도 결국 아무 의미가 없는 짓이 된다. 제대로 된 밤의 기억을 가져본 적이 없다. 미쳐버릴 것 같다. 세상이 희미해지고, 두 개의 세상이 서로 겹쳐진다. 머리를 부여잡고 고통으로 인한 비명을 내질렀다. 거친 숨소리와 낮은 신음밖에 들리지 않았다. 시야가 더 크게 흔들렸다. 내 상태는 완전 맛이 간 것이었다. 정신도 제대로 차리지 못하고 하늘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오늘 밤은 기어이 정신을 놓지 않기로 다짐했건만. 이번 밤도, 실패였다.

폭신한 무언가 위에 있었다. 따뜻한 것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살짝 눈을 떠보니 아, 역시. 집, 내 방이었다. 언제나 그랬듯 똑같은 침대 위에서 잠들었다. 참 의문이다. 정신도 못 차린 상황에서 자기 집은 잘 찾아오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오늘도 아무 기억 없이 아침을 맞이했다. 다시 갑갑한 낮의 시작이다. 시작도 안 했지만, 너무 지루하다. 묵직함과 답답함을 담은 아침이 열렸다. 창문을 통과해 나를 비추는 햇볕은 쓸데없이 따뜻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포근한 토요일 아침이겠지만, 나한테는 그저 평소와 같이 불쾌한 아침이었다. 제발, 이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어.
________
“다음 뉴스입니다. 오늘 밤, 또 다른 사망자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다른 피해자들과 같이 영혼과 능력이 흡수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는 상황인데요, 연구원들에 의하면 이러한 일은 노멀과 해프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합니다. 이는 결국 데빌의 행위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주일에 약 5명씩 사망자가 나오고 있는 끔찍한 상황입니다. 어떠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범인에 수사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경찰은 범인을 검거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을 전했습니다. 한 지역이 아니라 전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인 만큼 주의해주시길 바랍니다. 다음 소식 만나보겠습니-”
아무 감정도 싣지 않은 어투의 뉴스. 내 관심을 끈 뉴스를 듣고서는 바로 꺼버렸다. 괜히 머리 아프게 다 들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에. 오늘 또 사망자가 나왔지만, 발견된 증거나 흔적이라곤 하나도 없다. 사망자는 열 명을 넘어가는데 증거 하나 없이 범인을 어떻게 찾으란 말인가.

어쩌면 이 사건은 세계의 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단 범인은 그자로 추정. 전에도 언급했듯이 데빌의 힘으로 저런 일들을 펼칠 수 없다. 이는 데빌 이상인 그자를 범인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마 그는 지금 인간의 형태일 것이다. 과거 일로 몸을 잃었지만, 영혼은 남아있지 않는가. 데빌 정부가 그자를 완전히 소멸시켰다고는 했었지만, 아직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들이 쏟아져 나온 적이 있다. 물론, 정부가 쐐기를 박는 덕에 금세 잠잠해졌지만. 만약 그 추측들이 옳다면 인간 세계는 다시 큰 위기를 마주할 것이다.
그자가 살아있다고 가정했을 때, 도통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다. 그자라면 영원한 목숨이 있을 텐데, 왜 이제야 모습을 드러내는가? 그가 세계 전체를 위협한 건 이미 약 100년이나 지난 일이다. 그에게 10년이 주어진다면 세계에서 가장 강한 힘을 얻고도 시간이 남을 것이다. 그만큼 그자를 이길 사람은 아무도 없음이 분명하다는 말이다.
낮 2시. 햇볕이 가장 쨍쨍할 시간이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밖으로 나와 휴식의 시간에 취해가고 있던 사람들이 꽤 있었다. 짙고 높은 하늘은 그리 많지 않은 구름을 껴안고 있었다. ‘휴일’이라는 단어에 가장 잘 어울리는 풍경이 아닌가, 싶었다. 8월의 시원한 옷차림과 무더위. 한없이 따스한 장면이었다. 그 시간 속에 모두가 영원했으면 좋으련만. 행복과 즐거움을 품고 있던 시간은 금세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마치 제일 아름다운 날을 망치려는 듯 어둠이 하늘부터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새파랗던 하늘은 밤처럼 깜깜해지고, 하얀 구름마저도 흑에 물들었다. 세상을 밝게 비추던 태양은 보이지 않았으며 그저 번쩍이는 번개와 공포감을 잔뜩 실은 천둥이 나타났다. 잔디 위에서 뛰어놀던 아이들, 여유롭게 산책하던 사람들, 모두가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황급히 각자의 집으로 들어가 불안함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처음 겪는 상황에 대체 방법도 모르는 상태로 눈물을 토해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 사태의 원인은 노멀도, 해프도, 데빌도 아니라고 말했다. 데빌을 뛰어넘는 능력을 소유한 자라고만 했다. 그의 신원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신문에 실린 기사들의 제목은 거의 다 비슷했다. “데빌 이상의 악과 그의 추종자들”, “정체 모를 최강의 악”, “이름 없는 악, 그가 벌이는 일은 무엇인가”와 같이 모두 거기에서 거기였다.
신문에서 얻은 인상 깊은 정보는 거의 없었다. 발생하고 있는 일들과 이에 대응하여 정부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만 알 수 있었다. 지금 대부분의 궁금증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였다. 어떤 신문을 읽어봐도 결국 제자리걸음이었다. 이 사건에 내가 투자한 시간만큼 결과가 나오지 못했다. 사실, 이런 일들과 그 어떤 것도 연관되지 않은 직업을 가진 평범한 해프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없기도 했다.
2주 후였다. 드디어 이 일의 시발점이 된 사람을 찾았다. 신문 전면이 그를 주제로 한 기사로 가득 차 있었지만, 별 소득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알 수 있었던 사실은 고작 두 가지였다. 그자를 중심으로 약 100개의 악이 이 일을 꾸미고 있다는 것. 그리고 중심이 된 그자는 데빌을 뛰어넘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 이 사실은 상당히 놀라웠다. 아무리 배워도 다 머릿속에 다 담을 수 없는 긴 역사에 데빌 이상의 힘을 가진 인간의 형태가 나타났던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는 모두를 경악시켰으며, 공포에 휩싸이게 했다. 정부도 역시 상당히 당황했을 것이다. 역사상 처음 일어난 상황이니 대처 방법도 모르지 않는가.
첫 번째로 정부는 시민들에게 외출을 최대한 자제할 것을 요구했다. 밖에 나갔다가 정체를 알 도리가 없는 어둠이 삼켜 실종된 경우도 가끔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원인을 알기 전의 지침이었다. 그자의 존재를 발견한 정부는 상급 능력을 보유한 데빌들을 모아 그자에 맞서도록 지시를 내렸다. 굳이 데빌이 아니어도 데빌과 겨뤘을 때 상대가 되는 해프 중 원하는 자가 있다면 망설임 없이 받아들였다. 그자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인지하지 못하여 일단 최대한 많은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1813년, 11월 23일.
세계의 비극이 될 수도 있는 날이었지만, 다행히도 그자는 데빌 정부에 의해 사형되었다. 인구 밀집이 다른 지역보다 큰 수도로 그자가 찾아왔었다. 해도 덜 뜬 새벽 4시였다. 시끄러운 폭발음에 자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커다란 검은 구름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계속되는 공격에 사람들은 어찌할 줄 모르고 조바심만 키워갔다. 검은 하늘에선 초록색이나 파란색인 빛줄기가 매섭게 내리치고 있었다. 그에 파괴된 건물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한발 늦게 내려온 정부 지침에 따라 사람들은 건물에서 나와 대피소로 이동했다. 지역의 구석에 있어 그리 눈에 띄지 않았던 곳이라 그런지 그쪽에서는 부상자나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처 대피소로 가지 못했던 사람들은 모두 그 자리에서 심한 부상을 입거나 사망까지 이르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 위험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겨우 두 명이었다. 아주 끔찍한 역사였다. 그 당시에 살던 사람으로서 극심한 공포를 느꼈었다. 명심해야 했다. 또 언제 이런 일이 되풀이될지 모른다는 것을.
문자 메시지에 적힌 주소를 찾아 길을 거닐고 있었다. 같은 동네라 굳이 교통수단을 이용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운동도 할 겸, 여유롭게 걷는 게 얼마나 좋은데. 사실 여유롭게 걸을 상황은 아니다. 옆에 들어선 수많은 건물 중 도대체 어떤 건물인가-, 온 신경을 건물 앞에 적힌 주소에 집중한 채로 천천히 앞으로 걸었다. 분명히 이 근처인데…. 아, 찾았다. 병원부터 학원,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가게까지, 7층 정도 되어 보이는 건물이었다. “저 처음 왔어요”라고 이마에 쓴 채 서서히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 옆에 붙어있는 안내표를 확인하고서 버튼을 눌렀다. 1층에 있었던 터라 바로 탈 수 있었다. 아까 확인한 대로 4층 버튼을 눌렀다. 이런 일은 오랜만이라 긴장과 설렘이 뒤섞였다.
문에 쓰여있는 이름이 맞는지 확인하고 사무실 내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오랜 지인, 원우가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고개를 들지 않는 걸 보니 내가 왔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얼마나 집중하고 있으면. 조용히 그에게로 다가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어 번 두드렸다. 그제야 시선을 내게로 돌리며 인사를 건넸다.

“어, 형, 안녕. 온 줄도 몰랐네, 미안.”
살짝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뭐하고 있었어? 내 질문에 그는 보던 정리 파일의 제목을 내밀었다. 1813 사건 정리. 위기를 막아야 한다. 또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나는 건 정말 위험하다. 이번에는 진짜 공존 세계가 붕괴될 것이다.
__________
해프와 데빌이 사는 이상, 그 누구의 정체도 알 수 없다.
___________
일주일이나 걸렸네요... 죄송합니다😥
별로 길지도 않은데 업로드가 뜸하네요.
죄송하지만 앞으로도 그리 자주 올릴 수 있을 것 같진 않네요...😭
그래도 최대한 후딱후딱 써 오겠습니다!!
다음 편에는 간단한 인물 관계 및 특징도 가져올게요.
내용을 보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