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연과 조연의 상관관계
'불행'이라는 단어를 잠깐 생각해보자. '불행'의 사전적의미는 '행복하지 아니함. 또는 그런 운수.' 그렇다면 지금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위해 다리 위에 서있는 여주는 불행할까. 다 늘어난 낡은 티셔츠, 온몸 이곳저곳에 물든 시퍼런 멍자국, 터진 입술 사이로 조금씩 새어나오고 있는 비릿한 피, 초점은 이미 잃은 듯한 눈동자. '불행'이라는 말은 지금의 여주에게 어울리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은 이혼을 하고, 아버지와 단둘이 살아가던 도중, 나날이 심해져가는 아버지의 무차별한 폭력, 거기에 더불어 도박까지. 그 산더미 같은 빚을 갚는 일은 늘 여주가 할 일이었다. 아버지가 한 일은 고작 집을 팔아먹고, 거기에 나가서 져온 빚까지. 여주의 인생은 앞날이 보이질 않았다. 깜깜했다. 막막했다.
"이제는… 다 필요없어…"
위태롭게 서있는 다리 위에서 한 발자국 움직였다. 밑을 내려다보면 끝이 없어 보이는 강물. 물의 색 또한 칙칙한 검은색이었다. 마치 여주의 인생을 비추고 있는 듯. 하염없이 흘러내리던 눈물이 이제는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이젠 정말 끝내야 할 것 같다. 아마 그 쪽세상은 이 쪽세상보다 훨 낫겠지. 남은 발걸음을 서서히, 들어올린다.
"아가씨, 잠깐 나 좀 보게."
"...?"
두 발을 모두 떼어내려고 한 순간, 누군가 아래에서 제 손목을 잡았다. 두꺼운 책을 품에 안고 나를 올려다보는 백발노인. 이내 미소를 싱긋 지어보이는 할머니다.
"아가씨. 이거 내가 쓴 책인데, 한 번 읽어봐줄래요?"
"네..?"
"많이 힘들어 보여, 지금 아가씨. 이 책을 펼치는 동안은 행복할거에요, 내가 장담해요."
조금의 위로라도 된 것일까, 여주는 어느새 손에 쥐어져있는 그 두꺼운 책을 바라보았다. 두껍고 딱딱한 책 표지에는 아주 예쁜 궁궐과, 무언가 독특하게 생긴 꽃 문양. 색은 조금 어둑칙칙한 붉은색이었다. 표지를 넘기면, 제일 먼저 보이는 'THE QUEEN'이라는 글씨. 나에게 책을 건네준 그 할머니는 이미 자리를 떠난 뒤였다.
이 책이 나를 행복하게 해줄거라는 그 말이, 오늘 처음 마주친 사람이었지만, 자신이 장담하겠다는 그 책임있는 말이 무척이나 믿음이 갔다. 그리고, 별 거 아니었지만 위로가 되었다. 잠시 '행복'이라는 감정을 잊고있었다. 그 감정이 어떤건지, 그 감정을 겪으면 내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행복…이라…"
올라가있던 다리에서 내려와 주저앉았다. 많이 두려웠나보다, 발이 땅에 닿이니 안심한 모양이다.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으면, 멈추었던 눈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그때, 품에 안고있던 책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나오기 시작했고, 여주를 밝게 비추기 시작했다.
"어…어……?!"
너무 강렬했던 그 빛에 그만 여주는 정신을 잃고 말았고, 사라졌던 아까 그 노인이 다시 여주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서서히 여주에게 가까이 다가간 후, 쓰러진 여주의 머리를 살살 어루만졌다.
"아가씨가 소중한 존재라는 걸 잊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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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야.. 여주야..!!!"
"..?"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비추는 따스한 햇빛에 더불어 누군가가 제 몸을 흔들며 다급한 목소리로 깊은 잠에서 빠져나오게 만들었다. 여긴 어디지. 눈을 뜨니 보이는 것은, 울창한 숲과 나를 올망졸망하게 올려다보고있는 이 여자아이...
"누구세요..?"
"여주야, 나 연이잖아- 주연. 못 알아보겠어?"
"..?"
주연..? 생전 처음들어보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이 연이라는 여자아이는 마치 여주를 알고있는 것 같았다. 오래 알고지낸 친구처럼, 여주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는 연이라는 아이였다. 이 아이는 내 이름을 어떻게 알고있는 것인가, 나는 왜 이런곳에 쓰러져있던 것일까. 모든게 의문투성이인 여주였다.

"한참 찾았잖아, 주연. 가자 이제."
"응! 정국아. 여주야 또 길잃고 쓰러지면 안돼!"

"연아, 조심해. 그러다 넘어질라."
"뭐야- 김태형- 내가 애야? 넘어지게?"
남자 둘이 나타나더니 연이라는 사람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남자 둘이서 여자 한 명을 지키는, 뭐 그런 보디가드 같은 걸로 보였다. 연이라는 아이는 매우 밝은 아이였다. 잠깐 마주쳤음에도 불구하고 얼굴엔 항상 미소가 베여있었다. 어떻게 저렇게 웃을 수 있을까. 여주가 넋이 나간 채 자리를 뜬 그들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던 도중, 누군가 여주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뭐해, 수업 다 끝나가는데."
"네?"
"… 늦으면 교수님이 혼내시잖아."
"잠깐, 수업이라뇨? 교수님은 또 누구고.."
귀찮다는 듯 별생각 없이 가던 길을 계속 가려했지만, 제 손목을 붙잡는 여주 덕에 발걸음을 멈추는 그였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여주에 조금 당황한 기색을 보이는 그였다.
"너, 몇 학년이야."
"19살.. 고3이요!"
"19살이면 우리랑 같은수업이 맞는데, 고3은 뭐야?"
"고등학교 3학년이요! 19살이면 고3이잖아요."
"고등.. 그런거 모르겠고, 수업 곧 끝나가니까 나 먼저 간다."
온통 궁금한 것 투성이기에 재빨리 발걸음을 옮기는 그를 다시 붙잡으려 했지만, 이미 저만치 가버린 그였다. 교수님.. 수업.. 이게 다 무슨말일까. 일단 지금 이 상황을 빨리 파악하기 위해 사람들이 가는 쪽으로 따라가려 발걸음을 옮기면, 여주의 품안에서 무언가 툭- 바닥으로 떨어졌다.
"여왕님...?"
그래, 이 책. 이 책을 펼친 이후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기억나는 건 그 백발노인과 익숙하리만큼 따스했던 손길. 그것뿐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 숲에 쓰러져있었고, 연이를 만난것이다. 이 책에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도라도 있을까 생각하며 책을 다시 펼쳤다.
<"한참 찾았잖아, 주연. 가자 이제." 정국은 연이의 손을 붙잡고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겼다. 뒤이어 따라오는 태형, 그리고 윤기였다. 수업을 모두 마치고 궁궐 정문에 도착을 하면, 나머지 남준, 호석, 지민, 석진이 다같이 연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이게 뭐야..? 아까 연이와 마주쳤을때, 목격한 상황들과 들렸던 말들이 모두 책에 적혀있었다. 책에 그려져있는 풍경 또한 지금 서있는 곳과 매우 흡사했다. 그렇다면 여기는.. 책 속이라는건가..? 다음 이야기를 보기 위해 책장을 넘겼지만, 그 뒤로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계속 넘겨도 나오지 않는 글자에, 책을 다시 덮고 생각을 했다. 일단, 가보자. 가보면 뭐든 알겠지. 그 백발노인이 내게 이 책을 준 이유, 그리고 내가 정말 책 속으로 들어온게 맞는건지.
책을 다시 품에 안고 사람들이 향하는 곳으로 따라 걸어갔다. 한참을 걸었을까, 이미 그 울창한 숲에서 빠져나온지 오래.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은 커다랗고 화려한 궁궐. 그 시점에서부터 사람들은 제각각 자기 갈 길을 걸어갔다. 이제부턴 정말 혼자 해결해나가야할까, 뭐부터 해야하나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궁궐 정문 앞에 가만히 서있으면, 저 멀리서 누군가 여주의 이름을 불렀다.
"여주야 뭐해! 얼른 와-"
"주연..?"
남자 7명 사이에서 여전히 밝은 미소를 띄운 채 여주의 이름을 부르는 연이였다. 아까 책 속에서 본 그 이름들이 저 7명인 것 같았다. 이야기는 정말 그 책 속의 내용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일단 저들을 따라가보자. 그 백발노인이 그랬잖아. 이 책을 펼치는 동안은 행복할거라고. 이 책 속으로 들어온 것 같으니, 적어도 여기서는 행복해지겠지.

"연아, 뭐하러 저런 애까지 신경을 써."
"연아, 교수님한테 가야지. 늦으면 불이익 받는 거 너도 잘 알잖아."
"아까 쓰러져서 많이 다친 것 같은데, 데리고 가야지. 여주야, 얼른!"
여주는 연이가 베푸는 친절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마음 한쪽 구석이 점점 따뜻해져가는 느낌이 들었다. 밝은 모습으로 자신을 부르는 연이에게 다가가면, 그와는 반대로 여주를 향해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나머지 7명이었다. 그들의 무리에 가까이 다가설 즈음, 무리 중 한 명이 여주에게 말을 꺼냈다.

"늦어서 연이가 불이익 받으면, 너 때문에 늦은거니까 그때는 네가 다 책임져."
여주에게 건넨 그 첫마디는, 따뜻한 연이와는 다르게 매우 차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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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작입니다! 재밌게 즐겨주세요:)♡
*남주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연예인 설정을 해야 작품을 올릴 수가 있더라고요.. 남주가 정국이로 정해진게 아니라 아무나 고른겁니다!
ㅓ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