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하남의 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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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해줘, 만나줬잖아."
"헐, 누나. 나랑 한 번밖에 안 만나줬잖아요."
"지금도 만나고 있으니까 두 번 아니야?"
"두 번이면 됐지, 뭘 더 만나려고."
"와... 나 좀 상처."
"만나면 계약 해주겠다며..."
"지금 계약하면 나 만나주지도 않고 부장한테 갈 거잖아요."

"나 버리고 갈 거면서 내가 왜 계약을 해줘요?"
부장님께 정국이가 계약해주겠다고 거짓말을 했다. 저 눈빛을 봐선 분명 해주긴 해줄 거 같아서 거짓말이 아니긴 하지만... 언제 계약을 해줄지는 불분명했다. 계약을 해주겠다는 빌미로 마음없는 애와 계속 만나야했다. 만나서 놀면 재미는 있지만, 딱 누나, 동생 사이로 지내면 좋을텐데 정국이가 날 좋아해서 계속 만나기엔 불편했다. 나에겐 부장님이 있기도 하고...
"..그럼 몇 번 만나줘야 계약해줄 건데?"
"흠... 누나가 날 좋아하게 될 때?"
"죽을래?? 세 번. 더이상은 나도 안돼."
"오늘부터 세 번이라는 거야?"
"응, 오늘 빼고 두 번 다 만나주면 계약해줘."
"나한테도 중요한 계약이야."
차라리 이런 조건 걸 지 말걸. 나한테는 중요하지 않은 계약이다. 이거 하나 잘한다고 승진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부장님은 워낙 일을 잘하니까 승진할 기회가 있는데 난 아니였다. 괜히 사랑에 눈 멀어서 나만 힘들어졌잖아. 정말 계약을 해줄지 모르는데 뭘 믿고 이런 조건을 건 거지?? 난 정말 생각이 없나보다.
"그래요, 어차피 질질 끌어봤자 누나 나한테 안 올 거 같으니까."
"수위는 내 마음이니까 뽀뽀해도 돼요?"
"입술 찢어버린다."
"키스는요?"
"혀 잘리고 싶어?"
"누나가 하는 거면 다 좋아."
"...이런 걸로 안 설레."

"누나, 볼 너무 빨간데?ㅋㅋㅋ 귀여워ㅋㅋ"
정직한 내 볼같으니라고... 연애의 ㅇ자도 모르는 내가 뽀뽀, 키스 이런 소리 듣고 있는데 안 빨개지는 게 이상할 정도지..!!! 성인이 됐어도 저런 단어들은 나에겐 너무 부끄러운 단어들이었다. 절대로 정국이가 말해서 설렌 게 아니라 그냥 저 단어들이 부끄러워서 빨개진 거 뿐이야!! 절대!! 네버!!!!!
"...얼른 밥이나 먹으러 가, 나 배고파."
"응응, 누나 하고 싶은대로 다해요."
"내가 다 낼게요_"

"여기가 그렇게 맛있어요?"
"나도 처음이라 잘 모르겠는데 인기 되게 많아_"
"봐봐, 사람들도 많잖아."
"사람들한테 누나 보여주기 싫은데, 통째로 빌릴까요?"
"돈낭비 하지 마."
"..넴..."
그렇게 맛있다고 소문이 자자한 레스토랑에 왔다. 한적한 시간대에 왔음에도 내부에 사람이 와글와글했다.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앉는데 우리 테이블 앞 테이블에 익숙한 뒷통수가 보였다. 그리고 그 사람 앞에 보이는 예쁘장한 여자. 왜인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내가 보고 있는 저 뒤통수는 아무래도 부장님이었거든_
"..부장님."

"..여주야..!"
"밥 먹으러 오셨어요?, 그것도 여자분이랑."
"아.. 그게 아니고... 여주야.."
"맛있게 드세요ㅎ 데이트 잘 하시고요ㅎ"
내가 오해한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분위기 자체가 선을 보는 자리였다. 여자분이 한껏 꾸민 것도, 초면인 듯 어색한 것도 그냥 다 선 자리였다. 날 좋아한다고 해서 정말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그새 내가 질린 걸까? 난 부장님을 위해서 이 X랄 하고 있는데 부장님은 태평하게 여자나 만나고 있었네?? X발.
"..여주야..!! 너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라..!"
"저 아무 생각도 안 하는데요, 부장님?"
"여기 밥 맛있다는데 많이 먹고 가세요ㅎ"
"저도 데이트하고 있던 참이라ㅎ"
"...너 또 이사랑 만나는 거야?"

"만나지 마, 그 남자랑 그만 만나."
"쟤가 알아서 할테니까 신경끄시죠?"
"아, 그리고 정국아."
"우리 회사랑의 계약은 없던 걸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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