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바투 빙의글] 남고딩 사이에서 홍일점 된 썰.zip

TXT/강태형 빙의글) 내 버릇을 바로 알아채는 태현

시험 기간이라는 건 어느 학교를 가도 지옥이었다.

 

근데 예고 시험은 차원이 달랐다.

실기 따로, 이론 따로.

일반고에서 국영수 붙들던 나는 이제 악보 이론이랑 리듬 분석을 붙들고 있었다.

 

도서관 구석 자리를 잡고 앉은 게 오후 다섯 시.

한 시간째 같은 페이지를 보고 있었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리야?

 

교재에는 온갖 기호들이 빼곡했다.

박자표, 조표, 못갖춘마디.

알 것 같으면서 모르고, 모를 것 같으면서 또 알 것 같고.

연필 끝을 입에 물고 악보를 노려봤다.

 

 

기호가 더이상 기호로 안 느껴지고, 대충 날라다니는 글씨로 보일 무렵

 

 

"그거 더러운데."

 

 

고개를 들었다.

강태현이었다.

 

내 맞은편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으며 앉는 중이었다.

 

"뭐가?"

"연필."

 

태현이 손을 뻗어서 내 손에서 연필을 살짝 내려줬다.

손목 스치듯이 닿았다가 바로 떨어졌는데,

그 짧은 찰나에 괜히 굳어버렸다.

 

"...고마워."

"뭐 봐?"

"악보 이론. 이거 시험 범위가 너무 넓어."

 

태현이 슬쩍 교재를 당겨서 봤다.

잠깐 훑더니 다시 나한테 밀어줬다.

 

"어디서 막혀?"

"다."

"다가 어딘데."

"처음부터 끝까지 다."

 

태현이 피식 웃었다.

뾰족한 송곳니가 살짝 보이는 웃음.

 

 

"일반고에서 전학 온 거잖아."

"응."

"그럼 이론 기초가 없는 거지, 모르는 게 아냐."

 

그 말이 뭔가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못하는 거랑 안 배운 거는 다르다는 말이었으니까.

태현은 자기 가방에서 필통을 꺼내더니 내 교재 옆에 놓고 말했다.

 

"어디부터 설명해줄까."

"어? 아니야, 바쁘잖아."

"나 오늘 할 거 다 했어."

 

거짓말처럼 들렸는데, 태현 표정이 진짜라는 표정이라 그냥 믿었다.

 

"그럼... 박자표부터?"

"그래."

 

태현이 내 교재를 살짝 자기 쪽으로 당겨서 펜으로 짚어가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려울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귀에 잘 들어왔다.

 

복잡한 말 없이, 딱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만 설명했다.

처음엔 이게 뭔 소리야 싶었던 것들이 하나씩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럼 여기서 4분음표가 한 박이면, 이 마디에 들어가는 음표가 몇 개야?"

"...넷?"

"맞아."

"오, 진짜?"

"그러니까. 개념 알면 적용은 금방이야."

 

태현이 덧붙이지 않고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칭찬을 길게 하는 타입이 아닌 건지,

아니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근데 그 짧은 "맞아" 한마디가

어째서인지 꽤 기분 좋았다.

 

 

 

한참 설명을 듣다가,

나도 모르게 또 연필을 입에 가져갔다.

 

그러자 또.

태현이 아무 말 없이 손을 뻗어서

내 손을 살짝 내려줬다.

 

 

"집중할 때 버릇이야?"

 

눈이 마주쳤다.

가까웠다.

 

설명하느라 교재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있었으니까,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거리였다.

 

"어...응. 옛날부터."

"고치는 게 나을 듯."

 

그 말 하면서도 눈을 피하지 않았다.

나는 슬쩍 시선을 내리깔았다.

 

... 눈 진짜 크네. 잘생겼고.

그렇게 똑바로 보면 어떡하냐고.

면역이 없어서 어째 홍당무처럼 얼굴이 익었을 것만 같다.

 

괜히 교재만 내려다보며 태현이 준 기출문제집의 다음 문제를 풀었다.

귀가 살짝 뜨거운 것 같은 건 도서관이 따뜻해서 그런 거고.

 

"다 풀었으면 보여줘."

 

문제집을 내밀었더니 태현이 쭉 훑어봤다.

 

"다 맞았네."

"진짜?"

"응."

 

태현이 문제집을 돌려주면서 말했다.

 

"봐봐, 너 생각보다 머리 좋은 거 아니야?"

 

 

근사하게 씩 웃으며 태현이 말했다.

이런 류의 칭찬은 또 낯간지러운데...

큼큼, 목을 다듬고선 대답을 한다.

 

"아니거든."

"방금 다 맞혔는데."

"그건 네가 잘 가르쳐준 거잖아."

 

태현이 잠깐 나를 보더니,

별말 없이 자기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다음에 또 모르면 말해."

"어. 고마워, 태현아."

 

이름을 부르니까 손을 멈추고 나를 봤다.

뭔가 이상했나 싶었는데,

 

"어."

 

짧게 대답하고 가방을 들었다.

도서관을 나가는 태현의 뒷모습을 보다가,

교재를 다시 펼쳤다.

 

아까까지 그렇게 어려웠던 페이지가 이제는 읽혔다.

연필을 손에 쥐었다가,

입에 가져가려다가,

멈췄다.

 

고치는 게 나을 듯.

 

태현 목소리가 귀에 맴돌았다.

 

연필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 혼자 피식 웃었다.

이런 버릇이 있는지도 몰랐다.

 

 

... 다시 얼굴이 빨개질 것 같아서 교재로 얼굴을 홱 가려버렸다.

아무도 보지 못하게

 


 

 

4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