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xt단편 모음💡]

누나, 가방 들어드릴까요?-휴닝카이

"최여주 진짜 느려"




온렌지빛 노을이 쏟아지는 교실 바닥 위로,
나보다 한 뼘은 더 큰 카이의 그림자가 겹쳐왔다.




3학년 층 주번이라 늦게까지 남아 마지막 교실 바닥을
쓸고 있던 참이었다.

다 끝내고 책상 위에 올려둔 가방을 메려는데,
언제 올라왓는지 2학년 층에 있어야 할 휴닝이가
뒷문으로 불쑥 들어와 내 가방끈을 가볍게 뺏어 제 한쪽 어깨에
걸쳤다.




"너 왜 또 3학년 층까지 올라와.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누가 보긴. 우리 둘밖에 없는데."




녀석은 내 핀잔에도 별 타격이 없는지,
내 책상 위에 앉아 긴 다리를 대롱대롱 흔들며 싱긋 웃었다.

노을 빛을 정면으로 받아 갈색빛으로
빛나는 눈동자가 꼭 장난기 많은 대형견 같았다.




"오늘 왜 이렇게 늦어. 나 밑에서 30분이나 기다렸잖아."

"오늘따라 청소할게 많아서 늦었어. 미안, 많이 기다렸지?"

"엄청요. 누나 기다리다가 목 빠지는 줄 알았잖아."




입술을 삐죽 내밀며 툴툴대던 녀석이,
이내 책상에서 스르륵 내려와 내 앞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훅 끼쳐오는 카이 특유의 싱그러운 섬유유연제 향에 나도모르게
긴장해 발끝만 바라보는데,
카이의 커다란 손이 조심스럽게 내 뺨을 스쳤다.

그러고는 청소하느라 이마에 조금 헝클어져 붙은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귀 뒤로 넘겨주었다.


닿은 손가락 끝이 생각보다 뜨거워서 심장이 쿵쿵 소리를 내며
뛰기 시작했다.
연하주제에 이럴 때 보면 영락없는 남자다.


내 얼굴이 붉어진 걸 눈치 챘는지, 
녀석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부드럽게 올라갔다.




"기다리게 한 보상은?"

"뭔 보상?"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카이는 내 가방을 멘 채로 내 손을 덥석 찾아쥐었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제 손가락을 얽어매며 빈틈없이 잡아오는
악력이 꽤 단단했다.




"일단 오늘 집 갈 때까지 손 놓지 않기."

"나갈때 애들 있을 수고 있잖아."

"안돼. 절대 안놔줄거야."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은 녀석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그리고 골목길에 사람없으면 뽀뽀도 해주기."




여우처럼 눈을 휘어 접으며 웃는 녀석의 얼굴에,
나는 결국 못 당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방과 후,
텅 빈 교실 안에는 우리 둘의 간지러운 웃음소리만 가득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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