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성 단편
무제

김하니n
2023.04.18조회수 37
자고로 대학교란 왁자지껄 시끄러운 법이다. 특히 혈기왕성한 체대생들이 모여있는 곳이라면 더더욱. 여기가 시장통인지 공부를 배우는 학교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그러나 지금은 시끄러운 게 아니었다. 왁자지껄이 아닌, 아비규환이 맞는 말이었다.
이찬은 엎어진 상태였다. 달리다가 넘어졌다. 손에 쥐고 있던 탁구 라켓은 아까 넘어지며 이미 잃어버린 지도 오래였고. 수십명의 운동화가 쉴 새 없이 지나갔다. 이찬은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상황 파악을 하기도 전에 마주한 풍경은 꼭 언젠가 보았던 영화 속 지옥 같았다.
"아아악 - !"
이찬은 눈 앞에 펼쳐진 그 상황을 주저앉아 멍하니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물어 뜯기는 끔찍한 풍경을. 그러나 물어 뜯고 있던 사람은 사람이 아니었다. 꼭 짐승의 눈을 하고서는, 사람이 아닌 것의 눈을 하고서는, 살려달라며 처절하게 외치는 비명마저 우악스럽게 집어삼켜 버렸다. 어떻게든 그것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려 게거품을 물고 발악하던 이찬의 동기는 이내 축 늘어졌다. 그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어깨에서 피를 분수처럼 뿜어댔다. 그 동기의 곁에 가까이 있었던 이찬의 뺨에 피가 튀었다. 몇십분 전 까지만 해도 즐거운 웃음소리와 뜨거운 열기로 가득하던, 방금 전까지 흘렸던 땀은 마치 거짓인 것 마냥 체육관에는 적막만이 맴돌았다. 갑자기 훅 조용해지니 피비린내가 더 집요하게 코를 파고들었다. 하필 이 냄새를 이찬은 끔찍하게도 싫어했다.
"야, 이찬!!"
누군가가 크게 자신을 부름과 동기를 열심히 물어 뜯고 있던 것이 이찬에게 달려드는 일은 동시에, 그리고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찬은 방금 제 손이 있던 자리로 입질을 하며 바닥에 얼굴을 들이받은 그것을 보며 목 끝까지 올라온 비명을 삼켰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붙잡고 순식간에 일으켜 세운 이는 동기생 고수빈이었다. 태권도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어제부터 시작한 태권도 체육관 공사 때문에 우리 탁구부와 같은 체육관을 쓰고 있었다. 탁구선수인 이찬이 자신보다 훨씬 체력이 좋은 태권도 선수가 뛰는 속도를 따라잡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이찬은 젖 먹던 힘까지 쥐어 짜내어 달렸다.
비틀거리며 달려 나가는 등 뒤로는 지옥도가 펼쳐졌다. 아까 죽은 줄로만 알았던 동기생은 온 몸을 뒤틀면서 일어나더니 자신이 당했던 행동을 다른 사람에게 또 반복했다. 그렇게 또 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반복하고, 반복하고, 반복하고·····. 사람이 사람이 아니게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이곳을 빠져나가려 발악을 하며 입구에 몰려있던 학생들은 모두 다 괴물이 되어있었다. 이 체육관에서 남은 멀쩡한 사람은 이찬과 고수빈 뿐이었다.
우선순위는 어떻게든 이 체육관을 탈출하는 것이었다. 마치 목적지가 있는 것처럼 재빠르게 문을 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는 고수빈을 힘겹게 쫒아가며 이찬은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사격부 연습장 앞에서 빨리 오라며 손짓을 하는 승관과 지훈을 발견 할 수 있었다. 목적지가 여기였나, 그러고 보니 사격부 연습실과 체육부는 붙어있었지, 아마. 덕분에 사격 소리가 시끄럽다며 불평불만을 늘어놓던 코치님을 매일 볼 수 있었다. 이찬은 잠시 숨을 몰아 내쉬며 문밖에 난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이내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승관에게로 돌렸다. 그것들과 눈을 마주쳤기 때문이다. 초점이 없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같이 웃고 떠들며 연습하던 사람들이 살점이 다 뜯겨 나간 채 마주하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이찬은 굳이 힘든 일을 하지 않기로 했다. 부승관이 기다란 막대기로 문짝을 틀어 막았다.
"형, 이게 다 무슨 일이야. 그나저나 형은 왜 또 여깄어. 배드민턴부잖아."
"나도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는데... 무서워, 그냥. 너희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승관이 형은 자신보다 겁이 많았다. 이찬도 겁이 많았다. 이 중에서 가장 겁이 없는 사람은 고수빈과 이지훈 뿐이었다.
"..나도 무서워. 그러니까 조용히 좀 해."
고수빈도 무서웠나보다. 그러나 숨을 돌리던 것도 잠시, 그것들이 문을 쾅쾅 두드리기 시작했다. 오래 버티지 못 할 것 같았다.
"아... 엄마 보고 싶어. 형들은 다 괜찮겠지."
부승관은 망연자실하게 중얼거렸다.
"오빠, 여기 있는 총, 저것들 죽일 수 있을까?"
고수빈은 사격장 바닥에 굴러다니는 총들을 집어 들어 이지훈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 그거... 응."
"..그럼, 다들 하나씩 챙겨. 혹시 모르니까 하나 더 챙길게."
이찬과 부승관, 그리고 고수빈과 이지훈은 급하게 총을 챙겨 들고 사격장 밖으로 도망쳤다.
"강지윤 파이팅~"
"야 지윤아 승철이 봐주지 말아라. ㅋㅋ"
아, 코치님도 없는데 어떻게 우리끼리 연습을 하냐? 부루퉁하게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도 다리를 잽싸게 휘둘러 순식간에 넘어트렸다. 역시, 승철이가 이겼네.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하는 동기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최승철은 억울한 눈빛으로 널브러져 있는 강지윤을 일으켜 세웠다. 오빠, 혹시 나한테 원한이라도...? 응. 니가 내 과자 뺏어 먹었잖아. 지윤의 얼굴이 완전히 죽을상이 되어버렸지만 승철은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지윤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태권도 훈련실. 코치님이 볼일 좀 보고 오겠다며 잠깐 자리를 비운 탓에 다른 과 동기 학생들까지 모여 꺄르르 웃으며 휴식을 취했다. 그러던 와중 익숙한 얼굴 둘이 훈련실 문을 열고서는 손을 흔들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코치님이 아니라 홍지수와 윤정한이었다.
"하이~"
"엥, 너희 코치님은?"
"우리? 볼일 좀 보고 오신다고 어디 가셨는데.."
엇, 야 너도? 나도. 서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꺄르르 웃다가 지윤이 질문을 꺼냈다.
"근데 다들 수빈이 언제 돌아오는지 알아요?"
"응? 수빈이?"
걔 아까 사격장에서 지훈이 좀 구경하고 오겠다고 갔는데. 짜식이, 빠져가지곤... 고수빈의 근황을 묻자 이내 모두 고수빈을 디스하며 농담을 이어 나갔다.
그렇게 정확히 15분 뒤, 웃음소리가 뚝 끊어져 버린 건 정상적이지 않은 호흡을 내쉬며 몸을 던져 문을 열고 들어온 누군가 때문이었다. 유도복을 입고 있었고... 유도부 학생인가? 다들 웅성댔지만 그 학생은 신경 쓸 겨를도 없다는 듯 재빨리 문을 걸어 잠그고, 문을 등지고서 주저앉았다. 그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겁에 질린 얼굴이다. 신경 쓸 겨를도 없다는 바쁜 얼굴이 아니라.
"뭐야, 연수?"
"왜 저래 쟤. 무슨 일 있어 연수야?"
밖에, 밖에... 연수라는 유도부 여학생이 무어라 말을 꺼내려고 한 듯싶었으나 이내 친구들의 손길에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친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연수를 꽉 끌어안고 있으니 연수는 울음을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거친 숨을 내쉬면서도 그렇게 흐느꼈다. 눈에는 울음이 가득 차 시야가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텐데 계속 시선은 문 바깥을 향했다.
"야, 괜찮아? 숨 좀 쉬어."
유도부의 주장인 윤정한은 그 아이의 등을 잠시 쓸어내려 주고서는 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최승철의 발걸음에 그의 친구 셋도 문 쪽으로 향했다. 강지윤과 홍지수, 그리고 윤정한. 분명 조용한데? 최승철은 중얼거리며 문을 벌컥 열었다.
아니, 선배. 바깥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 줄 알고 가요. 혜연이가 저렇게까지 있을 정도면.. 강지윤은 겁이 많았다. 부승관보다 많았다. 그러나 이내 이 말을 꺼내지 못했다. 두려움에 몸을 떨고 있는 혜연을 앞에 두고 이런 말은 차마 꺼낼 수 없었다. 무언가에게 도망치듯이 들어와 친구들의 품 사이에서 끅끅 대고 있는 아이는 정한의 직속 후배였고, 어쨌거나 홍지수와 최승철에게도 후배였다. 유독 동기 사랑이 남다른 체대에서는 후배든 선배든 자신의 동기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누군가가 나서기 마련이었다. 자신은 겁이 많았지만, 그래도 그랬을 것 같다. 결국 강지윤은 뒤돌아 말을 꺼냈다. 그녀가 부장이었기 때문이다. 나서는 걸 싫어하는 최승철을 대신해 지윤이 부장이 됐다.
"다들, 가만히 있어요. 코치님 오기 전까지.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지 모르니까 가만히 있고-, 개인행동은 절대 금물이에요. 알았으면 고개 끄덕여요."
강지윤의 평소 말투가 아닌 빳빳하게 굳은, 묘하게 사무적인 말투가 나오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원하던 대답이 나오자 강지윤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다시 뒤돌았다. 그리곤 먼저 바깥을 살피고 있던 제 선배들에게로 뛰어갔다.
"으... 이거 피 뭐야?"
최승철은 신발 바닥에 밟히는 진득한 피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연수가 무언가에 그렇게 쫓기듯이 달려왔음에도 복도는 소름 끼치리만큼 조용했다. 그 대신 복도에 피 칠갑이 되어있었다. 그냥 피도 아니고, 검은색 빛이 도는 검붉은 색 피. 더 끈적하고 역겨웠다.
"복도엔 아무도 없는데요.."
"근데 연수가 왜 그렇게 뛰어온 거지."
"으악, 이거 피 뭐야. 진짜 싫어어...."
"아아, 왜 선배들 먼저 가요! 여자 버리고 가기 있기, 없기."
"뭐래, 웬만한 여자들보다 힘도 센게."
지윤과 승철이 작게 투닥댔다. 제일 체격 좋은 승철을 앞에 내세우고 그뒤로 정한, 지윤, 지수가 뒤따랐다. 아무도 없어서, 고요한 적막만이 흘러서 더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복도의 퀴퀴한 냄새가, 기분 나쁜 눅눅한 습기가 코를 찔렀다. 지윤이 몸서리를 한번 치더니 얼른 빨리 확인하고 오자며 재촉을 했다. 게다가 최승철도 그 큰 덩치에 비해 겁이 어찌나 많은지 정한의 팔을 붙잡고 무섭다며 찡찡댔다.
"이상하지 않아요?"
응? 뭐가. 강지윤이 의문점을 제기하자 홍지수가 대답했다.
"아니.. 뭔가 좀 이상하잖아요. 연수가 그렇게 누군가에게 쫒기듯이 달려왔는데, 복도에 아무도 없다는게."
그냥, 감이 좀 안 좋아서.. 강지윤이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윤정한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말을 꺼냈다.
"괜찮을거야."
괜찮았으면 좋겠네요.
긴 복도를 지나 코너를 돌자, 유도 훈련실이라고 크게 팻말이 적힌 곳이 있었다. 그냥 문을 열면 되는건데도 이게 뭐라고, 윤정한은 친구들에게 물었다. 문 연다? 응, 빨리 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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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언젠가 완성할 글. 지금 여기에만 갑자기 삘 받아서 쓰고 버려둔 글이 몇개인지 모르겠어요
아무튼 이것도 언젠가는 완성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