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녀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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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 중반, 나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신분제였던 그곳에 부모님의 신분은 평민이었고, 나 또한 자연스레 평민이 되었다. 평범한 집안에서 평범하게 자라던 나, 하지만 점점 커가며 이상한 것들이 보였다. 사람이 아닌 것, 특유의 아우라와 코를 찌르는 혹렬한 악취가 나는 것. 우리는 그걸 ‘악마’라 칭했다. 악마가 보이는 사람은 저주받은 것이라 믿었다. 그걸 알고 있던 나는 ‘악마’가 보이는 것을 철저히 숨겼다. 보여도 보이지 않는 척, 말 걸어도 모르는 척.
나와 신, 오직 둘만이 아는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에 완전 범죄란 없었고, 결국 누군가에게 들키고 말았다. 나는 고작 악마를 본다는 이유만으로 흔히 마녀사냥이라 불리는 화형에 집행 당할 위기에 처했다. 내가 보고 싶어서 보는 것이 아닐뿐더러 본인들에게 피해를 준 것도 없는데 이렇게 짧은 생을 살다 죽다는 게 억울했다. 나는 마녀가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아이일 뿐이었는데, 사람들은 나를 마녀라 칭했다.
활활 타오르는 뜨거운 불길이 내 발 아래에서부터 점점 나를 감싸왔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나에게 마녀라며 돌을 던졌다. 돌에 맞아 얼굴에 생채기가 생겨도, 뜨거운 화염에 휩싸여도 군말 없이 고개만 떨군 채 죽음을 받아들였다. 어차피 신은 내 편일 것이라고, 굳게 맹신했으니.
하지만 죽은 후 알게 되었다. 세상에 신은 없구나, 나를 지켜줄 신 따위는 애초에 없던 거구나. 나는 나를 죽인 사람들에게 독기를 품은 채 내가 신을 만들기로 했다. 하늘에 높게 떠있는 밝은 달. 혼자 드넓은 하늘을 짊어지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하늘이 버거울 만도 한데 절대 놓지 않았다. 나는 달을 신으로 섬겼다. 달의 뒤에서 그림자처럼 나를 죽인 사람들에게 복수를 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렇게 나는 환생하게 되었고, 중세 시대 때는 ‘악마’를 보는 능력이 있었다면 이제는 중세 시대의 과거를 기억하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나의 신인 달이 나의 복수심을 알아본 것이다.
나는 과거의 기억으로 인해 사람을 아무도 믿지 않았다. 내가 믿는 건 오로지 달뿐이었다. 매일 묵묵히 멍만 때리며 저주 생각만 한 탓인지 학교 다닐 때는 과거처럼 ‘마녀’라는 소리를 들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분노가 치솟았지만, 시간이 지나니 ‘마녀’라는 단어를 들어도 개의치 않은 채 초연히 반응했다.
그렇게 나는 점점 성숙해졌다. 과거의 기억을 가진 탓인지 내 집안은 좋지 않았다. 알코올 중독의 아버지와 외간 남자를 만나는 어머니. 모두 나에게 잘해주긴커녕 온갖 비속어를 내뱉고 폭력을 행사했다. 그렇기에 더욱 나의 복수심은 커져만 갔다. 내 주변에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생각에. 이웃 주민들은 집안도 좋지 않은데 학교에서까지 질타를 받는다며 내가 불쌍하다 속삭였지만 나는 생각했다. 더욱 불쌍하고 애처로운 건 그 사람들이라고.
나는 어느새 성인이 되었고, 나의 뒤에서 속삭이던 그 사람들에게 복수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몸이 미성숙한 아이의 몸이라면 그만큼 힘도 없으니, 복수하기에는 적합하다고 생각되지 않아 약 20년을 기다렸다. 어쩌면 더 기다렸을지도.
사람들은 내가 성인이 됐는데도 나를 마녀라 부른다. 긴 생머리와 긴 손톱, 진한 화장, 그리고 매일 입는 착장의 컬러는 거의 블랙이기에. 그래서인지 몇몇 사람들은 내가 신비주의라고 했다. 조용히 있는 내가 신기했는지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도 있었지만 모두 금방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떨어지지 않는 아이가 하나 있다. 유일하게 나를 마녀라 부르지 않고 마음을 내어준 아이, 하지만 나는 그가 싫었다. 사람은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기에.
“나 좀 그만 쫓아다녀, 지겹지도 않나.”
“응, 항상 새로운데?”
매일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그에게 지쳐 있었다. 내가 어딜 가든 따라가고 싶어 하는 건 물론, 내가 무슨 짓을 하든 이해했으며 내가 상처받는 말을 하더라도 다시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그런 그가 답답해 말했다.
“나는 어차피 인간 안 믿어, 너도 안 믿고.”
“인간은 어차피 전부 배신할 존재들이니까.”
“소문 하나 잘못 퍼지기라도 하면 죽일 듯이 물어뜯잖아, 어쩔 때는 진짜 죽이기도 하고.”
“인간들은 악마를 싫어하지만, 사실 가장 사악한 악마는 인간이거든.”
“넌 성악설을 믿는구나, 나는 성선설을 믿는데.”
“성선설은 무슨… 됐다, 나한테 관심 좀 그만 가져.”
“난 네가 원하는 그런 여자가 아니야, 차라리 너도 다른 사람들처럼 나를 마녀라고 칭하고 조롱해.”
“너는 진짜 마녀가 아니잖아, 난 네가 궁금해.”
“마녀 맞아, 나.”
사람들이 나를 마녀라고 칭하고, 마녀라고 믿는다면 내가 그 바람대로 해주리라. 나의 말을 들은 그는 퍽 당황한 듯했고, 나는 피식 웃은 뒤 가던 길을 마저 갔다. 평소 농담을 잘 던지지 않던 내가 던진 농담을 진심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듯 그는 나를 쫓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 피 튀기는 복수를 시작했다. 내가 마녀사냥 당할 때의 그 고통보다 배로, 그들이 당했으면 했다. 가장 먼저 나의 타깃이 된 건, 나의 부모님. 배 아파 낳은 자식은 부모가 책임져야 하기에. 나는 외간 남자와 놀고 있을 어머니를 먼저 찾아갔다. 복수를 위해 어머니의 뒷조사를 해보았고, 지금 시간으로 봐서는 모텔에 있을 게 분명했다. 나는 경찰인 척 위장해 모텔 문을 두드렸고, 어머니는 급하게 차려입은 듯한 모습으로 나왔다.
“… 뭐야?”
“어머니, 진지하게 할 얘기가 있어서 찾아왔어요.”
“지금 바쁜 거 안 보여?”
“응, 안 보이는데요. 남자랑 신나게 뒹굴고 있는 것밖에.”
어머니는 내 말에 분노한 듯 보였고, 남자에게 말을 하고는 짐을 챙겨 나왔다. 어머니는 나의 손목을 세게 잡아 아무도 없는 것은 물론, 감시 카메라도 없는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어떻게 이런 곳을 골랐는지,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감사했다.
“할 얘기가 뭐길래 거기서 그런 말을 해, 너 미쳤어?”
“미친 거 맞아요. 어머니 이제 남자랑 못 뒹굴겠다. 아쉬워서 어쩌죠? 아직 다 못 즐겼는데.”
“나 여기서 어머니 죽일 거거든요, 내 인생에 별 쓸모도 없는데 부모랍시고 설치는 꼴이 보기 싫어서.”
나는 그렇게 나를 마녀라고 칭한 사람들에게 마녀의 모습으로 가 핏빛 복수를 행했다. 사람을 죽이는 일, 물론 범죄라는 걸 안다. 죄의식을 느끼지만 분노와 쾌감이 죄의식을 이겼다. 그렇게 나도 피비린내가 맴도는 복수에 성공했고, 마지막 복수의 대상은 나로 정했다. 나를 좋아하던 그 남자가 보는 앞에서 나는 나에 대한 복수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