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첫 키스였다고.
이 나이 먹고 뭐 했냐고 물어보면··· 진짜 뭐라 할 말이 없긴 한데, 진짜 나 열심히 산 것 밖에 없다. 세상아.
역시나 내 예상대로, 생각지 못했던 질문이라는 듯 헛기침을 남발하는 그. 원래 이렇게 직설적인 편이냐면서 묻길래, 적어도 할 말은 하면서 사는 성격이라 답했다. 물론 회사에서 빼고요.
"설마 아까, 어제 일 때문에 울고 있었던 건 아니죠?"
그럴 리가. 그 정도 일 하나로 질질 짰으면, 난 진작에 내 인생이라는 이유 하나로 눈물 짜며 태평양을 하나 더 만들었겠어요.
"절대 아니에요, 그런 건."
"실은···."
잠시나마 뜸을 들이던 그가, 나에게 고개를 가까이하라는 듯 손짓하길래 나는 아무 의심 않고 순순히 말을 따랐다.

"내가 지은 죄가 있어서··· 도망 좀 쳤어요."
죄...? 내 귀를 의심했다. 죄라니? 범죄자라는 소리야? 그럼 뭐...
"잠깐만. 그러면 어제 그 여러 남자들의 발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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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에요, 설마?!"
어머, 세상에. 나 지금 범죄자랑 같이 있는 거냐고!! 지금 경찰들 피해서 도주 중인 범죄자랑 같이 대화를 했다는 거잖아?!? 현상금 있을까?! 확 경찰서 가서 위치 불어버려?
(((보통 정상인이라면 범죄자라는 사실에 겁을 먹을 텐데... 이런 상황만 봐도 하여주는 보통 정신(?)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음.)))
"아···. 이야기가 그렇게 되나."
"그게 아니면요!"
"···말하기가 좀 복잡해요. 근데 경찰은 아니야."
"···못 믿겠다면요."
"그럼 못 믿는 거고."
뭐가 이렇게 당당해? 하긴. 처음 보는 여자한테 키스 할 정도면 얘도 보통 놈은 아닌 거지. 암암. 그래.
"와... 그러면 그 사람들한테 안 들키려고, 나한테 키스를 퍼부었다는 거죠?"
"···표현이 상당히 적나라하네."
내 말이 어지간히 웃겼던 모양인지, 고개 젓혀 웃는 그. 도대체 뭐가 웃기지. 그렇게 내가 그를 범죄자로 거의 확신 지어 갈 때 즈음···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는 이 남자였으니.
"아무래도 정식적으로 사과드려야겠죠, 제가."
"네···?"

"저녁이라도 살게요. 같이 가죠."
그렇게 얼떨결에 저녁 약속을 승낙하게 된 나. 뭣도 모르고 이 남자에게 이끌려 한참을 어디론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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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한 반응이네요."
정작 당사자는 무슨 일이냐는 듯, 여유로운 모습. 그러니까··· 이 남자가 돈이 많은 이유는 한 기업의 사장이라서 그렇다는 거고, 그러면...
"한 회사의 사장이 죄를 지은 거네요?! 그것도 경찰들한테서 도주까지 했고?"
"···경찰들 아니라니까."
"죄를 지은 사람을 쫓을 사람은 경찰밖에 없는데요?"
"경찰보다 무서운 사람들이 있어요."
경찰보다 무서운 사람들이라... 도대체 그들이 누구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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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혹시..."
이번에는 여주가 무슨 말을 할지 내심 기대하는 지민.
"불법 사채업자들한테 돈을 좀... 빌린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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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서자마자, 분위기부터 압도당할 것만 같은 이 레스토랑. 심상치가 않다. 굉장히 부유한 사람들만 올 법한 값비싼 인테리어에··· 온 주변이 금으로 도배. 물론 진짜 금인지는 모르겠다만. 이런 곳에 한 두번 온 사람이 아닌 듯, 지민···?이랬나. 아무튼 이 남자는 여유롭게 창가 쪽 자리에 앉는다.
내 의자를 먼저 빼주는 것 또한 잊지 않고서.
"···이 정도까지는 안 받아도 됐는데."
"아닌데.ㅎ 그쪽 표정은 내심 그러길 바랬던 눈치인데요."
앗 이런. 내 속을 들여다보는 중인가. 들켜버렸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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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는 직원에게 알 수 없는 말들을 하더니, 이내 싱긋 웃은 직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주방을 향했다. 음... 대충 주문을 한 거겠지?
"어···. 저기..."
"네?"
"아니에여."
뭔가 물어볼 게 있었는데, 이 남자랑 눈 마주치는 순간 잊어버렸다. 레드썬. 내가 먼저 말 꺼내고 무안하니까 괜한 뒷머리 긁적이며 시선을 창가쪽으로 돌렸지.
"아, 그쪽은 이름이 어떻게 돼요."
뭐··· 질문이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왜 궁금한데요-?"
"아... 궁금하면 안 되는 건가."
범죄자한테 내 이름 알려줬다간, 내 이름 팔아먹는 거 아니에요?. 이러니까 사연 백만 개 있는 사람처럼 입을 열다 말더라.
그렇게 마주 앉은 자리에서 각자 다른 짓 하면서 꽤나 조용한 시간이 계속되던 중. 이 적막을 깨야겠다 싶어 못 참고 입을 연 사람은 나.
"저기- 저 건물은 뭐예요? 되게 짓다 말은 건물처럼 생겼다."
다행히도 내 멘트가 괜찮았는지, 살풋 웃음 지으며 손가락으로 저 건물? 가리키는 남자. 네- 그 건물이요!
"퐁피두 센터_라고. 20세기 이후의 현대 미술 관람하는 곳이에요."
"오···. 가보셨어요?"
"거의... 제2의 집 수준이죠."
"헐... 부러워. 직장 바로 옆이 미술관이고, 집 근처가 박물관이겠네."
푸우-. 입술 삐죽 내밀고 탁자에 대고 턱 괴는 여주 보며, 지민이 여주 자세 따라하며 한 마디한다.
"그러고 보니까, 그쪽은 나에 대해 많이 알아가네요."
정작 나는 당신에 대한 건 전혀 모르는데.라며 나름대로 서운함을 표출한 지민이 여주를 빤-히 바라보지. 이름이라도 알려줘야하는 거 아니냐며.
"···그렇긴 하다."
생각해보니까, 그렇긴 하더라고. 나는 이 남자 직업, 신상(범죄자), 재력까지 알아가는데... 이 남자는 나를 그냥 지나가는 여자겠거니-하고 있을 테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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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딱 하나만 알려줄게요."
그제서야 입가에 미소 띠는 그. 내 손짓 하나에 얼굴을 가까이하길래, 귓가에 진-짜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내 나이 스물 아홉이에요. 이제 곧 서른."
큭큭... 내 나름대로 제일 쓸데없는 정보를 흘려줬다고 생각했다. 지금쯤이면 어이없어하고 있을 그의 표정이 기대되어 그를 쳐다보는ㄷ···
어이없어하기는커녕, 헤실헤실 웃고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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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보다 누나였어?"
이러면서 웃는다니까. 아, 너 반칙. 너 유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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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13일 날씨: 코올드
무슨 겨울이 벌써부터 왔는지, 얼어죽는 줄 알았다. 고3이 학교에서 멋 부려보려고 코트입었다가 말 그대로 봉변 당한 거지. 아, 근데 오늘 왠 울보를 봤다. 학교에서. 우리 교복을 입은 애가 노랑 명찰 달고 있더라. 얼굴 보니까... 울면서 여자 홀릴 스타일이더구만. 나름 생긴 얼굴이긴 하던데, 울보라서 탈락. 무튼 하도 서럽게 울길래 다가가서 말 좀 걸어주니까 얼마 안 가 울음 그치고 웃던데, 웃는 것도 우는 것만큼 예쁘더라. 짜식, 백퍼센트 여자친구 있겠거니- 그냥 놓아주기로 했다. 그치만... 오늘만이라도.라는 마음에 몰래 학원 야자 다 째고 애 든든하게 먹이고, 웃게 하고, 무슨 아기 달래듯 다뤄주니까 고맙다며 집까지 데려다주던데... 좋았다. 그냥 좋았다고. 이 세상은 다 필요없고... 잘생긴 남자 하나면 돼. 응. 나 진심이야. 어른 되면 저어기 외국 가서 잘생긴 사람만 찾고 다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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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생에 치이면서 전개력 걱정 안 하고 힐링하면서 쓰는 유일한 글...☁️
[망개망개씌 사담]
아 좋네요. 저 이것만 쓰면 어떡해요. 진챠. 하. 곤란한데. 좋다. 아, 마지막에 일기로 추정되는 저 글은 하여주 씨가 고삼 때 인생에 치이며 의식의 흐름대로 쓴 일기장의 일부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