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
"하여주. 고3."
자, 여기 내 명찰을 봐. 너랑 같은 학교란다. 이 올망졸망한 눈빛으로 날 보고 있는 강아지에게 최대한 친절히 다가가야겠다 싶어서 꺼낸 말이었는데···
"고1 박지민이요."
난데없이 얘도 자기소개를 한다.
"어···?"
"이거... 말하는 거 아니었어요?"
아니었어.라고 말하고픈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얘 눈을 보고 있자니... 그런 말 못해. 절대 못해. 그러다간 내가 너 울리겠어.
"아하하... 맞지, 그럼."
그렇게 진짜... 많이 어색한 기류가 맴돌고 있었는데, 이 와중에 스탠드 천장에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어. 주변 둘러보니까, 비가 오고 있더라고. 그래, 먹구름이 쎄하다 했어.

"어... 비 온다..."
옷 소매로 눈물 닦던 얘는, 몇 번 숨 고르더니 가방 안에 있던 우산 꺼내들고 일어섰다. 그리고선 아무 말 없이 나를 빤히 바라보는데···
나 뭐, 어떡하라고.
"비 맞고 갈 거예요···?"
아, 이거 물어보려던 거였어-? 으응~ 나 씌워주려고 그랬구나? 이쁜 자식.
"나 씌워줄 수 있어?"
"네, 이리로 붙어요."
나를 제 쪽으로 가까이 하더니, 검정 3단 우산 펼친 지민이 너는 아무 말 없이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었다. 조용했는데 우산에 닿는 빗방울 소리라도 있어 다행이었다니까.
"이제 어디 가?"
"···집이요."
어째 집을 말하는 네 표정이 어두웠다. 아··· 이게 아닌가. 서둘러 대화 주제를 바꿔야겠다 싶었던 하여주. 비장하게 새 질문을 던졌다.
"아까 왜 울었어?"
"··· ···."
와, 이것도 아닌가 봐. 하여주. 불편한 질문만 골라서 한 건가. 오케이, 그럼 이번에는 질문이 아닌 듯 질문 맞는 걸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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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말고 나랑 놀러 갈래?"
오늘 서로 처음 본 사이에, 나올 말은 아니긴 했다. 그래도 뭐 어째, 이런 울보 강아지를 절대 혼자 보낼 순 없었어. 뭐라도 먹이고, 웃는 모습 보고 나서 보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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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빠져나온 지금. 이 강아지 뭐라도 빨리 먹여야겠다 싶어 학교 바로 앞에 있던 분식집에 들어왔다. 역시나 아무도 없군. 전세 낸 기분을 느낄 수 있겠어.
"자, 앉아."
"어··· 선배가 사는 거예요?"
"응. 내가 살게."
어느 누구한테도 먼저 돈을 쓰려한 적이 없는 나 하여주. 울보 너한테 처음으로 돈 쓴다. 영광인 줄 알아야 해.
얼마 머지 않아, 떡볶이 2인분 순대 1인분 김밥 한 줄이 테이블을 가득 메웠고_ 음식을 향해 초롱초롱 반짝이는 네 눈빛은... 조금 귀여웠다. 남동생 있으면 이런 기분이려나. 숟가락 젓가락 앞에 놓아주니, 잘 먹을게요. 환히 웃으며 대답하는 너. 많이 먹어, 너 다 먹어.
김밥 한 조각, 떡볶이 떡 하나만 집어 먹었을 뿐인데 네가 먹는 모습 보니까 내가 다 배부르더라. 잘 먹네.

"선배는 안 먹어요···?"
볼 한 가득 다람쥐처럼 머금고 있던 네가, 너만 바라보고 있던 내가 어지간히 신경쓰였던 모양이다.
"난 별로 배가 안 고프네."
"근데에..."
"선배는 야자 안 해요?"
"응? 응."
"왜요?"
"집에 빨리 가고 싶어서."
오... 세상 처음 보는 사람마냥 날 보더니 작은 감탄사 내뱉고 순대 한 조각 야무지게 입 안에 넣는 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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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울보 강아지 배 든든히 채워주고, 강아지가 씌워주는 우산 밑에서 길 좀 걷다 보니 보이는 인형 뽑기 기계.
"헐, 우리 이거 하자!"
"이거 잘해요?"
"크으- 너 못 들었니? 우리 학교의 소문난 인형 뽑기 고수야, 나."
"딱 기다려봐."
야외에 있던 인형뽑기 기계는 비가 오는 탓에 물로 적셔지는 중. 한 편, 비를 맞든 안 맞든 신경 안 쓰고 벌써부터 자세잡고 지갑 열어 동전 넣는 여주. 버튼 타다다닥 누르며 손 좀 풀더니 바로 눈빛 돌변.
그런 여주 옆에서 여주 지켜보고 있던 지민이는 우산을 여주 쪽으로 기울여준다. 정작 제 한쪽 어깨는 젖어가는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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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두 번··· 정도? 시도했나? 손바닥 두 배만한 크기의 강아지 인형 뽑은 여주가 만족한다는 듯 인형을 문질러보더니, 지민에게 건네줬다.
"이거 너 닮았다."
"네···?"
"너 가져. 선물."
"이걸요...?"
다짜고짜 오늘 처음 본 사람에게 인형도 받고, 밥도 얻어먹은 지민이. 그 나이 때 그저 순수했던 지민은 자기가 운이 좋은 아이라고 생각했다지. 여주가 건넨 인형 품에 꼭 안아들고, 여주가 먼저 앞장 서면 뒤에서 따라가며 그런 여주에게 우산 씌워주느라 꽤 바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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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오로지 여주의 주관적인 의견으로 인해 끌려다니다시피 시간을 보낸 지민이는 바닥난 체력으로 인해 끝내 한 마디 했다.

"선배, 우리 이제 좀 쉬는 건···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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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여주가 지민을 이끌고 오게 된 곳은, 자기 집 아파트 놀이터. 장소 선정부터 상당히 이기심이 느껴지는 것같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지민이는 여주가 사 준 메로나 하나랑 인형 양손에 들고 여주를 따라 그네에 탄다.
어느덧 해는 졌고, 하늘에 자리 잡은 건 짙은 어둠. 비가 그새 그치긴 했지만, 저녁 내내 내리던 비로 인해 놀이터 모래사장은 발을 디딜 때마다 질퍽질퍽_ 발이 빠졌다.
나란히 그네에 탄 두 사람도, 각자 다른 위치에 책가방을 내려놓고서 스스로 발로 땅을 밀며 찬 바람을 느낄 만큼만 그네를 타기 시작했다. 물론 하여주만.
아까부터 여주에게 할 말이 있는 듯, 입 꾹 다물고 여주에게 눈빛을 보내오던 지민이었지만 우리의 눈치 고자 하여주가 그걸 알아챌 리 없었지.
"저기··· 하여주... 선배."
아무 생각 없이 양팔 옆으로 뻗고, 그네 타기를 만끽 중이던 여주는 지민의 부름에 곧바로 할 말 있냐며 공중을 가르던 발을 바닥에 놓는다.

"···감사했어요, 오늘."
아니나 다를까, 또 물기 젖은 목소리가 들려오길래 설마하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는데··· 역시나 눈가에 눈물 매달고 있는 울보 녀석.
"···아니, 너 왜 또 울어..."
내가 말하니까, 어째 더 우는 것 같기도. 이제 진짜 이 누나가 울 지경이다. 그만 울어, 이 강아지야...
"이제 정말 기댈 곳 없는 줄 알았는데..."
"오늘이라도 같이 있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했어요."
"뭐야, 너 꼭 떠나는 사람처럼 말하네?"
"네...?"
"그렇잖아, 왜 자꾸 과거형이야. 말이."
"···그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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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선배 못 보니까요..."
"나를... 왜 못 보는데?"
"선배가 저를 보러올 일은 없잖아요."
이 녀석... 보러와달라는 말을 꽤 잘 돌려서 말하는군.
"왜 그렇게 생각해. 내가 너 보러갈 수도 있는 거지."
"거짓말···. 선배가요?"
선배가 나 따위를 왜요...말끝을 흐리며 옷소매로 눈가를 세게 비비던 지민이는 들고 있던 메로나 한입 하더니 우물우물 입안에서 녹이며 먹고선 멍하니- 내 시선을 피해 다른 곳을 응시했다.
"···너 되게 별명 많겠다."
자기가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라는 듯, 내가 말을 한 후에야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던 지민.
"울보... 강아지... 그리고 하나 더."
"바보."
"··· ···."
"야, 네가 나 보러 오면 되잖아."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냐. 네가 나한테 오다 보면, 내가 너한테 갈 수도 있는 거지. 으이그... 이렇게 순한 순딩이가 이 험한 세상 살아간다 생각하니 벌써부터 걱정이다, 걱정.

"선배 저 만나줄 거예요?"
이제야 슬슬 입가에 미소 띠는 너. 내가 덩달아 안도했다. 응, 백번이고 만나줄게. 너 우는 모습 안 보기 위해서라도 만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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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기억이 떠오르긴 했다. 아니, 잠깐만. 그게 너라고? 내가 생각하는, 아니.내 기억에 남은 울보 강아지는... 적어도 지금 내 앞에 있는 남자와 같은 이미지는 아닌데.
조금 더 기억을 떠올리려 해도... 어쩔 수 없는 게 나이인가 보다. 그 이후로는 기억이 없다.
우선 이 남자가 한 말로 봐선... 우리가 그렇게까지 깊었던 사이는 아닌 것 같거든? 그냥 이 남자가 날 일방적으로 짝사랑했겠다... 싶은 사이인데...

"기억··· 안 나겠죠."
그냥 단칼에 내 기억의 여부를 확신짓는 바람에, 내가 뭐라 더 말할 수가 없었다. 그냥,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컨셉으로 가자. 이렇게 된 거.
"···아..."
"제가 괜한 말을 했네요. 이만 일어날까요?"
"그럴까요..."
씁쓸한 미소를 지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걸어가는 듯 했고_ 자리에 남은 나는... 그의 앞에 놓여있던 칵테일 잔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분명... 내 기억에 이 남자가 있다. 동일인물은 맞는 것 같은데··· 그때 울던 사람이 남자가 맞는데··· 왜 울었던 걸까. 내가 그때 그가 운 이유를 물어보긴 했을까. 내가 그에 대한 답변을 듣긴 했을까. 만약 그 이유를 물어보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물어봐야 하나.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됐다 됐어. 오늘 보고 말 사이인데, 뭘 그렇게까지 생각해. 정신 차리자. 다른 생각으로 빠져들 뻔하다가, 겨우 멈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둘러 바를 벗어났다.
[망개망개씌 사담]
여주 치매 아님 주의※ 10년 전 기억은 가물가물한 게 수학의 공식, 종교의 율법, 우주의 섭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