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와 막무가내는 처음이지

사랑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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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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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예쁘네.”

“뭘 그렇게 당연한 말을 해-“

“제법 능청 떨 줄도 알고?”

“이게 다 박지민 널 닮아서 그래”




발가락 사이사이로 모래알들이 비집고 들어왔다. 찝찝하면서도 나쁘지 않았다. 머지 않아 밀려온 파도가 깨끗하게 씻어주었기에. 길고 하얀 치맛자락이 바다에 잠겼다 나오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나의 옆에는, 똑같은 맨발차림의 애인이 있다.

그리고 해가 지는 저녁 때. 먹구름이 가득 메운 하늘 아래, 해변가의 부는 바람을 맞으며 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우리는 서로를 보며 웃고 있다. 글쎄, 왜지. 그냥 언제적부터 서로를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오더라. 그냥 바라만 보고 있어도 웃음이 나오는 사이.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서로의 감정이 닿는 사이. 나는 이러한 관계를 사랑이라 정의 내리기로 했다.

내 옆의 그 이가 나의 시야를 흐트리는 머리카락을 귀에 걸어주었다. 그의 손길에는 나를 향한 애정이 담겨 있었다.



“나 손 시려.”

“잡아”


바닷가의 바람이 매서운 탓에 괜히 생색 한 번 냈다.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니나 다를까 당연하다는 듯이 깍지 끼는 그였다. 호호- 내 손에다 대고 입김 불어주기까지.

겨울의 바닷물은 너무나도 차다. 이제 신발 신을까? 붉어진 나의 발을 본 그가 내게 물었다. 내가 슬슬 손발끝이 차게 시릴 즈음, 그 타이밍을 정확히 눈치 챈 모양이다. 물론 겨울 바닷가의 감성도 좋지만… 너무너무너무너무 추워. 이렇듯 감성은 현실을 이기지 못 한다.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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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사장 위에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앉아 다시금 바다를 바라봤다. 계속 반복되는 이 그림이, 밀려오기만 하는 이 파도가, 끊임없이 적셔지길 반복하는 저 모래가. 1분에도 몇번씩 되풀이되는데도 이게 뭐가 좋다고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 광경을 눈에 담을까.


“춥지?”

“별로”

“그럴 리가.”


나의 추위를 부정하는 반면에, 그는 제 겉옷을 벗어 내 어깨에 걸쳐주었다. 안 춥대도… 음. 확실히 그의 두터운 코트가 따숩긴 했다. 그나저나 내게 이 따뜻함을 건넨 그는 이제 니트 한 장만 입은 옷차림이다.




“추울텐데~”

“난 안 추워”

“과연~”

“…”

“춥지?”

“…안아줘”

“ㅋㅋㅋㅋ”


센 척 하기는. 원래 큼지막하던 어깨가 지금 한껏 움츠려졌는데 안 추울리가 없지. 잠깐 귀여워 하다가 그의 바람대로 그를 안았다. 나의 품 안에 온전히 안기기엔 한없이 큰 그의 몸. 내가 안겨야 할 판이다. 그의 손은 나의 허리를 다 감고도 충분하겠지만, 나는 여전히 버겁다. 그래도 이 버거움에서 오는 편안함이 있다. 네가 버거우니 되려 내가 느낄 수 있는 편안함.


“이제 좀 따뜻해?”

“…”

“왜 말이 없어, 좋냐구-“

“…좋다.”



흐흐 나도 좋아. 정말 좋을 때만 나오는 이 바보같은 웃음 소리가 있다. 그런 웃음소리를 너는 너무나도 이뻐해주더라. 못 말리겠다는 듯이 웃어 막. 글쎄, 네가 날 너무 좋아해서 그런 걸 수도. 그리고 애초에 이 웃음은 내가 사랑하는 너 한정으로만 쓰지.

어 근데 뭐가 자꾸 떨어ㅈ……










“뭐야, 눈 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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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그락싸그락, 눈과 모래가 뒤섞인다. 눈이 예쁜 것도 그저 한 순간일 뿐이다. 내릴 때만. 조금씩 내리는 걸 감상하기도 잠시 금세 막 쏟아지며 모래에 닿는 동시에 녹았다. 모래가 다소 질퍽해졌다. 축축해진 모래알이 신발에 덕지덕지 들러붙었다. 잠깐의 낭만, 순간의 감성을 즐기던 우리는 머지 않아 돗자리를 접고 차로 돌아가야 했다.


“운전 할 수 있겠어?”

“일단 지켜 보지 뭐.”


차 안에 히터를 틀었다. 다소 건조하지만 따뜻한 인공적 온기가 살갗에 닿자, 추위에 누적됐던 피로가 이제서야 풀리는가 싶었다. 밖에서는 생각도 안나던 게 이제서야 입맛이 돌기 시작한 건지 따뜻한 국물이 끌렸다. 어묵탕 먹고 싶다고 말하려 했는데… 창밖 너머로 쏟아지는 눈 보고 잠시 까먹었다.


“얼큰한 거 먹고 싶다.”

“헐, 나도.”


까먹어도 괜찮다. 너가 있어서! 역시 넌 나랑 같은 생각을 했던 건가.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걸 보면 신기해. 어묵탕, 매운탕, 국밥, 버섯전골, 된장찌개… 등등. 국물류는 웬만한 존재하는 거 다 떠올린 우리. 주변 식당을 탐색해볼까 했지만 귀차니즘인 우리는 조금만 더 있다 가보기로 했다.



“주변에 시장 있나?”

“글쎄다. 왜?”

“나 오뎅이 넘 먹구시포…”



사람은, 말하니까 더 생각나는 법이더라. 오뎅이랑 그 국물이 너무 먹고 싶은 거 있지. 하~ 이런 날엔 꼭 먹어야 하거든. 한창 머릿속에서 김 폴폴 나는 갓 탕에서 꺼낸 어묵 꼬치 떠올리고 있는데.



“그럼 가보자.”


바로 시동 걸고 출발하는 그였다. 우리 좀 이따 가기로 한 거 아니었어? 물으니까 자기 들으라고 한 말 아니었냐며 지민이가 그랬다. 아 그런 거 아닌데. 진짜 그냥 혼잣말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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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분 안 걸려서 근처 시장 찾아낸 지민이. 밖에 춥다고 난 나오지 말라며 차 안에 가둬두고 자기가 사오겠다고 했다. 아직도 여전히 눈은 펄펄 쏟아지고… 그 사이로 점점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이 점이 되어 안 보일 때까지 집요하게 그만 바라봤다. 그러다 사라지자, 다시금 공중에 날리는 눈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제법 이쁘긴 하네.

그가 아까 내게 해준 말이 생각 났다. 제법 예쁘네. 그런 줄 몰랐는데 가만 보면 의외의 모습이 나타날 때 붙이는 말. 애정을 필요로 하는 말이다. 당연한 자연현상, 내리는 순간에만 낭만, 바닥에 쌓이면 일거리. 시간이 지나면 다 녹아 사라지는 존재에 불과한 줄 알았던 눈도 가만 보면 의외다.

이런 자연현상이 뭐라고. 우리는 너무 사랑한다, 이 눈을.   내리는 비랑 다른 거라곤 순간의 모양 뿐이다. 어차피 녹게 되면 비와 같은 눈인데. 비극적 묘사의 상징인 ‘비’와 달리 우리는 왜 이토록 ‘눈’을 사랑할까. 눈을 매개로 사랑을 고백하고, 시를 쓰고, 낭만에 젖어드는지. 이게 사랑의 묘약이라도 되는 걸까.

그 해답은 각자가 찾기 나름일 거라 생각한다.

다만,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비 오는 날엔 우산을 쓰지만 눈이 오는 날엔 우산을 잘 안 쓰지 않는가. 비는 내리는 순간 우리의 옷깃을 적시는 반면에 눈은 옷깃 위에 잠시나마 하얀 흔적이 남는다. 비는 우리에게 닿았음을 찝찝하게 표현한다면, 눈은 비교적 자신만의 흔적을 남긴다. 어쩌면 우린 눈의 그 남은 흔적을 사랑하는 걸지도.

어차피 녹아버릴 눈이라면, 녹기 전의 그 짧은 시간동안 눈에 담아두는 게 얼마나 중요할까. 그래서 그 짧은 시간이 사랑에 빠지기 가장 적합한 순간이려나. 다시 오지 않을 순간처럼 느껴져,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기에 급급하니까.

아, 저기 멀리서 그 이가 오고 있다.
나에겐 한겨울 첫눈과도 같은 존재인 사람.















“따뜻한 국물 대령입니다-“

“우와.. 대박이다 잘 먹게씀미다”

“뜨거워, 식혀서 마셔”

“호오~”

“혼자 심심했지?”

“움 쪼금. 빨리 왔네?”

“너무 추워..”

“ㅋㅋㅋ 귀 빨개진 거 봐.”





그렇게 서로를 먼저 먹여주기 바쁜 연인의 모습. 차 안의 그들을 비춰주며 화면은 줌아웃하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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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곳에 있고 싶었다.
낮은 곳이라면 지상의
그 어디라도 좋다.
찰랑찰랑 고여들 네 사랑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한 방울도 헛되이
새어 나가지 않게 할 수 있다면.

그래, 내가
낮은 곳에 있겠다는 건
너를 위해 나를
온전히 비우겠다는 뜻이다.
나의 존재마저 너에게
흠뻑 주고 싶다는 뜻이다.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낮은 곳으로,  이정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