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아무 일도 없었어
같이 자자는 윤기를 뿌리치고 방 밖으로 나온 나. 나는 갑자기 후끈해지는 열기에 손바닥으로 목을 만졌고, 잠시 숨을 고르게 쉬며 자리에 멈춰 섰다.
술기운에 물을 찾았는지 한 손에 물컵을 들고 부엌에서 나오는 지민이. 윤기의 방 앞에 서 있는 날 빤히 보더니 뒷머리를 긁적이며 나를 부른다.
"누나, 윤기 형 방 앞에서 뭐 해?"
찬 물을 마시고 아까보다는 술이 조금 깼는지 어눌하지 않는 발음으로 지민은 나를 불렀고, 혼자 깨어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지민이의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숙였던 고개를 번쩍 들고 목을 감싸던 손을 내리며 지민이를 향해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나. 지민이는 내게 천천히 걸어오며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누나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 무슨 일 있었어?"
"어? 아, 아니? 무슨 일 있긴...."
나는 지민이의 말에 애써 고개를 돌리며 답하고는 볼을 가린 채 얼른 내 방으로 뛰어갔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얼굴이 폭발할까 봐.
***
다음 날 아침, 나는 결국 윤기 때문에 한숨도 못 자고 밤을 새운 채 일어나야 했다. 졸린 눈을 비비며 방문을 열고 나가니, 벌써 일어나 요리를 시작하는 석진 오빠가 보인다.
석진 오빠는 내게 잘 잤냐며 웃으며 인사했고, 나는 졸린 티를 내지 않으며 석진 오빠의 옆으로 가 석진 오빠가 어떤 요리를 하는지 구경했다.
"오빠, 내가 도와줄까?"
"됐어- 어제 고생하게 했으니까 아침은 내가 차릴게. 여주는 가서 애들 좀 불러와 줄래?"
나는 내 등을 밀며 부엌에서 쫓아내는 석진 오빠 때문에 더는 부엌에 오래 못 있었고, 결국 석진 오빠 말대로 다른 멤버들을 깨우러 가야 했다.
무의식적으로 나이순으로 깨우려고 했던 나. 하지만 막상 윤기의 방 문 앞에 서니, 어젯밤에 있었던 일이 떠올라 문을 열지 못했다.
"그... 그냥 정국이부터 깨워야겠다."
나는 한 번 크게 심호흡을 하며 땀으로 가득한 손을 옷에 대충 닦고는 윤기의 방 앞에 있던 발을 정국이의 방으로 옮겼다.
***
노크를 여러 번 해도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정국이의 방문. 결국 나는 문 밖에서 정국이를 깨우는 것을 포기했고, 실례합니다-라는 문장과 함께 정국이의 방에 들어갔다.
정국이의 방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각종 운동기구와 컴퓨터 세 대, 어제 배달 온 것 같은 신발들. 역시 자기관리 하나는 끝내줘. 나는 괜히 뿌듯해지는 기분에 어깨를 으쓱하며 침대에 누워 자고 있는 정국이에게 다가갔다.
"정국아, 일어나야지-"
침대 앞에 쭈구려 앉아 정국이의 이름을 불러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다. 나는 잠꼬대를 하며 뒤척이는 정국이를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고, 어떻게 깨울까 고민하다가 정국이가 덮고 있는 이불을 들춰내기로 결정했다.
"정국아, 얼른 일어나야ㅈ... 엄마야!!!"

"ㅁ, 뭐야. ㄴ, 누나야?!"
정국이가 덮고 있는 이불의 끝자락을 잡고 들춰내던 나는 이불이 반쯤 정국에게서 벗어났을 때 보이는 살구색 무언가로 인해 깜짝 놀라 소리쳤다.
비명을 지르며 이불을 던지듯 놓은 나 덕분에 깜짝 놀라 일어난 정국이. 정국이는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눈앞에 있는 나를 보고는 더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누, 누나가 왜, 왜 여기 있어?!"
"ㄴ, 너 깨우려고 와, 왔지...."
"뭐야!! 무슨 일이야!!"
"뭔 일 났어요?! 웬 비명이...."
내 목소리가 밖에까지 다 들렸는지 석진 오빠는 국자를 들고 뛰어왔고, 옆방에서 자고 있던 태형이도 베개를 가슴에 품은 채 뛰어왔다.
그 뒤로 이어서 줄줄이 정국이의 방으로 오는 멤버들. 멤버들은 나와 정국이를 바라보더니 이내 아-하는 표정으로 그럼 그렇지라며 다시 각자 위치로 돌아갔다.

"정국아, 내가 밤에 잘 때는 옷 좀 입고 자라고 했지. 어휴...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얼른 옷 입고 나와. 밥 먹어. 아, 여주도 그만하고 나와. 애들 다 깼다."
"ㅇ, 어...."
나는 얼떨결에 석진 오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뒷머리를 긁적이며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는 정국이.
그에 나는 아니라며 손을 내젓고는 자꾸만 올라가는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내린 채 얼른 나오라며 방문을 닫고 나갔다. 큰일 날 뻔했어.... 어떻게 눈앞에서 정국이 복근을...!!!

"여주 누나, 거기서 뭐 해. 빨리 와-"
"어어, 갈게!"
분명 공과 사는 분명히 했던 난데... 어째 점점 갈수록 그 차이가 옅어지는 것 같다.
***
모두가 다 모여 이제야 다 같이 밥을 먹기 시작했다. 오늘은 왠지 지민이를 보기도 그렇고 정국이를 보기도 그렇고 윤기를 보기도 그래서 태형이와 남준이 사이에 앉았다.
자신이 선택받았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었는지 밥 먹는 도중 간간이 지민이를 비웃음 가득한 시선을 바라보며 내 숟가락 위에 생선을 발라 올려주는 태형. 의도가 어찌 됐든, 그 행동에 설레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근데... 여주 누나."
"응?"
"어젯밤에 왜 윤기 형 방에서 나왔어?"
-푸웁
결국 이렇게 나온 것인가. 나는 입안에 있던 밥을 맞은편에 앉은 호석이의 얼굴에 뿜어버렸고, 내 옆자리에 앉아있던 남준이는 괜찮냐며 내게 물을 건넸다.
덕분에 얼굴에 팩을 하지 않아도 되는 호석이.... 호석이는 내가 사과하기도 전에 괜찮다며 화장실로 자리를 옮겼고, 나는 아직도 나를 빤히 쳐다보며 답을 기다리는 지민이에 빨리 머릿속을 굴렸다.
"... 갑,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지민아."
"아니, 내가 어제 윤기 형 문 앞에서 누나를 본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그전이랑 후가 기억이 안 나거든. 근데 그때 분명히 뭔가가 있었던 게 틀림없어. 안 그러면 내가 이렇게 궁금해하지는 않을 거니까. 그치, 윤기 형?"
마치 랩을 하듯 다다다다 말을 쏟아내는 지민. 윤기는 그런 지민의 말에도 아무런 반응 없이 밥을 먹기만 했고, 덕분에 나는 나한테 쏠린 다른 멤버들의 시선을 어떻게 분산시킬까 고민해야 했다.
"어... 그게 말이지...."

"없었어."
"...응?"
"없었다고. 아무 일도."
곤란해하는 나를 봤는지, 말을 더듬거리는 나 대신에 답해주는 윤기. 윤기의 대답에 지민이는 그래요?라며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고, 다른 멤버들도 관심이 없어졌는지 자기들끼리 대화하며 밥을 먹었다.
그 사이에서 유난히 시선이 가는 윤기. 아무 일도... 없었지.... 그치, 없었어.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건 맞지만, 정말 아무 감정이 없었던 걸까? 나는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다시 떠올리며 깨작깨작 밥을 먹었다.
_____
호석이는 죄가 없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