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똑똑’
이여주
― 석진 씨, 왔어요? 되게 빨리 왔네요?
김 팀장
― 네···? 석진 씨요?
이여주
― 아, 김 팀장. 내가 실수를 했네요.
김 팀장
― 아···. 저 이제 퇴근하려고 하는데.
이여주
― 네, 먼저 퇴근해요.
김 팀장
― 알겠습니다. 이사님도 늦지 않게 들어가세요.
이여주
― 네, 들어가요.
김 팀장은 그렇게 고개를 갸우뚱거리고는 이 사실을 나갔다. 딱 봐도 환한 공간에서 얼굴을 똑바로 보고도 이름을 잘못 말하는 내가 이상할 수밖에 없지.
나는 ‘안면실인증’이라고 불리는 사람의 얼굴을 인식을 못 하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 1년 전 교통사고로 인해 장애를 앓게 됐다. 여태껏 옆에 비서를 두고 사람을 보면 비서가 먼저 전해주고는 했는데, 말을 꺼내지 않는 것을 유지해오며 조심, 또 조심해오던 나인데, 오늘은 비서도 퇴근한 데다가 석진 씨가 회사로 찾아온다고 해서 들뜬 바람에 먼저 말을 꺼내버렸다.
이여주
― 알아채지 않았겠지···. 방심하면 안 되는데···.
그렇게 조금 뒤 또 누군가가 노크를 했다. 나는 이번에는 조심하며 먼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들어오겠다는 말과 함께 그 누군가가 들어왔다.
‘쾅’

김석진
― 여주 씨, 나예요, 나 왔어요.
이여주
― 어? 석진 씨···. 보고 싶었어요.
나는 석진 씨인 걸 알고 나자 그의 품에 푹 안겼다. 그러자 석진 씨도 나를 손으로 감쌌다. 석진 씨는 1년 전 내가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병간호를 해주던 간호원이었다. 엄마 친구가 의사라 소개받았던 간호원이었는데 어느새 친해졌고 현재 1년 넘게 썸타는 중이다. 그리고 가족과 친구, 비서 말고 유일하게 내 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아, 1년 넘게 썸만 타고 있는 이유는 내가 그러자고 했다. 혹시나 썸을 타다가 중간에 내가 싫어지면, 감당하기 힘들면 떠나도 좋다고. 석진 씨는 그럴 일은 절대 없다고 신신당부를 했지만, 그래도 모르는 거니까. 혹여나 떠나더라도 편하게 떠나라고 내가 썸만 타자고 권유를 했더니 석진 씨는 처음에는 부정했지만, 나의 계속된 부탁에 결국 알겠다고 해서 이렇게 썸만 타는 중이다.
김석진
― 나도 보고 싶었어요, 여주 씨. 오늘은 별일 없었죠?
이여주
― 사실··· 나 아까 들킬 뻔했어요.
김석진
― 정말요? 어쩌다가.
이여주
― 석진 씨인 줄 알고 들떠서 팀장한테 석진 씨라고 해서 큰일 날 뻔했어요.
김석진
― 아이고···. 그래도 다행이네요. 업무는 다 끝났어요?
이여주
― 그럼요! 석진 씨 온다고 해서 엄청 빨리했어요.
김석진
― 힘들었겠네. 여주 씨가 좋아하는 버터 카페 예약해놨어요. 얼른 가자.
이여주
― 헐···. 안 그래도 거기 가고 싶었는데. 석진 씨랑 나는 역시 잘 통한다고요.

김석진
― 서로 많이 사랑해서 그런가?
이여주
― 그런가 봐요. 얼른 가요.

‘띠링-’
카페 사장
― 어서 오세요. 어? 오늘도 오셨네요.
이여주
― 저희가 좀 많이 보이죠.
김석진
― 카페는 무엇보다 버터 카페죠.
카페 사장
― 매번 찾아주셔서 감사해요. 음료는 매번 드시던 거로 해드릴까요?
이여주
― 네.
카페 사장
― 알겠습니다. 들어가 계세요.
자주 오던 카페라도 카페 사장의 얼굴은 알 수 없기에 목소리만 듣고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렇게 능수능란하게 대화를 나누고는 예약한 방으로 들어왔다.
김석진
― 이제는 혼자 척척 대화도 잘하네요.
이여주
― 석진 씨가 옆에 있는데 잘해야죠.
김석진
― 이제 다 컸네요.
이여주
― 저 애기 아니거든요?

김석진
―누가 뭐래요.
그렇게 음료도 나오고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다. 그런데 어쩌다 이 얘기로 흘러버렸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나 자신이 너무 밉다. 사랑하는 사람 얼굴을 기억을 못 한다는 게 그거 얼마나 답답하고 자신이 얼마나 미운지. 내가 항상 석진 씨에게 하는 말은,
이여주
― 석진 씨 얼굴을 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김석진
― 또 그 소리예요. 다른 얘기 해요.
나는 손을 뻗어 석진 씨의 얼굴을 더듬거렸다. 그러자 석진 씨는 더듬거리고 있는 내 손을 겹쳐 잡고는 내렸다.
김석진
― 답답해서 하는 말인 거 알아요. 그런데 그 소리만 하면 여주 씨만 힘들잖아.
이여주
― 그래도 석진 씨 얼굴을 보고 싶은데 어떡해요···.
김석진
― 얼굴이 전부는 아니잖아요. 그렇죠? 이렇게 옆에 앉아서 얘기도 나누고 음료도 마시고 또···.
이여주
― 알았어요. 무슨 말인지 알았어요. 석진 씨가 이렇게 옆에 있는데···.
그런데 갑자기 눈에서 눈물방울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석진 씨는 내가 갑자기 눈물을 보이는 바람에 놀란 표정이 얼굴에 한가득했다.
김석진
― 여주 씨···.
석진 씨는 입을 막고 소리 없이 우는 나의 손을 내려주고 나를 안아 주며 말했다.
김석진
― 그냥 소리 내서 울어요, 힘들면. 울려서 미안해요.
이여주
― 흐··· 끕···. 후···.
나는 울고 있는 걸 겨우 멈추고 숨을 깊게 내쉬고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또박또박 전했다. 석진 씨에게 내 진심이 닿을 수 있도록.
이여주
― 비록 난 석진 씨 얼굴을 볼 수 없지만, 이거 하나는 약속할 수 있어요.
김석진
― 응, 말해봐요.
이여주
― 얼굴은 몰라도 석진 씨인 건 알아볼게요. 노력할게요, 내가.
김석진
―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너무 무리는 하지 말아요.
이여주
― 오늘도 실수했잖아요. 석진 씨도 못 알아보고···.
김석진
― 실수는 나도 해요. 그러니까 그냥 내 곁에만 오래 있어 줘요.
이여주
― 내가 그래도 되겠어요? 내가 정말 석진 씨 옆에 오래 남아 있어도 되겠어요?
김석진
― 약속해요, 나랑. 서로 곁에 오래 남기로.
이여주
― 약속할게요···.
난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해버렸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그렇게 쉽게 하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그 약속을 꼭 지키고 싶어서 약속한다고 말이 나온 것일 수도 있다. 그럴 수 없다는 거 아는데 그냥 간절했나 보다, 그 약속이.
이여주
― 미안해요···.
김석진
― 뭐가요?
이여주
― 그냥 나 때문에 매번 힘들게 해서···.
김석진
― 더 힘들게 해도 돼요. 난 여주 씨가 어떻게 하든지 간에 난 당신을 사랑하니까. 내 얼굴은 몰라도 돼요. 얼굴만 봐서는 진심을 몰라요. 진심은 마음으로부터 나오잖아요. 서로의 마음만 알면 돼요.
이여주
― 맞아요, 마음···.
김석진
― 내가 전하는 진심의 마음은 여주 씨보다 부족할지 몰라도 여주 씨의 마음만은 정확히 파악할게요.
사랑 하나면 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장애도 아무것도 아닐 줄 알았는데, 그렇게 생각한 건 옳지 않았다. 오히려 사랑은 나를 더 아프게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더 잘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까, 힘들어도 힘들다고 하면 그 사람도 힘들 테니까 그 사람을 위해 힘들다고 쉽게 못 말하니까 마냥 사랑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어쩌면 만나지도 않았을 우리의 운명. 몇 번이고 죽고 싶어만 했을 내가 석진 씨를 만나 이렇게 행복하면 행복하고, 답답하면 답답한 나날들을 이겨내고 있다. 석진 씨가 내 운명을 바꾼 사람이기도 하지만, 나를 처음으로 사랑해 준 사람이다. 보잘것없는 나에게 먼저 다가와 준 마음이 따뜻한 사람.

김석진
― 내가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행복하게 해주려고 노력할 거예요. 오래오래 여주 씨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해도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행복해질 때까지 오래오래 사랑할 거예요.
[ 연하게 그려지는 석진 씨의 얼굴을 기억할 수 있다면 너무 좋을 거 같은데, 여전히 석진 씨 얼굴의 기억이 연하기만 해요. 선명해지지 않고 계속 연해요···. 석진 씨 얼굴이 선명해지는 그날까지, 그날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난 당신을 계속 사랑할게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