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여주
— 너 싫어.
전정국
— 내가 뭐 했다고.
윤여주
— 그냥 싫어. 너 집착 감당 못 하겠어.
전정국
— 그냥 감당해.
윤여주
— 내가 왜? 내가 힘들 것이 뻔한데 왜 내가 감당하면서까지 만나야 하냐고.
전정국
— 내 마음이야.
윤여주
— 그럼 넌 계속 들이대던지 난 무시할 테니까.
시도 때도 없이 집착하는 전정국에 너무 힘들어졌다. 그만 썸 아닌 썸을 끝내고 싶어도 마음대로 못 하고 이런 애인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안 만났지. 평생 전정국에게서 못 떠난다면 정말 지옥 같을 것이다.
난 저 말을 끝으로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지만, 나를 끌어당겨 벽으로 밀치고 한 손으로 못 가게 막는 전정국이었다. 그런 전정국의 표정은 너무나 싸늘했고 차가운 공기만 맴돌았다. 나를 내려다보는데 그 눈빛은 정말 누구하고도 비교할 수 없이 무서웠다.

전정국
— 윤여주. 내 말이 우습지.
윤여주
— ······.
너무 무서워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데 그걸 또 가만히 보고 있을 전정국이 아니지. 내 턱을 잡고 들어 눈을 마주치게 하는 전정국이었다.
전정국
— 대답해. 내가 우스워?
윤여주
— ㅇ, 아니···.
전정국
— 왜? 아까처럼 그렇게 대들지 그래? 내가 우스워서 그렇게 대들었던 거 아니야?
윤여주
— 하··· 미안해···.
전정국
— 전혀 안 미안해 보이는데.
윤여주
— 진짜 미안해. 하라는 거 다 할게. 그러니까 제발 놔주면 안 돼?
전정국
— 내가 그걸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윤여주
— 뭐할까. 다 할게, 정말.
전정국
— 내가 뭘 원하는지 알잖아. 똑똑한 윤여주 님께서 그걸 모르실까.
윤여주
— ······.
전정국
— 설마 정말 모르는 거야?
윤여주
— 내가 왜 좋아?
전정국
— 미쳤어? 내가 널 왜 좋아해.
윤여주
— 그럼··· 왜 그래, 나한테?
전정국
— 재밌잖아.
윤여주
— 뭐···?
전정국
— 무서워서 벌벌 떠는 네가 재밌다고.
당장이라도 전정국에게서 헤쳐나오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뛰고 싶었지만, 어차피 뛰어도 금방 잡힐 것을 알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어야만 했다. 무서워서 벌벌 떠는 내가 재밌다니 진짜 뭔 사이코패스인가 싶었다.
전정국
— 여주야.
윤여주
— ······.
전정국
— 대답해야지. 대답 안 하는 거 제일 싫어하는 거 알면서.
윤여주
— 응.
전정국
— 좋아해. 사귀자.
윤여주
— ···뭐?
전정국
— 사귀자고.
윤여주
— 아니··· 방금까지 안 좋아한다고,
전정국
— 그냥 대답만 하지.
윤여주
— 좋아하는 거 아니잖···,
전정국
— 하라는 거 다 한다며. 그냥 입만 나불댄 거야?
윤여주
— ···알겠어.
전정국
— 한 번만 더 말대꾸해. 그럼 나도 여주한테 나쁘게 그럴 수밖에 없어.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았지?
윤여주
— 응···.
전정국
— 표정 풀고.
윤여주
— 흡···.
전정국
— 울어?
윤여주
— ㅇ, 아니. 우는 거 아니야.
전정국
— 그렇지? 이제 카페 갈까? 너 카페 좋아하잖아.
윤여주
— 어? 응···, 그래.
그렇게 우리는 카페로 향했고, 내가 주문해서 간다고 했더니 정국이는 자리를 먼저 잡고 앉았다. 정말 조금이라도 떨어져 있고 싶었다. 너무 불편했다.
윤여주
— 아이스커피 두 잔 주세요.
?
— 네. 어···? 윤여주 아니야? 맞지, 윤여주?
윤여주
— 누구···.

김태형
— 나 김태형. 야, 반갑다.
윤여주
— 어? 김태형? 헐··· 반갑다, 태형아. 여기서 일하는 거야?
고등학교 동창 친구를 만나서 이전에 불편했던 마음은 좀 가라앉고 반가운 마음만 남았다. 이 반가운 상황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지만, 아니나 다를까 이 반가움은 금방 식어버렸다.
전정국
— 여주야, 주문 안 하고 뭐 해.
윤여주
— 어···?
김태형
— 누구셔?
윤여주
— 아··· 남자···,
전정국
— 남자친구인데, 그쪽은 주문 안 받고 뭐 하시는 거죠?
김태형
— 아, 남자친구구나. 여주야, 남친도 있는 거야?
전정국
— 그쪽 뭔데 계속 여주한테 말 거냐고요.
김태형
— 네?
윤여주
— ㅈ, 정국아, 주문하고 갈게. 가 있어···.
전정국
— 내가 주문할 테니까 네가 가 있어.
윤여주
— 어···? 아니···,
전정국
— 또 말대꾸하는 거야?
윤여주
— ···가 있을게.
난 태형이에게 뭔지 모를 눈으로 신호를 빨리 보내고는 아무것도 못 하고 자리에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윤여주
— 하··· 망했다.
몇 분 뒤 마침내 정국이는 내 앞자리에 와 앉았다. 분위기는 언제나 그랬듯이 살벌했다. 정국이가 또 어떤 험한 말을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혹여나 그 말을 듣고 태형이가 상처받지는 않았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전정국
— 다시는 여기 오지 마.
윤여주
— 어···?
전정국
— 여기 오지 말라고. 알았어?
윤여주
— 응···.
조금 뒤, 태형이가 커피를 들고 왔다. 나 때문에 분위기도 이상해지고 기분이 별로 좋지만은 않아 보여서 그저 미안할 뿐이었다.
김태형
— 커피 나왔습니다.
나는 그런 태형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태형이가 나에게 괜찮다며 눈빛으로 신호를 보내고는 했다.
전정국
— 윤여주.
윤여주
— 어?!

전정국
— 어디 봐.
윤여주
— 아, 아니야.
전정국
— 안 갑니까?
김태형
— 갑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인데. 하··· 그냥 전부 미안한 마음만 계속 맴돌아 신경이 너무 쓰였다. 그러느라 정국이가 부르는데 대답하지 못했다.
전정국
— 윤여주.
윤여주
— ······.
전정국
— 윤여주!
윤여주
— 어, 어?!
전정국
— 정신 안 차려?
윤여주
— 응···, 왜?
전정국
— 가서 쿠키라도 시키고 와. 너 좋아하잖아.
윤여주
— 어··· 응.
전정국
— 저 남자랑 말 섞을 생각은 하지 말고. 쿠키만 시키고 와.
정국이는 내가 좋아하는 쿠키를 시키고 오라면서 카드를 내밀었다. 나는 그 카드를 받으며 정국이 눈치를 한 번 보고는 태형이에게 갔다.
윤여주
— 태형아.
김태형
— 어? 왜 뭐 시키게?
윤여주
— 미안해··· 나 때문에.
김태형
— 응? 뭐가 미안해. 괜찮아.
윤여주
— 나 진짜 너무 미안해.
김태형
— 괜찮대도. 뭐 시키러 왔는데?
윤여주
— 쿠키···.

김태형
— 아, 너 쿠키 좋아하잖아.
윤여주
— 기억하네?
김태형
— 당연하지. 자. 얼른 가져가. 너 남친 늦게 오면 또 뿔나겠다.
윤여주
— 진짜 너무 힘들다···.

전정국
— 뭐라고?
윤여주
— 헙! ㅈ, 정국아 언제 왔어···?
전정국
— 뭐가 그렇게 힘든데. 어?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말 섞지 말라니까 또 말 안 듣지.
윤여주
— 미안해 정국아···.
전정국
— 안 되겠다.
윤여주
— 어···?
전정국
— 왜 좋게 말할 때 안 들어. 사람 짜증 나게.
윤여주
— 미안해, 정국아. 진짜 미안해···.
전정국
— 사랑한다고 해.
윤여주
— 응···?
전정국
— 두 번 말 안 해.
윤여주
— ···사랑해.
전정국
— 나도 사랑하니까 이번만 봐주는 거야. 쿠키랑 카드 주세요.
김태형
— 아, 여기···.
전정국
— 그리고 다시는 윤여주한테 아는 체하지 마세요.
그러고는 정국이는 태형에게 차갑게 눈빛을 깔고는 내 손을 잡고 카페를 나왔다. 평소 같으면 이것보다 더했는데 이 정도라 천만다행이다. 사실 오랜만에 보는 친구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니 쪽팔리기도 하고 짜증도 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전정국
— 여주야.
윤여주
— 응···?
전정국
— 나 너 사랑하니까 나 화나게 하지 말자.
윤여주
— ···알았어.
다정한 듯하지만, 나에게는 전정국이 다정함으로 절대 보이지 않는다. 그저 무섭게만 보일 뿐이지. '사랑해'라는 말이 무서울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언제쯤이면 이 무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전정국
— 사랑해, 여주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