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주쌤.. 진짜 가는 거에요..? “
” 내가 말했잖아요. 올라오면 다 정리해버릴거라고 ”
“ 이런 정리일 줄은 몰랐죠.. ”

“ 뭐 난 진짜 그만둘 것 같긴 했어 ”
“ 선배도 이 사직서에 아주 큰 보탬이 되신 거 아시죠? ”
“ ㅎㅎ.. 잘가. 연락처는 바꾸지 말고 ”
내가 서울에 도착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사퇴였다. 정확하게는 이직이었다. 이 그지 같은 병원은 제쳐두고 다시 시작할 것이다. 내가 교수였다면 개업을 했겠지만
아쉽게도 교수는 따지 못했기에.. 이렇게라도 반항할 것이다.
원래는 사직서를 담당 과 교수님이나 이사장님에게 제출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나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스윽,
“ 이게.. 뭐야? ”
“ 빠른 수리 부탁드립니다. 윤 교수님 ”

“ .. 김여주 “
” 이제 내 이름 부르지 말아주세요 “
” 나 진짜 진심이라..ㄴ “
”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내린 결론이야 “
” .. 뭐? “
너의 마음이 진심임을 알기에 내린 나의 결론이었다. 여전히 너의 빛이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것은 변치 않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빛이 나를 영원히 빛내줄 수 있는 빛이 아니라는 것도 난 감히 확신했다.
그렇기에 결정했다. 지구 반 바퀴, 아주 멀리 있을

나의 그 빛을 선택하기로
“ 그러니까 정한아 ”
“ … ”
“ 우리 이제 정말 그만하자 “
” … “
” 잘 지내. 다시 찾아오지 말고 “
그렇게 난 그 병원을 완전히 나왔다. 이제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해 난 노력할 것이다. 부디 그곳에서는 교수직을 따낼 수 있기를..!
2년 후,
“ .. 하 “
쪼르륵,

” 아니 왜 대체 강원도에 있는 술집으로 부르는거야? “
“ 이직도 했고 교수가 됐는데 내 인생은 왜 안 펴질까요.. “
“ 하여튼.. 또 뭐가 문젠데? “
“ .. 원장이 또라이에요 “
아무리 여기저기 돌려보아도 서울권 병원에서는 좋은 답을 받지 못했다. 돌린 곳 중 딱 한 곳에서 답을 줬는데 그게 바로 강원도 영월에 위치한 바로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병원이다.
“ 지금이라도 물러달라고 하던지 ”
“ 그게 되겠어요?! 내가 어떻게 이직한건데.. “
“ 왜 나한테 화를 내지? 어? ”
“ 아이 진짜..!! 누가 충고 듣고 싶어서 불렀어요?! 위로를 해달라고 위로를 !! ”
내가 저런 충고나 듣자고 이 밤에 자기를 부른 줄 알아..?! 나도 알고 있다고.. 아니 그래도 어떻게 거기 빼고는 하나도 답이 없냐고 나 나름 좋은 대학도 나왔는데..!!
“ .. 권 대위는? “
” .. 그 사람 이름이 여기서 왜 나와 또 “
” 아예 진짜 그때 이별을 한거냐? “
” 아 그런 거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
” 아니 그럼 뭔데?! 뭐 플라토닉 러브 이런거 하기로 했냐? “
” … “
“ 진짜야..? ”
“ 아 선배 좀..!! 괜히 불렀어 괜히.. ”
일부러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그 사람을 다시 보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때의 내 감정에 충실하기로 다짐했기 때문에
그래도 보고 싶은 건 어쩔 수 없는 건가.. 아니 진짜 저 선배는 도움이 하나도 안돼 !!
그냥 술이나 들이붓자.. 내 간아 미안하다
그렇게 두 병째 마시니 역시나 난 꽐라가 되었다. 이 병아리 주량은 대체 언제쯤 치킨이 될 수 있을지..
” 아니 그래서 진짜 권 대위랑 마지막에 어떻게 하기로 했는데 “
” .. 몰라요 진짜로 “
그때,
” 와.. 눈 내린다. 나 진짜 못 올라가겠네 이거 “

” .. 진짜네 “
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깊은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듯 했다. 하 병원 앞에 눈 또 내가 치우겠지..
2년 간 잘 참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그 사람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다.
왠지 그날은 그랬다. 마치 나의 운명을 아는 듯
유독 당신이 보고 싶었다.
최 선배는 내 자취방에서 재웠고 난 병원 숙직실로 향했다. 혹시나 싶어 집을 사놓기는 했지만 몇 번 자지도 않았다. 숙직실 생활이 너무 몸에 뱄어.. 난
다음날,
“ 아으.. 죽겠다 ”
역시나 전날 들이부은 내 간은 정신을 못 차렸고 빠르게 흉부외과국에 있는 냉장고 속 컨디션을 까 마셨다. 하.. 이제야 좀 살겠네
“ 선배는 살아계실까..? ”
뭐 그 선배야 워낙 대학교때부터 주당으로 유명했으니까 살아있을거야.. 아니라면 유감이고
그때,

“ ? 김 선생 어제 퇴근하지 않았습니까? “
저 인간이 바로 그 원장이다. 여기 병원 일은 모조리 다 나한테 몰빵시키는 미친 원장 저거..
술 마신 거 들키면 또 일 미룰 지도 모르는데..
” 아 원장님..! 그 할 일이 마저 있어서 다시 들어왔습니다 “
좋아..! 좋은 구라였..ㄷ
” .. 하 진료 보기 전까지는 술 다 깨세요 “
” .. 알겠습니다 “
아이씨 컨디션부터 숨기고 구라를 칠 걸.. 하 내 이미지 어떡하냐 가뜩이나 저딴 원장한테.. 그래 이 나이에 술 하나 조절 못한게 잘못이지. 아니 그래도 어제는..!!
그때,
” 아 맞다. 어제 새벽에 응급실 손 부족했다고 해서 오늘 오전 진료 끝나시면 응급실로 가서 어시 해주세요 “
” 아 네..! “
” .. 원래 교수 직급이신 분에겐 이런 부탁 잘 안 드리지만 “
” ..? “
” 소개서에 써 있었으니까 시키는 겁니다. 개 같은 노동 “
” .. 네 알고 있습니다 “
내가 또 다시 이직을 고민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개 같은 노동이 나에게로 모두 몰빵이 된다는
것
그때 소개서 좀 생각하고 쓸 걸..
결국 오전 진료를 마치자 마자 난 응급실로 내려갔고 그래도 서울에 있었던 때보다는 확실히 널널했다.
하지만 응급실에는 흔히 말하는 징크스가 있다. 널널하다 생각하는 순간 아주 큰 것이 닥쳐오는 그런 징크스이다.
그 징크스는 정확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고
이곳도 예외는 아니었다.
“ 자 5분 뒤 앰뷸런스 도착입니다..!! 다들 준비해주세요..!! ”
“ 하.. ”
잠시 후, 예정대로 앰뷸런스가 도착하였고 꽤 많은 사람들이 실려왔다. 사람들의 옷을 보니 모두 평범한 사람들 같지는 않았다. 정장 차림..?
그리고 몸을 둘러싸고 있는 총상들. 아니 한국에서 총상이 말이 돼..? 우르크에서도 못 본게 총상인데..
” 여주쌤은 3번 배드부터 봐줘요 “
” 네 “
스르륵,
” ..!! ”
” … “
난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배드 위 누워있던 사람은 다름 아닌 이 상사님이셨고 온 몸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아니 대체 어쩌다가.. 근데 이 상사님이 여기 계시다는 건..
“ 설마.. ”
그때,
“ .. 우리가 정말 운명이 맞긴 맞나봅니다 ”
“ ..!! ”

“ .. 그동안 잘 지냈어요? “
“ .. 거짓말 “
정말 거짓말처럼 만났다. 마치 운명인 것처럼 아니 운명일 수 밖에 없는 상황과 시간에서, 이번엔 당신의 세계가 아닌 나의 세계에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