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는 언제나 운이 좋은 아이였다.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요람에서 떨어졌을 때도
말에게 머리가 차여 의식불명이였을 때도
식도에 음식물이 걸려 위급한 상황에서도
여주는 운이 좋았다.
하지만 그런 운이 자신의 부모님에게까지 닿지는 않았던 모양이였다
7살무렵 일어난 10중추돌사고는 수십명의 목숨과 부모님의 생명까지 앗아갔다.
부모님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 결혼으로 모든 친척과 연을 끊었었고 그로인해 어린 여주는 이세상에서 완벽한 혼자가 되었다.
친척들은 부모님의 사망소식과 여주가 혼자남았다는 것을 알고있었지만 외면했고 심지어 장례식에도 오지 않았다.
결국 여주는 외딴 고아원에 가게되었다.
고아원에서 타인과 좀처럼 어울리지 못하는 여주를 보듬어준 것은 다름아닌 고아원 원장님이였다.
하지만 약 5년 후 고아원 원장님마저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부모님과 같은 교통사고로.
그녀가 악몽을 꾸게된 것은 그 무렵부터였다.
그녀에게서 소중한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져가는,
상상만으로도, 그 기억들만으로도, 괴로운 꿈에 지난 10년간 시달렸다.
그날도 그랬다. 아니, 그날은 달랐다.
여주는 언제나처럼 악몽을 꾸고 있었지만 평소의 꿈이 아니였다.
섬뜩하고 무서운 분위기의 평범한 악몽이었다.
내용도 나오는 사람도 모두 기억에 나지 않는다.
꿈에 나오는 얼굴도 목소리도 기억나지 않는 남자가 왜인지도 계속 눈앞에 나른거렸다.
"......지긋지긋해."
평범하든 평범하지 않든. 더는 여주에게 그런 것은 개의치 않았다.
이제 더는 그녀의 일상에 평범이란 존재치 않았으니까
어제저녁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았던 여주는 냉장고를 살폈다.
"아무것도 없네..."
주말이라 침대에 계속 누워있었더니 시간은 어느덧 오후 6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곧 해가 질 시간이었기에 여주는 대충 가디건을 챙겨입고 밖으로 나왔다.
이제 봄이고 겨울은 끝났지만 아직 날은 추웠다.
쌀쌀한 날씨에 가디건을 꼭 여민 그녀는 마트를 향해 발걸음을 놀렸다.
가디건이 너무 앏긴 했지만 그건 문제가 되지않았다.
다만 팔짱을 끼고 고개를 숙이고 가다 후드를 깊게 눌러쓴 한 남성과 부딪힌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의 손에는 캐리어가 들려있었는데 그 속에서 나오는 액체가 심상치 않았다.
"아..! 젠장."
여주와 부딪히며 캐리어를 놓친 그는 급히 다시 캐리어를 잡으려했지만
터질듯이 가득 담겨있던 캐리어는 그의 손을 떠나 바닥에 곤두박질쳐져 지퍼가 터져버리고 말았다.
"...?!!!"
그안에 있는 내용물은 충격적이게도 사람으로 추정되는 시체였다.
시체를 보고 놀란 여주는 바로 뒤를 돌았다.
두발도 못가 그에게 붙잡히고 말았지만.
"어딜,!"
"꺄악!! 사...살려주세요....."
본능적으로 살려달라고 외치는 그녀를 보며 남자가 후드를 살짝 벗었다.
"원래 이번주에는 한명만 죽일려했는데 말이야...
너 다 봤잖아 그지? 푸흐...... 너. 죽어줘야겠다."
남성이 싱긋 웃으며 살기가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여주를 훑자 여주의 등골에는 소름이 돋았다.
마치 뱀과 같은 혀와 눈빛이였다.
그의 시선에 그녀는 꼼짝없이 독 안에 든 쥐가 되어버렸다.
뱀의 먹잇감이 된 여주는 애원하고 도망가려하지만 도망갈 수가 없었다.
"날 너무 원망하지는 마. 크흡."
남자는 무척이나 즐겁다는 품 안의 칼을 꺼내어 그녀를 향해 휘둘렀다.
푹!
하지만 정작 칼에 맞은 것은 그녀가 아닌 갑자기 나타난 한 남자였다.
바로 코앞에 정말이지 눈깜짝할 새에 나타난 그에 여주와 살인마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
".....?"

"내 먹잇감을, 왜 니가 쳐먹을려고 해."
남자는 여주가 들리지 않게 작게 속삭이곤 그대로 털썩 주저 앉았다.
자신을 대신하여 칼에 맞은 그에게 놀란 여주는 자신을 죽이려했던 살인범도 잊고 그에게 달려갔다.
"어떡해... 나..나. 때문에... 당신이... 병원에 흡..."
계속해서 그녀의 머릿속에 부모님과 고아원 원장님이 떠올랐다.
"나 때문에 죽었는데... 또 나 때문에... 내가.. 내가 죽어야 하는데...!"
횡설수설 말을 이어가던 여주의 어깨를 붙잡아 가까이 당긴 그가 그녀의 입에 자신의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그의 왼쪽 가슴에선 피가 철철 흘러나왔다.
아플 것임이 분명한데도 그는 그저 웃으며 말했다.

"쉿. 당신 탓이 아니에요."
그 누구도 해주지 않았던 처음듣는 말.
어쩌면 그녀가 가장 간절히도 듣고 싶었던 말.
그녀는 그말을 듣고 원장님이 죽은 후 오열하며 눈물을 쏟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