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략이란 단어로 포장하고-,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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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략이란 단어로 포장하고-,

#12







코드블루 8층 외과 중환자실,

코드블루, 코드블루.

8층 내과 중환자-


“....X발”


정국은 방송을 듣자 마자 복도로 뛰어나갔다.

나가자 보이는 상황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급히 뛰어다니는 모습과 놀라 구경나온 환자들이 가득했다.

정국은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중환자실 앞으로 힘들게 몸을 옮겼지만 밖에 있던 간호사에게 제지를 받곤 밖에서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전 비서? 자네는 다친 곳 없는가.”


“회장님?..”


“뭐 어디 심하게 아프거나 하진 않고?”


“...네. 하지만 이사님이..”


“…”



중환자실 앞에서 정국은 회장 즉, 여주의 아빠를 마주하였다. 보통 딸을 더 먼저 걱정하며 석진처럼 운전을 어떻게 한 거냐 따질 텐데 지금 이런 상황에서도 회장은 아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저 어디 더 다친 곳은 없냐는 질문 말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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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 아니네. 둘 다 죽지 않은 것 만으로도 다행이군.”



그 시각, 중환자실의 상황이 조금이나마 조용해진 듯했다. 의료진들도 한숨 돌리고 있었고, 여주도 곧 편안한 표정을 되찾았다.

정국도 진땀을 뺐는지 후 하며 긴장을 늦추는 듯 보였다.



그런데,


어찌 무언가 이상하다.



왜 회장은 아무 반응이 없는 것인가.





***




다음 날

오전 8시, 정국은 조리사 아주머니의 부름에 잠에서 깨었다. 맛이 없어도 너무 맛이 없는 병원 밥이란...

입맛도 없고 밥도 맛이 없던 터라 정국은 여주와 아침 인사를 할 겸 중환자실을 찾아갔다.


그런데 중환자실이 비어있다?




***




새벽 1시 45분경,


“으, 윽..“


”어? 환자분! 정신이 드세요?“


”ㅇ, 움직이지 마세요! 담당 선생님 호출해 드릴게요!“



여주가 깨어났다. 이곳이 어디인지 파악하는 듯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렸다.


아 병원이구나.


손을 까딱 까닥, 고개를 쓱 움직이는 듯싶더니 이내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좀, ••••세요?“


..?“



말소리에 다시 눈을 뜬 여주는 주변에 사람들이 여럿 둘러싸인 광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환자분-.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


”.... 혹시 말하기 불편하신가요?“



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본인 성함이 기억이 안 나세요?”


“...... 제가 왜 여기 있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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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여기에 있던 김여주 중환자 어디 있나요? 다른 중환자실로 옮겼나요?“


“아, 새벽에 깨어나셔서 일반 병실로 이동하셨어요”



일반 병실? 벌써? 좋은 일이긴 하지만 무언가 불안한 기분이 드는 정국이었다.



드르륵-




“이사님?”


“어....”


"이사님 몸은 괜찮아요? 어디 더 불편한 곳은요?"


"...."


"네? 대답 좀,"


“... 설마. 나 누군지 모르겠어요? 아니죠?”


“그, 어.. 미안해요. 나도 도저히 생각이 안 나서..”




여주의 말을 들은 정국의 표정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함께 쌓아온 추억들이 사고로 인해 한순간에 그녀의 머릿속에서 잊혔다는 게 마음이 이리 아픈 것인지 몰랐다. 겪어보니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고통이라는 것을 깨달은 정국.

초롱초롱했던 눈이 순식간에 눈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


“왜, 울고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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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이죠..? 네? 아 이사님.....”


"




여러 차례 묻는 정국의 질문에 여주는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낯선 여주인데, 그 모든 것 중 정국도 포함되어 있으니 낯설고 또 낯설 수밖에 없다.


여주의 앞에서 눈물을 보이기 싫었던 건지, 정국은 이내 여주를 피했다.


"... 어디 가세요?"


"바람 좀 쐬러요. 쉬세요, 이사님."



드르륵.-

정국은 병실의 문을 열고 나왔다. 정국의 눈에는 초점이 없어 보였고, 모든 것을 잃은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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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인물들이 대부분 짐작하고 있었겠지만 정국은 여주를 좋아하고 있다. 학생 시절부터 여주와 붙어 다니며 남몰래 호감을 키웠고 그 호감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져 떠안고 있던 시간도 3년, 4년을 넘어 5년이 다 되어 가는 중이다.


가족이라곤 도박과 술, 마약에 미쳐 찌든 아버지 하나뿐이었던 정국이 이 집에 들어와 가장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여주 덕이었다.


그렇기에 가족보다 소중한 여주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니 얼마나 마음이 찢어지고 아플까. 정국은 아마 죄책감에 시달릴 것이다.





“음... 뇌에 손상은 딱히 없어 보여요.”


“그럼 왜 기억을 못 하는 거죠?”


“글쎄요. 원인을 모르겠습니다. 다른 정밀검사들을 다 진행해 보았는데도 결과는 같아요”


“그럼 기억을 돌릴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건가요?”


“.. 죄송합니다. 이사님 께서는 심리치료를 받으시는게,”








“회장님, 방금 담당 선생님 말씀 듣고 왔는데 뇌 손상은 없다고 합니다.”


“왜 기억하지 못 하는진 모르는건가”


“네. 원인도 모르겠다고 합니다.”


“알겠네. 수고했어”





정국이 여주의 담당 의사의 말을 듣고 여주의 아버지에게 전했다. 여주를 간병하던 회장은 여주를 한 번 바라보곤 병실을 나갔고, 병실에는 여주와 정국 둘만 남게 되었다.



“좋은 아침이네요.”


“네 이사님. 뭐 좀 기억나는 건 없어요?”


“... 미안해요.”


“아. 아니에요. 괜히 이사님 기분만 망치는 질문을 했네요”



둘이 이야기를 주고 받던 중, 병실로 석진이 들어왔다.
정국은 아마 석진이 왜 왔을까 라는 생각을 했겠지.



“아, 석진씨 오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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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침은 드셨어요? 맛 없지 않았어요?“


”병원 밥이 의외로 맛이 없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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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보다 꽤나 친해진 것 같은 둘의 모습에 쓸쓸해 보이는 정국의 모습이 비춰진다. 정국은 풀이 죽은 듯 자리를 피했고, 비상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터덜터덜 비상계단의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가려던 찰나,




“.......... 죽었어야 했.......”


“..?”


“죽었어야 했어, 그놈이 죽었어야 했.....”


“.. 회장님?”


“ 괜한 딸년만 다쳐가지고 계약도 못 맺을 뻔 했네.”


"이게 무슨..."


"..거기 누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