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 XX 같이 보는 사이
W. 서리 빛
전정국의 의미심장한 말과 박지민의 데이트 신청을 들은 후 현재 내 상태는 그래, 한 마디로 정신적 혼란 상태다.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을 못 한다고 해야 하나? 분명 난 전정국을 좋아하고 있다. 그런 전정국이 나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는 건 좋은 일인데···. 난 왜 박지민의 데이트 신청에도 오케이를 한 걸까
" 미쳤나 봐 김여주!!! "
남이 보면 일관되지 않는 행동에 인상을 찌푸릴 일이다. 그리고 그런 일을 내가 했다는 것도 용납할 수가 없다. 물론 보통의 사람들은 둘 다 만나보고 둘 중 더 좋은 사람을 고르는 게 나쁘다는 인식을 하지 않지만 내 마음이 먼저 움직인 전정국한테 너무 미안하달까.
" 역시 지금이라도 거절해야겠다. "
곰곰이 생각해 봐도 박지민에게는 미안하지만, 거절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 섰다. 여지를 주기보다는 하루빨리 선을 긋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
- 야 박짐
💬 ??
- 어제 한 약속
💬 아 여주야. 그래서 내가 식당 예약했거든?
기대감에 벌써 식당을 예약했다는 박지민의 연락을 받으니 또 마음이 약해진다. 예약까지 했다는데 인제 와서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냐고! 만약에 네가 이런 상황이라면 가능해? 난 못하겠다고! 어떻게 해야 할까?
- 어어···. 몇 시로 예약했어?
💬 토요일 오후 1시
- 알겠어. 서리 상가 앞에서 12시 30분에 만나서 같이 걸어가자
💬 그래 그때 봐
지금 내 머릿속은 야단이 났어. 순간 노래 가사가 흘러가는데 내 심정을 대변해 주니 이거 기뻐해야 할까. 사실 이 문제보다 급한 건 내일도 학교에 가는데, 이 두 명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생각 중이야. 좋은 방법이 있을까? 역시 사람은 상황에 닥쳐야 정신을 차리니까 일단 자고 내일 학교에 가서 두 명을 보면 내 몸이 알아서 움직이겠지? 좋아.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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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러운 알람 소리와 눈가를 비추는 밝은 빛, 밝은 빛? 알람? 눈이 번쩍 뜨여 시계를 보니 시간은 10시···. 지금 나 김여주는 완전한 지각을 면치 못한 상황이다. 지금까지도 애처롭게 울리고 있는 알람을 다급히 꺼주고 머리도 한번 엉키게 해주고, 화장실로 뛰어가듯 들어간 난 모든 여자가 그렇듯 앞머리만 급하게 감아주고, 간단한 기초화장만 한 채 교복을 입고 현관문을 나섰다.
이 시간에 교복을 입고 돌아다니니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수 없었고, 난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며 학교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 선생님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에요! 난 조심히 연다고 한 건데 뒷문으로 들어가는 저를 향해 선생님과 학생들의 시선이 꽂힌다. 이거 부담스럽다고요. 머쓱하게 인사하며 들어가니 선생님의 익숙하다는 저 반응에 심장이 뜨끔거린다.

" 여주야, 선생님은 네가 일찍 와서 자리에 예쁘게 앉아있는 모습이 정말 보고 싶구나. "
" 죄송합니다···. "
연신 고개를 꾸벅이고 정국의 뒷자리로 향했다. 전정국의 등을 톡톡 치며 부르니 뒤를 돌아보기에 조용히 입을 열었다.
" 왜 오늘 나 안 깨워줬어? "
항상 깨워주던 아이가, 내 첫 짝사랑의 상대가, 불과 어제 나에게 제대로 표현한다던 사람이. 평소와 다르게 날 깨우지도, 나와 함께 등교하지도 않고, 아침부터 아무런 연락도 없었기에 당황스러움 한 스푼, 속상함 두 스푼, 그런 기분으로 전정국을 바라보았다.
" 미안, 나 이번 주 당번이라 일찍 와야 했어. "
" 너 당번일 때도 항상 같이 왔잖아. "

" 정말 미안, 나도 오늘 늦게 일어나서 "
" 알았어. "
좋아한다는 걸 깨달으니, 말은 예전처럼 나오지 않았고, 서먹해진 기분에 괜스레 울적해졌다. 전정국을 짝사랑하는 건 맞지만 전정국은 내 유일한 친구로서 항상 같은 자리에 든든한 나무처럼 뿌리내려 있던 아이라 사소한 것에도 속상했고, 어색해졌다.
" 전정국, 밥 먹으러 가자. "
어느덧 시간은 흘러 점심시간이 됐고, 오늘은 전정국이 좋아하는 반찬들이 나오는 날이라 얼른 가자며 전정국의 손을 잡고 급식실로 향했다. 급식실로 향하는 내내 전정국은 그 흔한 말조차 하지 않고 조용히 날 따라오고 있었다. 말이 없는 얘를 보니 너무 어색하기도 하고, 무슨 일이 있나 걱정되기도 해서 가다가 멈춰 전정국을 바라보았다.
" 너 무슨 일 있어? "
" 갑자기? "
" 응. 너 오늘 좀 이상해서 "
" 뭐가? "
" 그냥, 오늘따라 말도 없고, 나한테 장난도 안 치고, 왜 그러는데? "

" 아무 일도 아니야. 얼른 가자 "
무슨 큰 비밀이라도 되는 양 말해주지 않는 녀석에 심통이 나버린 나다. 나 안 먹을래. 뒤돌아 교실로 향하는 나를 보고 있을 것이 분명한데, 왜 넌 나를 잡아주지 않는지 어제만 해도 날 떨리게 만들어 놓고 오늘은 또 찬 바람이 부는 사람처럼 구는 행동들이 날 너무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 전정국 멍청이. "
전정국과 난 정말 오랜 시간 항상 붙어있었기에 나에게 있어서 전정국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내 못된 짝사랑이 우리를 떨어뜨린다면 기꺼이 짝사랑을 포기할 수 있을 정도였다. 처음부터 설레게 하지 말지. 그런 말 어제 하지 말지. 괜히 기대했던 내가 쪽팔린다.
네가 힘들다면 난 네 옆에 쉬다 갈 응달을 만들어 줄 수 있고, 누군가가 널 괴롭힌다면 기꺼이 저주 인형을 사 저주를 내려줄 수 있으며, 네가 다른 사람 옆에서 행복하다면 그 행복을 기꺼이 응원해 줄 수 있는 사람인데 갑작스럽게 변한 너의 행동들은 날 너무 혼란스럽게 만들어.

" 여기서 뭐해? "
부드러운 미성에 고개를 들어보니 박지민이 조금 무뚝뚝하고 차갑지만 걱정 어린 눈빛으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얜 한결같네. 어제 처음 봤을 땐 엄청 무섭게 생겼다고 느꼈는데 조금 친해졌나? 조금은 순해 보이네. 츤데레 같아.
" 밥 안 먹어? 어디 아파? "
" 아니, 입맛이 없어서 "
" 가자. "
말을 많이 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손길에, 눈길에 나를 향한 걱정이 잔뜩 묻어있다. 나를 이끄는 박지민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는데 조용한 내가 신경이 쓰였는지 어딘가로 향하면서도 흘끔 흘끔 뒤를 돌아 나를 쳐다본다. 픽,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낸 나는 박지민의 옆에 나란히 같이 걸어가기로 했다.
" 어디 가는데? "
" 매점 "
" 매점? 매점은 왜? "

" 오늘 밥 별로야 "
그 별로라는 급식, 전정국은 맛있다고 잘 먹고 있을 텐데. 이 순간에도 전정국 생각을 하는 내가 웃기기도 한데, 위로한다고 매점을 끌고 가는 이 아이가 날 걱정하는 예쁜 마음이 고마워서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 기분이다~ 이 누나가 쏜다! "

" 누나는 무슨 "
앞서가며 하는 내 말에 툴툴대지만 예쁘게 웃어 보이는 박지민에 따라 배시시 웃어 보였다. 나 위로해 준 감사 인사야. 잡은 두 손은 아직 닿아있지만 지금은 놓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 손이 고마워서 놓고 싶지 않았다.
" 근데 식당 어디로 예약했어? "
" 정확히는 레스토랑인데, 파스타 좋아해? "
" 헐, 나 파스타 정말 사랑하지! 어딘데? "
"파스타 & 파스타"
" 미친. 거기 예약하기 엄청 힘들잖아 "
"아버지 친구분이 하시는 가게여서 부탁 좀 드렸어. "
지민이 아버지의 친구분이 하시는 가게라니, 우리 동네에서 그 레스토랑 모르면 간첩 아닌가? 그분 돈 많이 버시겠다. 하 나도 드디어 거기서 파스타 먹어보는구나! 기쁨에 몸을 가만히 못 두고 방방 뛰니까 쓰러지듯 웃는 박지민에 당황했다. 야야 괜찮아?

" 그렇게 좋아? "
" 야야, 말해 뭐해. 나 거기서 파스타 먹은 거 꼭 인스타에 올릴 거임! "
몸을 다시 돌려 매점으로 들어서는데···. 전정국이다. 급식실에서 혼자서 밥 먹고 있는 줄 알았던 전정국은 매점에서 뭔가를 바리바리 사서는 매점을 나오고 있었다. 들어서는 우리와 마주친 전정국은 잡혀있는 손에 시선을 잠시 멈추더라. 다급히 손을 놓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입을 열었다.
" 밥 안 먹었어? "
" 먹었어. "
" 근데 매점은 왜 왔어? "

"···."
" 우린 살 거 있어서! 너 먼저 교실로 가! 이따 보자! "
더 밝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입을 열고, 박지민을 이끌며 전정국을 지나친 나는 이 상황이 싫었다. 전정국을 지나치자마자 내 표정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굳었고, 박지민은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눈치는 있는지 애써 물어보진 않았다. 사실 나도 몰라. 마치 싸우고 나서 어색한 사이인 것 같은 전정국과 나 사이의 분위기를 어떻게 예전처럼 돌릴 수 있는지. 사실 싸운 게 아닌데.
" 박짐~ 뭐 살 거야? "
" 보름달 넌? "
" 음, 바나나우유랑, 페이스트리 이거 빵 살까? "
" 그래 "
계산을 하고 빨대를 얻은 후 바나나우유에 빨대를 꽂고 빨아마시며 매점을 나오는데 전정국이 그대로 서있었다. 먼저 가라니까···. 애꿎은 빵 봉지를 부스럭거리면서 걸어가는데 전정국이 내 손목을 잡아 돌려세웠다.

" 얘기 좀 하자 "
지금은 할 기분이 아닌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이 대화를 거절하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지? 할 말이 뭔데? 여기서 해.

" 여기 말고, 후문 쪽에서 하자 "
" 그래, 지민아 먼저 가 있을래? "
" 응. "
전정국이 이끄는 대로 후문 쪽으로 도착하니 전정국이 뒤를 돌고 저를 쳐다본다. 할 말이 있는데 할까 말까 고민하듯이 입을 달싹였다가 다시 닫고 열었다가 닫고를 반복하는 전정국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 말해봐 정국아. 무슨 얘기야? "
" 아침에는 진짜 미안 "
" 할 얘기가 그거야? "

" 아니, 박지민이랑 사귀기로 했어? "
? 뜬금없이 이게 무슨 소리래? 자기가 어색하게 굴고 평소랑 다르게 굴고! 냉랭하게 하고! 할 말 있다고 부르더니 이게 뭐람? 아니 갑자기 그런 정의가 어디서 나온 건데? 설마 아까 손잡고 있어서?
" 정국아 혹시 돌았니? "
내 물음에 전정국은 얼굴이 빨개진 채 고개를 돌린다. 어머? 얘 귀도 빨개졌네. 이게 부끄러워?
" 안 사귀어. "
" 근데 손을 왜 잡아 "
핀트가 거기에 계셨군요 전정국 군! 질투인가?
" 그럼 넌 오늘 왜 그러는데?? "

" 어제 내가 했던 얘기 그냥 흘러듣는 것 같아서. 자존심 상해 "
???? 이건 무슨 신종 개소리인가요? 제가 언제 흘러들었다고?? 존나 가슴 떨려서 어제 잠도 설치고 지각까지 했는데! 이게 나한테 어색하게 굴었던 이유라고 생각하니까 웃겼다. 화도 났다. 귀여운 구석이 있어 전정국.
" 정국아, 나 너 얘기 흘려들은 적 없어. 오히려 너무 떨렸어. "
" 정말···? "
" 응 진짜. "
너에게 환하게 웃어주자 따라 환하게 웃는 전정국에 마음이 한결 풀렸다. 별것도 아닌 걸로 그렇게 어색했었다니. 정말 어이가 없었다. 얘기를 다 하고 시간을 보니 곧 점심시간이 끝나가길래 다급하게 전정국을 이끌었다.
" 빨리 가자! 곧 종 쳐! "

" 잠깐만, 이거. 너 먹으라고 샀어 "
전정국은 이끄는 나를 힘으로 잠깐 세우더니 아까부터 계속 손에 들고 있던 검정 봉투를 내밀었다. 봉투를 받아들고 열어보니 내가 좋아하는 간식들이 한가득이다. 내가 밥 안 먹는다는 말이 신경 쓰였구나. 이렇게 챙겨주려고 했었구나. 전정국의 마음이 와닿아서 기분이 좋았다.
" 고마워, 잘 먹을게! 일단 얼른 가자!! "
전정국과 함께 교실로 힘들게 뛰어들어감과 동시에 종이 쳤다. 오 세이프! 정국이에게 손바닥을 내보이니 환하게 웃으며 하이파이브를 하는 전정국. 우리 토끼 너무 귀여워. 웃는 거 깨물어 주고 싶어!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종례를 하러 들어오신 선생님과 하나 둘 가방을 메고 교실을 나서는 애들을 보니 벌써 오늘 하루가 끝났다는 생각에 몸이 나른해졌다. 오늘 참 다사다난했다. 전정국 하나로 인해 내 기분이 오르락 내리는 게 신기하다. 아 참, 내일 지민이랑 밥 먹는다고 얘기해 줘야 되는데.
" 야 정국아. 나 내일 박지민이랑 밥 먹음. 다 먹고 너네 집으로 갈게! "
" 그래. "
" 집 가자 정국아. "
정국이와 나란히 걷고 있는데 근데 얘 오늘 너무 잘생긴 거 아니야? 아니 항상 잘 생기긴 했지만 또 오늘은 왜 이렇게 잘생겼어?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닌지 하교하면서 다른 아이들의 시선이 정국이에게 박힌다. 얜 이게 익숙한가? 시선이 부담스럽지도 않은지 전정국은 내 옆에서 오늘 집에 가서 무슨 야동을 볼 건지 나와 논의하고 있다. 아니 잠깐, 야동? 이 상황에? 너 나 좋아한다며! 아니 아직 확실하게 좋아한다고 말하진 않았지만 야동? 그게 나한테 할 말이냐고~ 물론 싫다곤 안 했음.

" 그럼 오늘은 그거? "
" 응응! 좋아! "
" 넌 무섭지도 않냐? "
" 뭐가? "

" 내가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나랑 야동을 봐. 위험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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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우리의 석진씨가 까메오로 출연해주셨어요 다들 박수~~~ 제 연재가 많이 느리지만 기다려주시는 분들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