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랑 나랑 걔랑

03




“…무슨 얘기?”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면 김운학은 어이없단 듯이 픽 웃는다. 나한테 할 말 없어? 숨이 딱 멈춘 느낌. 심장이 욱신거리는 걸 겨우 버티고 흘리듯 말을 뱉어냈다. …미안해. 한참 조용하던 김운학이 드디어 입을 연다.

“왜 나한테 거짓말했어?”

그 말에 이젠 내 입이 꾹 다물어진다. 점점 애들 시선이 몰리는 것 같은데, 그런 건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냥 지금 내 앞에서 날 원망하듯 쳐다보는 김운학만 보였다. …미안해.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진짜 모르겠어. 고개 푹 숙이고 아랫입술을 잘근 물었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이제 어떡하지? 내가 뭐라고 더 말해야 하는 거지? 어떻게 해야 해명이라도, 아니. 이걸 어떻게 해명해. 뻔한데.
텅 빈 손을 꾸욱 잡아쥐었다.

아.
쪽팔려.
나 지금 뭐하는 거야.

그냥 김운학한테서 멀리 벗어나고 싶었다. 차라리 아예 모르는 사이가 되면 괜찮을 것 같은데.

이름이 뭐야??

그때로 돌아간다면 정말 모르는 사이 해줄 자신 있는데.

그러나 지금 고개를 들면 김운학이 날 미친듯이 노려보고 있을 거고. 웅성거리는 애들은 루머란 루머는 다 만들어 퍼뜨릴 거고. 김운학은 또 상황이 끝나면 현수아한테 달려가겠지. 김여주 때문에 우리 사이에 오해가 생겼던 거라고. 남자친구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저랑 놀지 않겠냐고.

“듣고 있어?”

번뜩. 정신이 돌아왔다. 그리고 고개를 든다. 어, 듣, 듣고 있어. 미안해. 정말.

“거짓말해서 미안해.”

좋아해서 미안해.

“이제 나랑 친구 안 하겠다 해도 돼.“

제발 그래주라.

”정말이야.“

진짜 제발.

…아니 그 정도까진 아닌데. 난 그냥 섭섭해서 그랬지. 김운학은 또 내 맘 하나 모른 채 유하게 상황을 넘긴다. 이런 식으로 넘기면 난 또 너한테 미련을 가지는데도. 그걸 모르는 바보는.

“아잇… 담부터 이러지마… 담엔 진짜 화낼 거야.”

또 아무렇잖게 내 어깨를 감싸 반 안으로 데려간다.
오로지 김운학 손길 하나로 의자에 앉아선 방금 전 상황헤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이렇게 쉽게 끝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김운학은 대체 얼마나 눈치가 없는 거지?

아니면

내 맘을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바보 코스프레 중이던가.

“…..”

책상 위로 쓰러지듯 엎어졌다. 머리 아파. 더 생각하기 싫어. 그냥 김운학이 싫어. 현수아도 싫고 나도 싫어. 다 리셋하고 싶다. 진짜, 그냥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다. 제발 내 인생에서 김운학이 빠져줬으면 좋겠는데. 나랑 아무런 관련 없는 일반 아무개 정도면 얼마나 좋을까.

눈 질끈 감았다가 다시 떴다. 팔에 갇혀 어두운 책상. 우울한 숨을 질게 흘리곤 천천히 상체를 일으킨다. 느릿하게 눈꺼풀을 올린다.
그리고.

“안녕!!”

김운학이 있다.

”이름이 뭐야??“

열 여섯의 김운학이. 열 여섯의 몸에 갇힌 열 여덟 김여주를 바라본다. 이게 뭐야. 당황스러운 나머지 앳된 김운학을 멍하니 쳐다봤다. 분명 처음 만난 그때. 그때인데.

상황을 파악하고나니 그냥 헛웃음이 나왔다. 김운학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 날 바라보고 있고.

그리고 난.

“…알 거 없잖아.“

이번엔 정말 김운학을 놓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