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 이후로도 운학은 여전히 운학이었다. 과방에 가면 늘 한가운데서 떠들고 있었고, 동기 누구한테나 다정했다. 담요 같은 건 나한테만 있던 일이 아니라, 걔한텐 그냥 평소였다. 그래서 별로 의미를 두지 않았다.
개강하고 첫 조별과제 조가 짜였는데, 하필 운학과 같은 조였다.
"하린아, 너 자료조사 파트 할래, 발표 할래?"
"자료조사."
"그래! 나 발표 잘하거든. 남들 앞에 서는 것도 좋아하고."
확실히 그럴 것 같다. 여기있는 누구보다도 발표를 잘 할 것이다. 밝은 것도 밝은건데, 사람의 시선을 끄는 힘이 있으니까. 그런 내 생각을 읽은건지 운학이 옆에서 혼자 웃었다. 민망해서 쳐다보진 않았다.
조모임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시끄러운데 진행은 야무져서, 흩어지는 얘기를 자꾸 본론으로 끌고 오는 게 의외였다.
문제는 끝나고 나왔을 때였다. 아침엔 멀쩡하던 하늘에서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안 가져왔다. 3월 비는 또 왜 이렇게 추운지.
내가 처마 밑에서 손에 입김을 불어 데우고 있으니, 운학이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 내 손에 턱 쥐여줬다.
"이거 써."
"너는?"
"우산? 난 빨라서 괜찮아."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후드를 뒤집어쓰더니, 정말로 비를 뚫고 뛰어갔다. 황당하고 당황해서 잡을 겨를도 없이 휙 하고 가버렸다.
멀어지는 뒷모습이 금세 빗속으로 사라졌다. 손에 남은 우산이 미지근했다. 방금까지 걔 가방 안에 있어서 그런가.
... 추울텐데. 어쩐지 고마운 마음보단 미안한 마음만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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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비 그치고 날이 풀리면서 캠퍼스에 벚꽃이 폈다. 다음 조모임 장소로 가는 길, 운학이랑 우연히 같은 방향이 됐다.
운학은 벚꽃길에 들어서자마자 신이 났다. 떨어지는 꽃잎을 잡겠다고 혼자 폴짝거리고, "야 이거 봐봐, 나 잡았어!" 하면서 빈손을 자랑했다. 빈손인데. 하지만 밝은 모습이 웃겨서 쿡쿡,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러다 운학이 갑자기 내 쪽으로 손을 뻗었다.
"잠깐만, 너 머리에—"
손끝이 머리카락에 닿았다. 운학이 거기 앉아 있던 꽃잎 하나를 떼서 내 눈앞에 보여줬다.
"여기 붙어 있었어."
별것도 아닌 동작이었다. 그런데 너무 가까웠고, 너무 갑작스러웠다. 나도 모르게 한 발 물러나면서 "어, 어." 하고 이상한 소리를 냈다.
운학이 그걸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평소엔 무슨 말을 해도 무표정이던 애가 당황하는 게 신기했나 보다.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얼굴이 왜 뜨겁지. 봄이라 그런가.
... 남자애인데 벚꽃도 잘 어울리네.
그런 생각이 들면서, 서서히 하루가 마무리 되고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