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계절

🍂4화 - 가을

여름이 가고 2학기가 시작됐다. 아직은 더위가 가시지 않았지만, 바닥엔 낙엽이 꽤 쌓여갔다. 더운데도 제 때를 알고선 떨어지는 듯 보였다.

 

나는 다시 한 시간씩 지하철을 타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이전처럼 따분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왜인지는 몰랐다. 아마 하린만 몰랐을 것이다.

 

개강하고 발걸음이 가는대로 과방에 들렀는데 운학이 있었다. 당연하게도, 한가운데서 떠들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손을 번쩍 들어 인사를 한다. 나도 손을 살짝 들어올려 인사를 했다. 카페에서부터 생긴 버릇이었다.

 

 

"하린이 안녕!"

"응, 안녕."

 

그러더니 운학이 대뜸 질문을 해왔다.

 

"하린이 너 이번에도 월요일 공강이지?"

"어? 응. 어떻게 알아?"

"너 지난 학기에도 월요일 공강이랬잖아. 월공이 제일 좋다고. 근데 나 이번 학기 월요일 학교 와서 이제 못 보겠네."

 

그 말에 잠깐 멈칫했다. 시간표를 맞출 걸 그랬나. 이 생각이 든 건 사실이었다.

아니, 무슨 과 동기 그것도 남자애랑 시간을 맞춰?

그치만 같은 동네 친구잖아. 카페에서도 꽤 가까워졌는데.

 

두 가지의 생각이 복잡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옆에선 운학이 동기들과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

 

"너 하린이랑은 언제 친해졌냐? 친화력 미쳤네."

"아 내가 알바하는 카페에 자주 왔어 방학동안!"

"헐, 그럼 너네 방학동안 계속 만난거야? 썸이야?"

 

그 대답엔 운학이 웃으며 얼버부렸다. 슬쩍 하린 쪽을 쳐다보지만, 하린은 제 복잡한 심경에 듣지도 못한 모양이었다.

"야 너네 이제 수업 들으러 가라! 나도 갈거니까!" 운학은 그렇게 외치곤 하린의 팔을 붙잡고 나간다. 듣고싶었던 교양 수업이었는데, 운학도 신청한 모양이었다.

 

"어, 너 이 수업 신청했었어?"

"응. 하린이가 듣고싶대서."

 

 

그 말의 뜻을 바로 이해하진 못했지만, 마음은 제멋대로 간지럽고 요동치고 난리가 났다.

 

 

-

 

 

수업은 5시나 되어서야 끝이 났다. 그래도 6시 끝이 아니라 다행이다, 그치. OT치곤 길게 하시네 등등 시덥잖은 말을 하며 운학과 하린은 걸었다. 당연하게도 둘은 집에 가는 지하철 역으로 같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운학이 아, 한강 잠깐 들르지 않을래? 물어본다.

하린도 고개를 끄덕였다. 곧 추워질 것이다. 이렇게 선선한 날씨에 한강을 가는건 아마 이번이 마지막이겠지.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서 계단에 걸터앉았다. 9월의 강바람은 여름의 끈적임이 빠져서 선선했다. 낮엔 더웠는데 밤엔 제법 시원해졌다.

 

운학이 캔을 들고 내 쪽으로 내밀었다.

 

"건배라도 해야지."

"무슨 건배야."

"그냥. 가을 됐으니까."

 

어이없어서 그냥 캔을 부딪혔다. 캔 부딪히는 소리가 강물 소리에 묻혔다.

운학은 캔을 따면서도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알바하다 있었던 일, 누가 진상이었고, 어떤 손님이 팁을 줬고. 나는 거의 듣기만 했는데, 이상하게 안 지겨웠다.

한참 떠들던 운학이 맥주를 한 모금 마시더니, 강을 바라봤다.

 

"올여름 진짜 좋았다."

"뭐가. 덥기만 했는데."

"난 좋았어." 운학이 강물에 시선을 둔 채로 씩 웃었다. "너 매일 카페 왔잖아."

 

 

별 뜻 없이 던진 말처럼 가벼웠는데, 나는 맥주캔만 만지작거렸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운학은 금방 다시 평소로 돌아와서 "야, 저기 유람선 봐봐!" 하고 손가락질을 했다. 나는 유람선 같은 건 안 보고, 옆얼굴만 봤다.

 

강바람에 머리카락이 흩날리는데도 여전히 환한 얼굴. 여름이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는데, 가을 강바람 속에서도 똑같이 잘 어울렸다. 귀여우면서도 남자답다고 느껴졌다.

 

집에 돌아오는 길, 운학은 나를 데려다줬다.

나는 더 이상 '별것도 아닌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내 마음을 눈치채고있었을 것이다.

 

별거였다. 진작부터.

그냥, 아직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을 뿐이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당황스러웠지만, 이 감정을 일단 있는 그대로 느껴보기로. 그렇게 하린은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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