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만 순종적인 미친 개
1화


해가 쨍쨍 내리쬐는 아침이다.

검게 칠해진 아스팔트 블록을 따라 거니는 도중, 귀에 딱 꽂힌 누군가의 부름이 거슬렸다.


전정국
공주야!

공여주
...

또 시작이네.

살갑게 외쳐대는 내 이름을 모른 척 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머지 않아 따라잡히고 말았지만.


전정국
공주야, 왜 혼자 가.

벌써 두 번이나 연속으로 불린 단어에 눈썹을 치켜올렸다.

공여주
너 내가 그 망할 공주 소리 그만하랬지.

어깨에 능글맞게 올려진 손을 슬쩍 밀어내고 바라본 건 전정국이다. 단추 한두 개 풀어진 꼴이 언제 봐도 너저분하다.


전정국
왜 싫어? 공주 맞으면서.

이 고집불통은 첫만남 때부터 공여주나 공주나 그게 그거다라며 계속해서 저 별명을 고집해왔다.

이름 한 글자 빼먹힌 것보단 그 공주라는 명칭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공여주
그럼 네 이름 전국 해.

뒤이어 비꼬듯 전국아, 라며 불렀더니 방싯 웃는다. 이걸 의도한 게 아닌데.


전정국
응, 좋아. 네가 불러주는 거면 뭐든.

제 이름을 된장국이라 고쳐도 실실 웃을 인간이다.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게, 어떤 수를 써도 고쳐지지 않을 고질병인 듯 하다.

공여주
몰라, 따라오지나 마.

말이 통하지 않아 다시금 시선을 거뒀다. 이제 너에게 줄 관심은 없단 무언의 표현이다.

그걸 아는 전정국은,


전정국
공주야. 초코우유 사줄까?

비겁하게 먹을 걸로 날 유혹하려 든다.

공여주
...두 개.

그리고, 그것에 내가 당해내지 못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전정국
귀여워 죽겠어, 다 사줄게.

빌어먹을.

_

존심 상하지만 전정국이 사준 초코우유를 쪽쪽 빨고 있는 중이다.


전정국
오물오물거리는 것도 예뻐.

공여주
엿이나 먹어.

사례가 들릴 뻔 했지만 이젠 이 정도는 가운데 손가락 하나로 막아낸다.

치켜 든 손가락을 가만히 바라보다 그 위에 제 입술을 쪽, 하고 맞부딪친다.

공여주
야, 너... 이 미친.

손 끝에서부터 저릿하게 밀려드는 말랑함에 기겁하며 녀석에게서 팔을 빼냈다.

그러자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양같은 표정을 짓는 전정국이다.


전정국
왜? 이거 아니었어?

절대로. 저 음흉한 입꼬리로 보아하니 분명 아닌 걸 알고 있었을 거다. 이 늑대같은 놈.

나는 아직도 애정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날 보는 그에게 말했다.

공여주
딴 애들한테도 이렇게 좀 대해봐.

전교 회장 자리는 거저먹겠다, 야. 눈을 흘기니 멀뚱멀뚱 날 쳐다볼 뿐이다.


전정국
내가 좋아하는 건 공주밖에 없는데.

...그걸 말 한 게 아닐텐데. 한숨을 쉬며 눈을 피해도 끈덕지게 달라붙는 시선이다.

공여주
난 왜 좋아하는데.

문득 떠오른 의문이다. 얜 대체 날 왜 좋아하는 걸까. 특출 난 것 하나 없는 나를.

그 의문에 무게를 더한 건 전정국의 원래 성격도 한몫했다. 바로 몇 달 전, 그 전정국 말이다.

성격이 지금보다 몇 배는 더 지랄맞았던.

_

신입생 환영회 날이었다. 아는 사람 하나없이 외딴 고등학교에 올라온 터라 그저 연설장만 빤히 보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자랑스러운 학생들은-"

교장 선생님들은 왜 다 머리가 벗겨져 계시지 하는 생각과 함께 내 시선을 앗아간 건 어떤 남정네들 무리였다.

"씨발, 더워죽겠네."

단추 두어 개 풀고 넥타이를 내린 모습이 마냥 착한 학생들이라 보긴 어려웠다. 좀 노는 축에 있는 아이들 같았다.

공여주
...시끄럽게.

누군 좋아서 잠자코 듣고 있는 줄 아나. 이 강당에 지들만 있는 줄 아는 번잡스러움이 싫었다.

그래서 작게 읊조린 혼잣말이다. 결코 거기까지 들릴 거라곤 생각도 못한 말.


전정국
방금 누구-

공여주
?

무리 중 가장 중심같아보이는 놈이 천천히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친 건 순식간이었다.


전정국
와, 헐.

뭐지. 내 뒷자리에 놀랄 만한 거라도 있나. 감탄을 금치 못하는 한 아이에 뒤를 돌았더니 웬걸,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건,


전정국
존나 예쁘다 너. 공주님이야?

내 앞에 깜빡이도 없이 제 얼굴을 들이댄 전정국.

공여주
뭔 지랄이야 그건.

그게 우리의 첫만남이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