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황제
🥀 피로 맺은 것들



최한솔
일은 잘 보고 오셨습니까.


최승철
늘 견제해야 하는 곳이 있으니, 하루도 빠짐없이 다녀옵니다.


최한솔
참 대단하군요, 피의 종족이 교황과 연이 있는 것도 모자라


최한솔
벗이라니, 믿을 수 없는 광경 아니겠습니까.


최승철
나 역시 이 도시에서 인간처럼 살아왔고, 인간과 별 다를 것이 없이 자라왔으니.


최승철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지요.


최한솔
대단하십니다, 어찌 그리 정체를 잘 숨기시는지.


최승철
수많은 인간들의 경멸의 시선으로부터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최승철
나를 속이지 못하면, 상대도 속이지 못합니다.


최승철
매번을 생각했습니다.


최승철
살아남아야 한다, 나는 인간이다.


최승철
정체성을 잃어간다고 해도, 내 본질은 바뀌지 않을 터이니.


최한솔
꽤나 고생하셨겠군요.


최한솔
자, 한 잔 받으시지요.


최승철
감사합니다, 달빛에도 비치지 못하는 진한 피가


최승철
너무나도 마음에 드는 군요.


진한 피가 가득 찬 잔을 드는 두 사람.

그들은 서로를 응시하며, 의심의 끈을 놓치 않은 채.

건배를 했다.


유리잔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찰랑거리는 피.

그 진한 피를 미소와 함께 머금는 둘.



최한솔
...윽


최승철
왜... 그러십니까?


최한솔
입에는 맞으십니까?


최승철
당연하지요.


최승철
난 너무나도 당연한 피의 종족이니, 피 맛이 좋을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최한솔
허나 거짓말을 하셨군요, 각하께선.


최승철
무슨 소립니까.


최한솔
혹시 몰라 엄청 독한 걸로 준비했습니다.


최한솔
각하께서 피의 종족이라면 아시겠지요.


최한솔
피의 종족에게도 각자 못 마시는 피가 있다는 걸.


최승철
...


최승철
설마..


최한솔
시스투스에서 자란 이들이 아니라면,


최한솔
그 누구도 이 피는 입에 담지 못 합니다.


최한솔
엄청 역하고 진한 피니까요.


최한솔
피의 종족인 건 의심을 하지 않았습니다.


최한솔
하지만 유난히 폐하께서 각하를 많이 찾으시더군요.


최승철
그건 제가 믿음직한 충신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최한솔
굳이요, 폐하께서는 모든 이들을 충신으로 만들 카리스마와 능력이 있습니다.


최한솔
그럼에도 각하만 고집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최한솔
같은 시스투스 출신의 피의 종족이니까.


최승철
그 증거가 이 피입니까.


최한솔
당신이 시스투스에서 태어난 자가 아니라면, 이 피를 그렇게 마실 수 없을테니까.


. . .

저벅, 저벅

아른아른하게 피어오른 불빛에 생긴 그림자가

그에게 다가왔다.



권순영
...이번에 또 뭐야.


전원우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야위었구나.


권순영
...전원우.


권순영
널 상대할 힘이 없으니, 내 눈앞에서 꺼져.


전원우
제국의 황제에게 거칠게 말하는 놈은 너뿐일 거야.


권순영
왜 그러시나, 너가 이런다고 내가 협조해줄 놈이 아닌 거.


권순영
누구보다 네가 더 잘 알텐데.


전원우
그래, 소용없다는 것을 안다.


전원우
하지만 죽기 전에 진실은 알아야 덜 억울하지 않겠나.


권순영
...ㅎ, 그래 마음껏 얘기해.


권순영
어차피 이 안에 갇혀서 도망치지도 못하니까.


전원우
너희는 그랬지, 핍박받는 것이 싫고,


전원우
경멸의 시선을 무엇보다 없애고 싶었기에


전원우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전원우
생각해봐, 순영아.


전원우
그 의견을 처음 꺼낸 사람이 누군지.


전원우
나를 이 자리에 올리기 위해서 누가 더 노력했는지.


전원우
그리고 지금 교황의 자리와 황제의 자리 두 개를 노리는 자가 누구인지.


권순영
...나도 알아, 목적을 끝내면 나 역시 다시 버려질 것을 알아.


권순영
하지만 어떡하냐고,


권순영
내가 너를 죽이지 못하는 이유도, 그를 배신하지 못하는 이유도!!


권순영
너네한테 정이 들어버려서 그렇잖아...


권순영
난 어떤 시선이든 다 괜찮았어.


권순영
누군가 우리를 무시하고 경멸하고 미워해도


권순영
난 형이 있고, 네가 있고 찬이가 있어서 좋았어.


권순영
무엇도 무섭지 않았어...


권순영
우리 넷만 있으면 그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권순영
같이 있을 때 느낀 그 행복이 그런 걸 다 가려줬으니까...


권순영
하지만...


전원우
그 형은 달랐지, 그렇지?


권순영
...


전원우
정말로 없애버리고 싶었던 거야.


전원우
우리에게, 또 같은 동족에게 아픔을 주기 싫었던 거야.


전원우
그 형이 교황의 자리를 차지한다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전원우
...내가 힘을 쓸 수 있을 것 같아?


권순영
...왜 우리는 어릴 적 그때처럼 못 돌아가는 거야.


권순영
어째서...!!!


힘없이 벽에 기대어 있던 순영은 울기 시작했다.

원우는 그 자리에서 순영을 바라보다 결국 등을 돌렸다.



전원우
예전으로 돌아가려면,


전원우
지수 형을 막아야 해.


전원우
그게 유일한 방법이야.


전원우
그 형을 막을 수 있다면,


전원우
그래서 그 형이 지금 그 자리에서 내려온다면,


전원우
나 역시 이 왕관을 내려놓을 수 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