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와의 동거
2화


도대체, 어디있길래.

이 넓은 천계를 다 뒤지고도 없어.

천계의 가장 구석 창고까지 살펴보고 나서야 다리에 힘이 풀린 여주가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이름, 이름을 모른단 말이야.

아는 건 오직, 어린 아이의 형상과 얼굴뿐.

이것만으로는 도저히 추리할 수가 없는데.

힘없는 여천사 한 명이 어떻게 악에 불타오르는 검은 악마를 잡을 수 있겠는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조금전까지만 해도 의기양양했던 얼굴에 가드다란 그림자가 겹쳐졌다.

생각보다 쉽게 해결될 줄 알았던 그 붉은 불씨는, 타오르기는 커녕 불도 못피워보고 재가 되어 사라질게 뻔했다.

그럼 이제 남은 건,

그거 하난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뭐, 방법이 없는데 어쩌겠어.

비장한 한숨을 몇댓번 내어쉰 여주가 그대로, 붕 하늘위를 날았다.

발 끝으로 느껴지는 거센 바람에 환희를 느끼기도 잠시,

저 먼치서 조그맣게 보이는 거센 소용돌이.....

저건 분명, 악마다!!

투두둑, 떨어지는 비에 지상세계는 암흑으로 뒤덮였다.

여기저기 거리를 오가던 사람들도,

여러가지 잡음이 섞여 부산하게 거리를 메우던 목소리들도.

어느새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김석진
사라진건가.

장막을 메우는 자그마한 소리.


김석진
지금쯤.....


김석진
내가 뛰운 암흑의 불씨는 화가 되어 천계를 뒤덮었으려나.

도도도, 비젖은 거리를 활보하던 검은 구두굽이 향한 곳.


김석진
이계에 무사히 도착했으니, 이제 놀아볼까나?

끼이익, 날카로운 소음이 울려퍼지고,


김석진
...천사들이, 그렇게 바보같아서야.

탁, 문이 닫혔다.


천계 대부
이여주는 어딨는지, 물었다.

한유라
그...그게....


천계 대부
말을 못한다? 그럼 이 상황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천계 대부
이여주와 한유라라는 천사 둘 덕분에 천계에 부사히 발을 들인 사악한 악마놈이 온 천계를 뒤엎어 이리 엉망이 되었다. 그런데도 정녕 이 사태를 파악하지 못해?

한유라
그....여주가 잡을 수 있다 했으니, 괜찮을...


천계 대부
하아....명령이다. 천계의 모든 천사들은 죄인이라고 불러도 마땅한 이여주를 도와 악마를 잡아오거라.


천계 대부
한유라, 얼굴은 기억하겠지?

한유라
...네, 그렇긴한데....


천계 대부
당장 실행하도록.

이여주, 다 괜찮을거라더니....

한유라
....망했네?

이여주
어디야, 진짜.

짜증나는 어투로 간신히 비를 맞아가며 축 젖은 날개를 말리는데 급급해진 여주가 콱, 발길질을 했다.

확 튀어버린 구정물에 흰 날개가 검은빛으로 물들어져가고,

다시 어제봤던 악마의 천진난민한 얼굴이 떠오르자 다시금 눈쌀이 찌푸려졌다.

제 꼴이 비참했다.

모든게 저 때문이기도 했지만, 살면서 이런 추잡한 실수를 저지를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이여주
지금쯤 천계는 난리가 났겠지. 유라야, 미안.

이렇게라도 유감을 표할게.

나는, 이미 틀린 것 같아.

악마새끼는 날개털 하나도 보이지 않네.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하기엔, 도망쳐버린 나 자신을 자책하는 수 밖에 없고.

그러면 나는 영원히 천계로 돌아갈 수 없겠지.

이여주
미치겠네.

그렇게 얼마나 비를 맞고만 있었을까.

또르륵 고인 웅덩이 위에 보란듯이 둥둥 떠다니는 검은 날개털에,

여주의 눈이 확 커졌다.

이여주
미친, 악마새끼가 여길 왔다 갔다보네.

약간 꺾였던 사기가 다시 돌아오고,

이제야 현실이 조금 직감이 됬다.

나는, 꼭 잡아야해.

집아야, 내가 사니까.


김석진
인간들은 참 비열해.

붉은 와인으로 가득찬 와인잔을 빙빙 돌리던 석진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손짓 한 번에 탁자 위에 놓여지는 와인병들은 어느새 열 병을 넘기고 있었다.


김석진
이러면 재미없죠. 언제 오실까요, 천사님?

나는, 재밌는 싸움이 적성이라.

둘 중에 하나는 져야만 하는, 복종해야만 하는 그런 극악의 상황을,

나는 즐기는 편이라서요, 바보같은 천사새끼야.


김석진
...12시 4분. 재밌네.

너도 내가 이럴 줄은 몰랐던 거잖아, 안그래?

부디 즐겨주길 바래.

내가 만든 게임판에서 쉴없이 유린되길 바래.

마지막으로 웃는 사람은 오직 나여야만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