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 아저씨
5장 (6) 나는 피해자인가?


석진의 서재.. 윤은 여주가 쓴 책들을 꺼내서 무릎 위에 펼쳐놓았다.

윤기와 만났던 윤은 그때 나눈 대화를 떠올리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있었다.



민윤기 선생님
지금까지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민윤기 선생님
윤이씨가 비록 스스로 생각하기에 극악 무도한 일을 한 것은 맞지만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민윤기 선생님
제가 느끼기엔 윤이씨도 결국 어릴 때 납치당해서, 원치 않은 일들을 배우고 하도록 강요받은 또다른 피해자처럼 느껴지는데..


윤
하지만, 저는... 저는... 어쩌면...

윤은 어께가 움츠려들며 다시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윤
그 사람들을 살려줄 수도 있었잖아요.. 지금도 그 때 광장에서의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아요.


윤
아무리 제가 어린 아이였어도 그게 나쁜 짓인 줄은 알고 있었어요.. 제가.. 잘못 된 선택을 한 것 같아요..

윤기는 덜덜 떨리는 윤의 손을 잡아주고 눈을 마주쳤다.


민윤기 선생님
만약 윤이씨가 그들을 살리려 했다면 결과가 어땠을까요.. ?


윤
...아마.. 저만 죽는게 아니라.. 저를 대신할 다른 사람을 보냈겠죠... 결과는.. 같았을 거에요..


민윤기 선생님
그래요... 사람은 살기 위해 살아요.. 죽기위해 사는 사람은 없어요... 더구나 어린 나이에 토막처럼 덧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을 본 윤이에게는 살고자 하는 본능이 더 강하게 발동했을 거에요...


민윤기 선생님
그건 윤이씨가 한 선택이라고 보긴 어려워요.. 윤이씨도 어릴 때부터 범죄현장에서 위협당하고 압박받으며 지냈잖아요..


민윤기 선생님
그런 상황에서 한 선택은 절대로 윤이씨의 의지는 아니죠..

윤기의 말을 듣던 윤이는 식은 땀을 흘리며 숨이 가파졌다.

윤의 상태가 심상치 않아, 곧 공황발작이 올 수도 있다고 느껴진 윤기는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윤이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

윤은 천천히 윤기의 지도를 따라서 떨리는 몸과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민윤기 선생님
윤이씨는 이렇게 살아남아서 여주나 아저씨를 만나고..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어요... 살아남은 의미를.. 이제 찾아아죠.

아까보다 훨씬 차분해진 표정의 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윤
삼촌이.. 나한테 도망가라고 했었어요.. 살아서 고국으로 가라고.. 돌아가도록 도와주겠다고... 그리고 도망간 거에요. 석진 아저씨를 만나서.. 한국에서 도망갈 수 있게 되었어요..


민윤기 선생님
그래요.. 이제 커다란 죄책감에 가려져있던 상처받은 윤이씨를 돌볼 차례인 것 같아요..


윤
맞아요.. 선생님.. 그런데 저는.. 이 죄책감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죠...?


민윤기 선생님
윤이씨에게는 과거를 떨쳐낼 계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앞으로 방법을 천천히 찾아보면 어떨까요..?


윤
그럼 여주는요...? 제가 보육원에서.. 여기서 어떻게든 살아서 적응해낸 것은 모두 여주 덕분인데... 저때문에 지금 힘든 여주에겐 어떻게 해야하죠..?


민윤기 선생님
여주도 윤이씨를 걱정하며 저에게 만나달라고 했었어요.. 그래서 저는 윤이씨가 꾸준히 상담을 받는 것이 어떨까 싶은데..

윤은 가만히 앉아서 윤기의 눈을 쳐다보았다.


윤
하, 상담이요..? 지금 저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여주를 구치소에서 나오게 해야죠.. 지금까지 말씀은 감사했지만, 결론이 좀 그렇네요..?

윤은 태도가 돌변하더니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민윤기 선생님
상담은 윤이씨가 필요하실때 알려주시면 되요. 강요하려고 한 건 아니고요... 치료자인 저로서는 윤이씨의 괴로움을 덜어내는 일이 중요해보였을 뿐이에요.

윤기는 한발 물러났다.


민윤기 선생님
윤이씨도 지금까지 연관된 여러 사건들 속에 피해자이신 거니까요.. 그 죄책감 안에 상한 마음을 살펴보는 시간이 필요할 거에요..



윤
정말, 내가... 피해자인 걸까...

보육원에서 처음 여주를 만났을 무렵, 어릴 때 있었던 기억이 떠오르면 윤은 사람이 많은 곳에 가지 못 했고,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여주가 쓴 여러 동화들은 윤에게는 일종의 치료제였다.

여주가 쓴 꿈과 환상과 같은 동화들은 윤을 잠시 현실과 떨어져 상상속 어딘가로 향하게 했다. 그 상상속에 머물다보면 어느 순간 떨리던 몸이 멈추고 가파오던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윤기와의 대화를 떠올리는 이 순간에도 윤은 몸이 다시 떨릴까봐 무서워서 여주의 책을 펼쳐서 품안에 껴안고 있었다.

윤에게는 자신의 죄에 의해 등가교환된 벌처럼 느꼈던 증상들이었는데, 이런 것들이 피해자라는 증거였던 걸까...?


윤
나의 과거를 떨칠 계기는 무엇일까..?

윤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형사 2과에 수거한 증거품, 서류 등등 여러가지 자료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정호석 형사
오늘 여주씨는 내가 조사할께.. 일단 자료부터 잘 맞추고 있어봐~

호석은 경찰관들에게 이것저것 지시한 뒤, 핵심적인 자료 몇개만 들고 여주를 만나러 내려갔다.


정호석 형사
여주씨... 어서와요~ 오늘은 제가 여주씨 담당입니다.


유여주
네...

여주는 사실 이곳에 있는 기간이 길어져서 살짝 지친 모습이였다.


유여주
오늘은 뭘 하나요...?


정호석 형사
여주씨, 많이 지치셨죠..? 사실 저희도 마찬가지에요... 저도 지금 집에 못 들어간 지 1주일이 넘었습니다.


정호석 형사
저는 사실 여주씨가 범인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정호석 형사
누굴... 감싸고 계신 거죠...? 그게 누구인지 이야기해주실 수는 없나요.. ?


유여주
저는 처음에 말씀드린 것 처럼 결백해요.. 저희 상담샘이 진술 번복에 대한 소견서도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고... 내일이면 이제 기한이 되어서 조사도 끝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맞죠?


정호석 형사
여주씨.. 사실은 여주씨의 지문이 묻은 캐비넷이 발견되었어요... 또한 창고에서 수거된 총기류 1점에서도 여주씨의 지문이 발견되었습니다.


유여주
그것이 이번 사건과 상관이 있을까요..? 총기에 대한 부분은 나중에 해명하겠습니다. 총기와 이번에 다친 분들이랑 어떤 관계가 있나요...?

정형사는 사실 이부분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현장에서 다친 조직원들의 상흔은 총에 맞은 게 아니라 칼로 예리하게 잘린 듯 했으니까... 총상이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정호석 형사
음.. 그 부분은 감식중입니다.

호석은 시시티비를 보여줬다. 정말 잠깐 시시티비의 사각지대에 있는 창문에서 뛰어내린 듯 옷자락과 신발 일부가 살짝 찍혀있을 뿐, 고화질 cctv가 아니라면 그림자로 착각했을만한 장면이이었다.


정호석 형사
이 사람은요..? 혹시 짐작되는 사람이 없나요..? 정확한 인상착의가 아니더라도 그날 옆에 지나갔다던지, 하는 부분들요..

성별이나 체격을 알 수 없도록 정말 잠깐 멀리에서 잠깐 스쳐지나갔다.

여주는 P가 아닐까 짐작은 되었지만 고개를 저었다.

P는 윤과도 연결된 사람이니까..


정호석 형사
여주씨... 나는 여주씨가 범인이라고 생각하진 않아


정호석 형사
근데 누굴까...? 여주씨가 너무 잘 아는 이 곳이 안전하다고 알려줬고, 여기에 조직원까지 불러와서 이렇게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


정호석 형사
여주씨 소설에 나온 수법이랑 이번 이 친구들 다친 거랑 상당히 비슷하다며 위에서는 심증이 짙어지고 있어..


정호석 형사
근데 여주씨는 아니잖아. 여주씨는 누군지 알고만 있는 거잖아.


유여주
죄송하지만, 제가 알고 있는 부분이 없어요~


정호석 형사
저쪽에서도 가해자에 대한 증언이 나오고 있어. 자신들이 한국에 찾으러 온 사람을 여주씨 또래의 여자애로 알고 왔다고 하더군.


유여주
그래서요...? 제 소설을 보고 저로 착각하고 오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잖아요..


정호석 형사
그들이 찾던 여자애는 여주씨가 초등학교나 중학생 정도일때, 해외에서 활동했던 조직원이어서 여주씨가 아닌 건 확실히 알고 있어.


정호석 형사
나는 여주씨를 어떻게든 돕고 싶은 거야... 아무렴 석진샘과 관련된 사람들인데.. 설마 싶거든..


정호석 형사
나는 여주씨가 그래서 아는 것을 더 많이 정확히 이야기해줬으면 좋겠어... 소설을 쓸때 인터뷰 한 사람이라던지, 그날 봤던 수상한 사람이라든지...


정호석 형사
내가 여주씨 도울 수 있게 해줘..

호석의 간곡한 태도를 보고 여주는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이제 나갈 때가 거의 다 온 게 아닐까.. 여주는 집으로 가서 쉬고 싶다는 마음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윤이가 참.. 안됐죠...?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지만 앞으로의 이야기에서 다룰 기회가 생길 듯 해요-

그리고 구독자님이 한명씩 꾸준히 늘어나네요.. 💜


구독자님들, 댓글 달아주시는 님들 다들 넘나 감사합니당 💜💜 다들 건강하고 따듯한 하루 되세요

다음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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