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하지 말아요, 그대

이야기 여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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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에리씨"

"...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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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길래 몇 번을 불러도 못 들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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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요즘 무슨 일 있어요?"

걱정스런 표정을 한 그의 물음에,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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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그래도 진료중일 땐 조금만 집중 해 주세요~"

고개 한번 들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여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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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 붙잡고 얘기 하셔도 되요. 바로 옆에 의사도 있는데 이럴 때 써먹어야죠 ㅎㅎ"

백현 특유의 장난기 서린 말투로 이야기 했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차마 털지 못하고 웃어만 보여야 했다.

요즘, 언제나 쫒기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늘 누군가 날 감시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건 모두 내 기분에서 이고, 모두 쓸데없는 생각임을 알고있다.

그럼에도 떨쳐낼 수 없다는게, 기분이 더러울 뿐이다.

요 며칠. 또, 밖에 한 번 나가 보지도 않고 병실에 누워 책만 읽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그 사람' 과도 마주치는 일이 없어졌다.

이따금 몸이 아려올때면, 생각이 나 힘들긴 해도 잘 버텨낼 수는 있었다.

"아..."

가슴이 답답하다.

숨을 쉬기 힘들다 싶을 정도로 턱 막혀오는 가슴. 한두번이 아니다.

그래서 몇주만에 병실을 나선 것 이다.

어제 저녁, 잠시 눈을 감고 누워있던 내 옆에 간호사 언니가 평소 읽고싶어 했던 책을 두고갔다.

사고직후,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본 언니이고. 어쩌면 이렇게 닮았는지 성격도 생각하는 것도, 심지어는 식습관도 닮았다.

나중에 마주치면 고맙다고 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조금 큰 머그컵과 책을 챙기고 혹시 몰라 담요를 한 쪽 팔에 끼우고 나왔다.

조금 돌아다니다 보니 새삼 큰 병원이구나 싶었다.

호기심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람 구경도 하고, 사람이 없는 곳에 슥슥 들어가 보기도 했다.

그러다 가게 된 병원 가장 높은 층, 사람도 없는 복도 끝에 내 허리 높이만한 작은 나무문이 있었다.

덜컥덜컥

'역시 잠겨있네'

의자들 옆, 구석에 있는 나무 문 좀 보려고 꾸깃꾸깃 몸 우겨 넣었다가 괜히 나올 때 힘들다.

"악"

'아.. 내 발..'

괜히 또 발만 찧.. 응?

의자 뒤에 조그마한 열쇠가 있다.

유레카, 네가 이 문 열쇠구나?

열쇠를 꽂아 돌리니 탁 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오'

문을 열자 자그마한 정원이 나왔다.

먼지 앉은 건전지형 스텐드와 나무로 된 의자 몇개, 작은 나무들, 민들레들도 여기저기 피어있었다.

몇몇 의자에도 먼지가 뿌옇게 올라 앉아 있는 걸 보니, 역시 여긴 사람들이 안오는 곳 인가보다.

어느샌가 해가 졸기 시작한 초저녁. 바람이 밉지않게 선선히 불어오니 먼지없는 의자에 앉아, 작은 담요를 펼쳐 무릎에 올려놓았다.

식어버린 봉지 커피를 마시며 책을 펼쳐 놓고는, 찬찬히. 책의 문장들을 읽어내려갔다.

타 온 커피도 다 마시고 난 뒤, 책의 반 정도를 읽고나니 꾸벅꾸벅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아.. 안되는데.

사실 지난번의 꿈 뒤로, 몇번이고 그 꿈을 다시 겪었다.

죽을 맛 이었다.

그만 하고싶은 마음에 매일 커피로 잠을 몰아내 왔다.

거의 몇 주 동안 10시간도 채 자지못했다.

선선한 바람에, 꾸벅. 나도 모르게 잠에 들었다.

설마 그 잠깐 사이에 또 꿀까 싶은 생각으로.

응, 오산이었다.

평소와는 다른 꿈 이었어.

캄캄한 방에 나있는 창문 하나.

어디에선가 계속 바람이 새 들어와 추웠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은 방을 다 밝히진 못했지.

영화 속 주인공들 이라면 용기 내 여기저기 찾아보지 않았을까.

난 아냐. 괜히 휘젓고 다니고 싶지 않아.

난 그들처럼 용감하지 않아.

그래서 그저 빛이 들어오는 창문 옆에 서 있었어.

차디차던 그 빛이 너무 포근했거든.

이 빛을 보면 자꾸 그가 떠올라.

나를 지켜준던 그.

자꾸만 내 주변에 나타나, 자꾸만 날 구해주는 그가 너무 따뜻해.

내겐 빛이 된 그를 잡을래야 잡을 수 없어.

창을 넘어 들어온 이 빛에 손을 넣어 펼쳐 보았어.

이 어찌나 따뜻하고 시린 빛이던가.

그 순간. 저 멀리 벽 너머에서, 조금은 소란스런. 서늘한 발소리가 들려왔어.

찾고있어, 누군가를.

저벅저벅.

그가 지나가는 동안 숨을 참았어.

너무 무서워서. 겁이나서. 그가 날 찾아낼까봐.

저벅저벅. 발소리가 점점 멀어져.

아, 아니.

다시 돌아와.

쿵쿵쿵. 뛰어오고있어.

아, 멈춰섰어..

...

잠시간의 침묵이 흘러.

.. 쾅쾅쾅쾅쾅!

그가 문을 쉴 새 없이 두드리고 흔들어.

.. 그러곤 잠잠해

'뭐지..?'

오싹한 기분. 여긴 전혀 안전하지 않은 장소라는 기분이 들어.

"떨어져!!!"

으윽. 누구야?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 누구지?

머리를 짚으며 창가에서 떨어졌어.

그 순간, 창가로 그의 칼이 들어와 스쳤어.

와장창 하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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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 "에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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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에리씨!!"

깼다..

캄캄해진 하늘. 내 옆에 켜진 스텐드.

그리고 걱정어린 표정으로 날 흔들어 깨우는 남자 둘.

'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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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에리씨,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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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땀도 흘리고, 괴로운 표정이시길래 깨웠어요. 악몽 꾼 거에요?"

멍했다.

눈에선 계속 눈물이 흘렀고 가득찬 공포감과 밀려오는 안도감에 정신이 없었다.

두 사람이 옆에서 다독여준다.

모든게 지겨워, 이대로 그냥 시간이 멈췄으면 싶기도 했다.

조금씩 안정되자 또 찾아오는 통증.

팔을 조금 걷어올려 어깨를 드러내 보았다.

통증이 있던 자리엔 칼자국..

이 아니라. 누가봐도 칼에 베인듯한 멍자국이 남아있었다.

숨어있던 공포감이 자꾸만 나를 덮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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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어어?! 팔, 왜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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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어쩌다 멍이 이렇게.."

'저도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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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어.. 그보다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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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아, 여기요."

백현이 휴대폰의 노트앱을 열어 건네주었다.

``그냥 답답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문을 찾아서.. 들어와 봤어요. 책 읽다가 깜빡 졸아서..``

``그보다 선생님..은 어떻게 오신거에요?``

``헉, 혹시 저 때문에 찾으러오신 거에요??? 시간 그렇게 늦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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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아ㅋㅋ, 아니요. 여긴 원래 사람들 잘 모르는 곳 인데, 저랑 종대만 아는 곳 이에요. 둘 다 가끔 여기 와서 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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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말하자면 비밀기지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다른 사람들한텐 비밀이에요~"

'오오..'

두 사람이 순간 진지한 표정으로 쉿! 하길래.. 나도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입을 꼭 닫고 손으로 지퍼를 잠그는 시늉을 해 보였다.

'에엥'

근데 왜 그러는지 두 사람 표정이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이다.

아, 웃겨 죽겠다는 표정인가..

``웃지 마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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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아, 풉.. 넶.. 흡. 흐흑"

.. 죽는 거 아니죠? 숨 좀 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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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억.. 흑, 흐흡.. 풉"

.....

지금 그냥 내가 웃겨서 웃는거지. 그런거지.

'체'

일부러 됬단 표정으로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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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미안, 미안해요. 그냥 귀여워서 그런거에요, 웃겨서 그런거 아니고. 삐지지마시구요~"

``삐진거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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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에이. 삐진 거 맞네요, 뭘. ㅋㅋ"

우씨.

최대한 할 수 있을만큼, 아주 열심히 그를 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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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아, 아야. 눈빛 너무 따가운데요"

잔망스런 그의 태도에 저절로 허.. 소리가 나왔다.

내 김빠진 한숨에 그가 예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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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그럼 이제 여기, 우리 셋의 비밀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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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그렇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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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그렇죠?"

이 인간.. 말 돌리는 속도 보소..?

그러면서도, 뭐랄까 자동으로 고개는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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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그럼 셋이 여기서 자주 모일까요? 답답할때나, 혼자 있고싶을 때 여기 와요. 아, 물론 저도 여기 자주와서 혼자있을 공간이 안 될 수도 있지만 ㅎㅎ"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 없는 사람들 이지만, 어쨌든 같이 있으면 즐겁다.

안식처가 생긴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