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상 가족
러브 미로 00-4



김석진
“옷 다 입어 볼 시간 없으니까, 하나만 골라.”

여주
“저, 어떤 게 예쁜 건지 잘 모르는데. ⋯요.”


김석진
“아무거나 골라. 뭐 입으나 똑같을 텐데, 뭘.”

‘⋯욕이야, 칭찬이야.’

처음 와 본 의상실을 둘러보던 나는 옆에서 관심 없다는 듯 말하는 김석진의 대답에 미간을 찌푸렸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이들은 내 존재를 반기지 않았다.


김남준
“형. 아버지랑 어머니, 지금 차 타고 펜트 하우스로 가고 있대.”


김석진
“알겠어. 태형이는 준비 다 했대?”


김남준
“아직 오지도 않았어. 시간 맞춰 오라고 했는데, 걔가 말을 들을 새끼가 아니잖아.”

옆에서 드레스를 하나씩 넘기며 눈으로 대충 보고 있었을까, 어느새 다가온 김남준이 김석진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 자리에 있는 나는 보이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김석진
“다 골랐으면 빨리 갈아입고 나와.”

여기는 보고 있지도 않으면서 내가 드레스를 고른 건 어떻게 알았는지, 김석진은 탈의실 쪽으로 턱을 까딱였다. 알았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고 탈의실 문을 여니, 뒤에서 그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김남준
“⋯쟤랑 같이 차 타고 갈 거야?”


김석진
“아버지가 같이 오래. 알잖아, 아버지가 쟤 엄청 아끼는 거.”

여주
“⋯.”

‘⋯누가 아껴달라 그랬냐고.’

탁, 탈의실 문을 닫고 나니, 더 이상 그들의 대화가 들리지 않았다.


펜트 하우스에 가는 동안, 당연하게도 차에 탄 이들과의 대화는 일절 없었다. 이제는 이 침묵이 없으면 의아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김남준
“네, 아버지. 네. 가고 있어요. 30분 후면 도착할 것 같아요. 네. 그럼 저희가 먼저 준비하고 있을게요.”

아버지와 통화를 끝낸 건지, 휴대폰을 주머니에 꽂은 김남준이 한숨을 쉬며 창밖을 내다봤다. 나도 반대쪽 창문을 보고 있던지라 창문을 통해 김남준과 눈이 마주쳤다.

여주
“⋯.”



김남준
“⋯.”

내가 눈을 피할 것도 없이, 김남준이 먼저 시선을 내렸다. 철저한 무시였다.

“비가⋯ 많이 오네요.”

적막한 이 침묵을 견디기 어려웠는지, 운전기사 아저씨가 조심히 입을 열었다. 비가 많이 온다는 운전기사 아저씨의 말에 내 시선은 다시 창밖으로 돌아갔다.

아까까지만 해도 맑았던 하늘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늘에 구멍이 뚫리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슬픔을 견디지 못한 어느 신이 눈물을 쏟아내기라도 한 걸까.

“여보세요. 네, 맞습니다. 네. ⋯네?”

여주
"⋯?"

“도⋯ 도련님, 아가씨⋯. 사, 사장님과 사모님이⋯.”

그날 내린 비는⋯ 내 눈물이었나 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