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도로부터 살의를 담아
1장.의문의 죽음(9)


이날 밤, 준휘가 화이트와인 한 병을 가져왔다.

회사가 가깝기도 해서 퇴근길에 종종 들렀고, 그대로 자고 가는 경우도 많았다.

우리는 훈제 연어와 함께 와인을 마셨다.

준휘는 싼 거라고 했지만 맛은 괜찮은 편이었다.

와인이 4분의 1쯤 남았을 때 자리에서 일어나 컴퓨터 옆에 놓아뒀던 종이 묶음을 가져왔다.

슬기의 방에서 빌려온 스케줄표였다.

준휘에게 낮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스케줄표 한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지훈
"여기가 마음에 걸려."

바로 '-16:00 승철 스포츠플라자'라고 적힌 곳이었다.


준휘
"슬기 씨가 스포츠센터에 다니는 건 알고 있었잖아."

그게 뭐가 문제냐는 얼굴로 준휘가 나를 쳐다봤다.


지훈
"이상해."

나는 스케줄표를 넘겼다.


지훈
"이걸 보면, 여기 말고는 스포츠센터에 갈 계획을 적은게 없어."


지훈
"전에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사람은 운동하는 날을 따로 정해놓지 않는다고 했어."


지훈
"그냥 시간이 나면 간다고 했고."


지훈
"게다가 요즘은 다리를 다쳐서 운동을 쉬고 있었거든."


준휘
"그래?"

준휘는 콧방귀까지 뀌며 고개를 갸웃했다.


준휘
"그렇다면 이상하네."


준휘
"그럼 뭐, 생각나는 거라도 있어?"


지훈
"응."


지훈
"아까부터 생각했는데, 이건 어쩌면 미팅 약속 일지도 몰라."

준휘는 여전히 고개를 기울였고, 나는 말을 계속했다.


지훈
"즉 4시에 승철 스포츠플라자에 운동을 하러 간다는게 아니고, 승철이라는 사람과 스포츠플라자에서 만나기로 했다는 거 아닐까?"

그녀의 다른 기록을 보면 '-13:00 성우 XX사"처럼 시간, 이름, 장소 순으로 기록한 기록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이 기록도 같은 식으로 해석해본 것이다.


준휘
"그럴지도 모르겠네."

준휘는 고개를 두세 번 끄덕인 후 말을 이었다.


준휘
"승철이라면 그 스포츠플라자 사장일지도 모르겠네."


준휘
"취재 때문이었을까?"


지훈
"그렇게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지만...."

조금 망설인 다음 과감하게 말했다.


지훈
"그런 것 같지는 않아."


지훈
"너한테 말했지?"


지훈
"그녀가 누군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말을 나한테 한 적이 있다고."


준휘
"응. 들었어."


지훈
"그때 그녀는 이렇게 말했어."


지훈
" '그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말해버렸네. 낮에 했던 이야기 때문인가?'라고."


준휘
"낮에 했던 이야기? 그게 뭐야?"


지훈
"나도 모르지. 별것 아니라고 말했거든."


지훈
"하지만 어쩌면 그날 낮에 나한테 했던 이야기를 누군가와 했을지도 몰라."


준휘
"그날이 이....."

준휘는 턱으로 스케줄표를 가리켰다.


준휘
"16시, 승철---라고 적힌 날이라는 거지?"


지훈
"응."

준휘가 슬픈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준휘
"지나친 생각 같다는 느낌이 드는데."


지훈
"그럴지도 몰라."

나는 솔직히 인정했다.


지훈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건 분명히 해두고 싶어."


지훈
"내일 스포츠플라자에 전화해볼까?"


준휘
"승철 사장을 만나려고?"


지훈
"만나준다면 말이야."

준휘는 잔에 남은 와인을 다 마시고 나서 후, 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준휘
"조금 의외네."


준휘
"이렇게 열심히 매달릴 줄은 몰랐어."


지훈
"그런가."


준휘
"그렇다니까."


지훈
"그 사람을 좋아했거든."

그리고 나는 남은 와인을 잔 두개에 나눠 딸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