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구름
그가 건낸 따듯함이란


다음날 아침, 은은한 햇살이 부엌 창문을 타고 거실을 부드럽게 감쌌다.

빗방울은 멈췄고, 어제의 흔적처럼 습기가 고여있었다.

지연은 승관이 준 반팔티와 바지를 입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에 감기는 천의 감촉은 여전히 낯설었지만, 이상하게 피부에 닿는 공기와 발밑의 촉감이 더 또렷하게 느껴졌다.

간단히 샤워하고 나온 그녀.

씻으면서도 느꼈지만 지연은 어렴풋이 스스로가 조금 '현실적인 존재'로 가까워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거실로 나와 창가로 다가가자, 높은 창 너머 도시 전경이 펼쳐졌다.

햇빛이 새벽 안개를 가르고 맑게 퍼지는 모습은 아름다웠지만, 지연의 표정은 어딘가 허전하고 쓸쓸했다.

김지연
'나는 누구였을까.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걸까...'

그런 물음들이 머릿속을 무겁게 맴돌고 있을 때—


승관
"하암~ 일어났어요?"

낯익은 목소리에 지연은 깜짝 놀라 뒤돌았다.

졸린 듯 한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긴 채, 승관이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부엌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아침 햇살에 닿은 그의 모습은 말 그대로 '빛났다'.

김지연
"앗... 네! 안녕히 주무셨어요...!"

지연은 부끄러운 듯 급히 허리를 숙였고, 그 눈엔 잠깐의 동요가 담겨 있었다.

김지연
'와... 진짜... 연예인 포스는 아침에도 사라지질 않네...'

그런 생각을 하며 승관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지연.


승관
"...? 왜 그렇게 쳐다봐요? 얼굴에 뭐 묻었어요?"

그의 담담한 질문에 지연은 멍하니 말해버렸다.

김지연
"...잘생겨서요."


승관
"...엣—! 푸흡..!"

승관은 입에 머금은 물을 뿜을뻔하며 당황했고, 지연은 그 반응에 순간 무슨 말을 했지 하면서 당황해했다.

그러고선 지연은 얼굴을 살짝 손으로 가렸고, 점점 붉어지는게 느껴졌다.


승관
"아, 뭐 ...그...그럴수있죠...큼큼."

승관은 그러면서 간신히 기침을 멈추고는 입가를 손으로 살짝 훑는다.


승관
"오늘 별 일 없죠? 나랑 밖에 좀 가요."

김지연
"밖이요..?"


승관
"네."

승관은 그러면서 준비하고 나오겠다며 얘기하고서는 방으로 들어갔고,

지연은 무슨일이지하면서 그가 들어간 곳을 바라보았다.

***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감싼 승관이 먼저 문을 나섰고, 지연도 조심스레 그 뒤를 따랐다.

예상보다 주변을 신경 쓰는 그의 모습에 지연은 괜히 마음이 무거워졌다.

김지연
'...어차피 다른 사람들 눈엔 내가 안보일텐데...그걸 알면 마음이 좀 편할텐데...'

당장은 말 할 수가 없는 그 느낌에 지연은 입을 다문 채 그저 조용히 걸었다.

김지연
"근데... 어디 가는 거예요?"

지연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승관은 미소 지으며 손짓했다.


승관
"따라오면 알아요."

그리고 도착한 곳은 대형 복합 쇼핑몰이었다. 주말이 아님에도 사람들로 붐볐고, 실내에는 활기가 가득했다.


승관
"지연씨, 옷이 너무 없잖아요. 단벌로 살 수는 없으니까. 몇 벌 사줄게요. 나중에 꼭 갚기만 해요."

김지연
"에... 아뇨! 괜찮아요! 그냥 이대로도 편해요..."


승관
"그럼 그 옷 빨 땐 뭐 입게요? 내 옷 또 뺏어입을 거예요?"

김지연
"아니, 그게... 기억도 빨리 찾아야 하니까, 일자리도..."


승관
"그러니까 그게 언제일지 모르잖아요."

더는 말릴 수 없었다. 승관은 여유롭게 여성 의류 매장으로 들어가 다양한 옷을 골랐다. 티셔츠, 원피스, 바지, 니트...

김지연
"으아..괜찮은데...이렇게 많이..."

그러고서는 지연에게 어떠냐고 묻다가도 자신의 마음에 드는 옷들을 골라 이게 괜찮겠다며 무작위로 담고있었다.

지연은 어버버하면서 말려봤지만, 그저 나중에 갚으라는 말 뿐이었다.

그러고 계산대로 간 승관. 직원은 포장을 하려다 묻는다.

????
"네, 결제 해드리구..음, 거의 프리라 아마 상관없으시긴 할텐데 사이즈는 다 괜찮으신걸까요?"

그 말에 승관이 아차 싶어 말을연다.


승관
"아, 지연씨 사이즈는 이거 다 괜찮아보였는데, 한번 입어볼...."

그러면서 옆을 돌아보았으나 없어진 지연에 당황한 승관.


승관
"...에?"

????
"...손님?"


승관
"아, 일단 결제해주세요 사이즈 괜찮을것 같아요."

그러면서 승관은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직원은 옷을 쇼핑백에 담아 승관에게 건냈다.

쇼핑백들을 받아들고 매장을 나온 승관 지연을 찾기 시작한 그때.


승관
"...어? 왜 여깄어요?"

지연은 매장 밖 안쪽 아무도없는 복도 쪽에서 살짝 웅크리고 있었다.

매장 바깥 복도 벽에 웅크리고 앉아있던 지연이 조심스레 일어섰다.

김지연
"아, 그... 누가 알아볼까봐요.... 하하..."

사실 들킬까봐 순간 몸을 숨긴 거였지만, 지연은 애써 웃으며 변명했다. 승관은 별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쇼핑백을 그녀 앞에 내려놓았다.


승관
"여기 잠~시만 기다려요. 이번엔 진짜 금방 와요. 진짜."

김지연
"아, 네..."

그리고 다시 사라진 승관. 지연은 쇼핑백을 품에 안은 채 벽에 기대어 앉았다.

사람들은 분주히 지나다녔지만, 지연의 존재는 그 어떤 이에게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있을 무렵.

톡톡

가볍게 머리를 두드리는 손길에 지연은 놀라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선 승관이 한 손에 작은 쇼핑백을 들고 웃고 있었다.


승관
"이거, 핸드폰. 제일 좋은 걸로 샀어요. 연락은 돼야 하니까. 이것도 나중에 다 갚는 거예요."

그가 건넨 건 따뜻한 미소와 함께, 포장을 뜯지 않은 새 핸드폰이었다.

지연은 말없이 그것을 받아 들었고, 핸드폰을 조심스레 바라보다가

김지연
"...고마워요...고, 고마워요..."

결국 복받친 감정에 울음을 터뜨렸다.

승관은 당황하며 주위를 둘러봤지만, 마침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그는 당황하면서도 다가가 조심스럽게 지연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승관
"울 일이에요...? 아이 참... 진짜 울면 내가 더 미안하잖아요..."

그의 목소리는 다정했고, 어쩐지 그 품은 무척 따뜻했다.

그 순간, 지연은 또 한 번 확신했다.

이 사람 곁에 있으면... 분명히 무언가가 바뀔지도 모르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