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DEN CARD: 히든 카드
ESPER: 초능력자 [03]


그 이후로도 여주는 몇 번이고 능력을 써 피해 학생도 모르게, 많은 학생들을 구해냈다. 손바닥이 욱씬거리는 걸 모르는 척하며 자연스럽게 밖으로 나가니, 모든 학생들이 선생님 앞에 모여있었다.

"등급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름과 등급을 차례대로 말해줄 테니 잘 들으세요. 강예린 B클래스, 고영훈 B클래스, ……."

학급 반 학생들의 이름과 클래스가 순서대로 나열됐고, 여주는 학생들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오감을 통해 주위를 훑어봤다.

돌연변이 생물체가 발견됐으니 빨리 서준 선배한테 보고를 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지금은 사람이 많아 불가능할 것 하다.

"김태형 S클래스, 박지민 S클래스, 전정국 S클래스, 김여주 S클래스, 박단비 A클,"

"선생님, 잠깐만요. 왜 김여주라는 애는 S클래스예요? 저 애 아닌가요? 능력 쓰는 거 못 봤는데요."

김여주
"……."

"아, 강현민 학생은 이번에 전학 와서 모르죠? 김여주 학생은 가디언의 '조커'예요. 능력치가 오를 수는 있지만, 낮아질 수는 없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는 학생의 물음에도 담임은 이어서 다른 학생들의 이름과 클래스를 말하기 시작했다. 강현민의 말에 동의하는 몇몇 학생들이 수군대는 모습이 보였지만, 여주의 시선은 그쪽이 아닌 담임 선생님에게 향해 있었다.

김여주
"저걸… 죽여, 말아."

분명 여주가 가디언 소속이지만, 그것을 밝히기 싫어한다는 것은 이 학교 관계자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근데 그걸 북쪽 학생들 앞에서 대놓고 말하다니… 화가 올랐다.

"가디언? 그게 뭔데 그래?"

"A클래스 이상이어야만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뭐 그런 정부에서 만든 동아리인데…. 우리는 그냥 저주 받은 동아리라고 불러."

"뭐? A클래스 이상이면 엄청 높은 애들만 들어갈 수 있는 거잖아. 근데 웬 저주 받은 동아리?"

"저 동아리를 가입한 사람은 봤지만, 탈퇴한 사람은 본 적이 없어. 그리고… 저 동아리에 들어가면 열 명 중 여덟 명은 꼭 죽더라고. 작년에 대학생 선배 두 명도 죽었어."

한껏 예민해진 오감인지라 저 멀리서 속닥거리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디언. 저주 받은 동아리. 다른 학생들에게 가디언은 존경스럽고도 두려운, 그런 존재였다.

가만히 학생들의 얘기를 듣고 여주를 지켜보던 세 사람은 뒤로 몇 걸음 정도 물러났다. 자기들끼리의 이야기를 못 듣게 하기 위함이었다.


박지민
"가디언이라면… 이사장님이 우리한테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던 동아리 아니야?"


김태형
"A클래스 이상이면 들어갈 수 있다잖아. S클래스인 우리는 껌이겠지."


박지민
"근데 열에 여덟은 죽는다잖아. 우리 이사장님한테 낚인 거 아님…?"


김태형
"…그런가. 야, 전정국. 네가 볼 땐 어때. 가디언인지 뭔지 들어갈 거냐?"


전정국
"……."


김태형
"아오, 좀 대답을,"


박지민
"어차피 이사장님이 명령한 건데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은 있녜. 전정국이."


김태형
"아니, 시발. 너 진짜 궁예세요? 전정국한테 관심법 씀? 말도 안 했는데 어떻게 알아!!!"


박지민
"아, 전정국 얼굴이 말하고 있잖아, 얼굴이!!"


전정국
"……."


김태형
"폰 게임 하는 새끼 얼굴만 보고 뭘 어떻게 알아!!!"

다른 학생들과 거리는 두었지만 목소리 크기는 줄이지 않았다. 태형과 지민의 대화를 듣게 된 학생들은 이들이 가디언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결국….

그 소문은 삽시간에 전교생에게 퍼졌다.


테스트가 끝나고 학교에 돌아오자마자, 기가 막히게도 다음 시간은 동아리 시간이었다. 분명 학교 뒷산에서부터 학교까지 거리가 꽤 있는데도, 소문은 단 몇 시간만에 퍼져 있었다.

반 학생들 중에 텔레파시나 소리 파동 에스퍼가 있는 게 확실하다. 여주는 벌써부터 자신과 그 일곱 명에게 쏟아질 관심에 피곤해져 이마를 짚었다.

한서준
"여, 김여주–. 새로 온 S클래스들은 어때."

김여주
"…나한테 물어보지 말고 직접 보지? 마침 오네."

여주의 말이 신호가 된 듯, 가디언실 안으로 익숙한 얼굴 세 명과 낯선 얼굴 네 명이 함께 들어왔다. 아, 그들 뒤에 있는 키가 작은 언니까지 보이니, 이렇게 가디언이 완성되었다.

단미래
"여주!!! 언니가 너무 보고 싶었어!!!!!"

서준이 새로 온 이들에게 인삿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들의 한참 뒤에 있던 미래가 튀어나와 여주에게 달려들었다. 미래의 무게를 못 이겨 그대로 소파 위로 넘어지니, 미래는 씩 웃으며 여주의 얼굴을 붙잡고 양볼, 이마에 쪽쪽 뽀뽀를 해댔다.

단미래
"아구, 우리 막둥이 여주!!! 오랜만에 봐도 예쁘네!!!!"

김여주
"언니…. 우리 저번 주에도 봤거든요…."

단미래
"어머, 이제는 '우리'라고 묶인 거야?! 이참에 나한테 반말도 해 주면 안 돼, 여주야?!"

단미래
"한서준한테만 반말하고 나한테는 존댓말하니까 서운해…. 여주가 나한테 반말 해 주면 소원이 없겠다!!!"

한서준
"야, 단미래…. 그만하고 좀 앉지? 새로 들어온 애들은 보이지도 않아?"

단미래
"당연하지, 우리 예쁜 여주 말고 볼 게 더 있어?"

단미래. 서준과 같은 학년으로, 여주와 알게 된 지는 이제 1년이 조금 넘었다. 여주는 서준에게 하는 것과 달리 미래에게는 무조건적으로 존댓말을 했는데, 그 이유는….

김여주
"언니… 이제 좀 내려와 주,"

단미래
"꺄앗! 여주가 나한테 언니라고 했어! 야, 들었지? 여주랑 나 이런 관계야–."

…바로 이렇기 때문 아닐까.

미래는 여주를 처음 본 순간부터 예뻐죽겠다며 끌어안았다. 여주보다 머리 하나는 작으면서 오구오구 하는 모습이 귀여워 여주도 딱히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시끄러운 두 사람을 무시하고 서준은 한숨을 쉬며 이제 막 들어온 일곱 명을 자리에 앉혔다. 몇몇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둘러보고, 몇몇은 관심 없는 듯 멍하니 있는 것을 보니 여기서 성격이 드러나는 것 같다.

한서준
"좀 많이 시끄럽지? 미안. 얘 성격이 워낙 활발해서."


김석진
"괜찮아. 쟤랑 같은 반이라서 어느 정도 적응했어."

한서준
"아…. 처음부터 고생한다……."

서준이 안타까운 눈빛으로 위로의 말을 전하니, 석진은 고맙다며 살풋 웃었다. 두 사람 사이에 왠지 모를 동질감이 생겼다.

한서준
"나는 대학교 2학년, 한서준이라고 해. 가디언의 부장을 맡고 있고, 투시 능력이 있어."

단미래
"아– 자기소개 해야 해? 이런 거 진짜 지겨운데…. 나는 단미래. 한서준이랑 김석진이랑 같은 학년이고, 사이코메트리야."

단미래
"나보다 클래스가 높으면 안 읽히니까 걱정 말고, 우리 여주는 내 거니까 절대로 건들지 마!!!!"

여주의 어깨에 찰싹 붙어 소리를 지르는 미래를 보며 서준은 고개를 저었다. 1년 전이나 지금이나 김여주 전용 껌딱지였다.


김남준
"뭐, 우리도 소개해야 하나요? 이사장님께서 가디언에는 이미 저희 정보를 넘겼다고 하던데…."

한서준
"아, 그게…."

어젯밤에 여주에게 건넸던 서류철이 생각났다. 그 서류를 여주가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모를 서준은 머쓱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한서준
"그래, 너무 많아서 한 명 한 명 소개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겠다. 궁금한 점은 짬짬히 서로한테 물어보기로 하고, 가디언에 대해서 설명해 줄게."

여주 입장에서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여러 번 듣는 것이기에, 여주는 주머니에 있던 풍선껌을 꺼내 입안에 넣었다. 오랜만에 씹어서 그런가. 단맛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한서준
"학교 주변에는 총 네 군데의 통제 구역이 있어. 통제 구역 S-1, 통제 구역 S-2, 통제 구역 S-3, 통제 구역 S-4. 이렇게 총 네 군데야."

서준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맞은편에 앉아있는 정국을 힐끔 바라봤다. 여전히 그는 휴대폰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한서준
"우리 가디언은 그 통제 구역들을 지키고 있어. 학생들에게서도, 노말들에게서도."


정호석
"그 안에는 뭐가 있는데요?"

한서준
"반정부군이 만든 괴생물체."

정국에게 향했던 여주의 눈과, 휴대폰에 향했던 정국의 눈이 동시에 들어 올려져 마주쳤다. 약간의 어색한 공기가 흘렀지만, 그것도 그저 잠시일 뿐. 두 사람 다 모두 서준을 바라봤다.

한서준
"세계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반정부군은 지금 생체실험을 통해 괴생물체를 만들고 있어. 점점 진화하는 걸 보니… 곧 에스퍼에게도 이식이 가능해질 것 같다는 정부의 의견이야."

김여주
"정부는 아직도 그것들한테 이름도 안 붙였어? 계속 괴생물체, 돌연변이 이렇게 부를 수는 없잖아."

한서준
"…'월타'. 1차로 만들어진 괴생물체는 월타라고 부르고, 최근에 만들어진 2차 괴생물체는 '볼타'라고 부를 거야."

한서준
"월타는 이성이 없고 폭력성만 띈다지만, 볼타는 에스퍼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해."

에스퍼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괴생물체…. 아까 통제 구역 S-1에서 봤던 코브라가 생각났다. 그게 볼타구나.

한서준
"우리가 한가하게 환영회 같은 걸 할 시간이 없어서, 오늘 저녁부터 있을 순찰에 너희도 같이 낄 거야. 의견을 묻고 싶지만 시간이 없는 관계로 양해 좀 부탁할게."

한서준
"무조건 3인1조로 움직일 거고, 오늘은 첫날이니까 여주도 당연히 동행할 거야. 오늘 저녁 순찰은……."

서준이 일곱 명의 얼굴을 쭉 둘러보다 정확히 두 명의 얼굴을 보고는 가볍게 미소 지었다. 다른 사람이 봤다면 사람 좋은 미소였겠지만, 여주는 그 미소의 의미를 알았다. 저건….

한서준
"윤기랑 호석이가 가자."

악마의 미소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