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DEN CARD: 히든 카드
ESPER: 초능력자 [06]


오랜만에 조식을 먹으러 급식실에 내려왔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인 새벽에 내려온지라 급식실에는 학생들이 없었고, 여주는 마음에 드는 반찬을 골라 식판을 들고 구석에 자리 잡았다.

최대한 빨리 먹고, 최대한 빨리 나가기. 아침이든 점심이든 저녁이든, 여주만의 급식실에서의 규칙이었다.


김남준
"어, 안녕? 일찍 내려왔네?"

김여주
"……."


박지민
"어, 뭐야. 사람 있었잖아."

아, 요즘따라 정말 왜 이럴까. 이 사람들을 만난 이후로 일상이 꼬인다.

인사를 받아주면 어련히 자리 잡고 자기들끼리 밥 먹고 나가겠지 싶어 까딱 고개를 끄덕였건만, 왜 하필 내 앞자리에 앉는 것인지요.

여주는 불편하다는 티를 숨기지 않으며 신경질적으로 밥을 퍼 먹었다. 이런 여주를 아는지 모르는지 남준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렸다.


김남준
"평소에도 이 시간 대에 먹어?"

김여주
"…아뇨. 그냥 오랜만에 먹고 싶어져서요."


김남준
"그럼 평소에는 안 먹는 거야?"

김여주
"네, 뭐…. 그런 셈이죠."


박지민
"나 너 아는데, 너 나 알아?"

아 나 진짜, 밥 좀 먹으려고 하는데 자꾸 말 거네.

밥을 이제야 두 숟갈째 펐지만 두 사람이 계속해서 질문을 해대는 통에 숟가락이 입 근처로 가지도 못 했다. 인상을 쓴 채 빤히 쳐다봤지만, 그에 굴하지 않는 듯 지민 또한 여주를 빤히 쳐다봤다.

김여주
"박지민. S클래스 물 능력. 키 173에 몸무게 58. 좋아하는 건 삼색 고양이. 싫어하는 건 버섯,"


박지민
"아, 야!!! 잠깐, 잠깐!! 나 키 174거든? 왜 하나 줄이냐? 나 되게 예민하다?"

김여주
"어, 알아. 그냥 한 번 줄여봤어."


박지민
"……."


김남준
"미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거물이 여기 있었네."

지민이 키에 예민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당당한 여주의 태도에 얼이 빠진 지민은 말이 없었고, 그 옆에 앉은 남준만이 호탕하게 웃으며 끅끅거렸다.

이제야 밥 좀 제대로 먹을 수 있겠네. 여주는 대충 밥을 올린 숟가락을 국에 한 번 담갔다 빼 입에 쏙 넣었다. 밥맛 없을 때는 이게 최고였다.


김남준
"근데 여주야, 네 식판에는 초록색 음식이 없는 것 같다?"

김여주
"…제가 초록색을 좀, 아니 많이 혐오해서요."


김남준
"에이, 애꿎은 것을 싫어하면 쓰나. 자, 내 거 덜어줄게. 많이 먹어."

밥과 국, 그리고 김치로도 충분히 잘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숟가락에 생뚱맞은 음식이 하나 올라왔다. 바로, 시금치. 먹지도 않고 오래 쳐다보니 왠지 초록색에서 파란색으로 변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박지민
"꼴에 편식 하냐? 내 거도 줄게. 많이 먹어."

김여주
"……."

숟가락 위에 하나만 있던 존재가 둘이 됐다. 정녕 이걸 먹어야 할까, 싶어 눈을 두 사람에게로 옮기니 한 명은 어린아이 달래듯 보고 있고 한 명은 약올리는 눈빛으로 보고 있다.

아. 시발. 욕 나올 것 같다. 여주는 시금치가 올려져 있던 숟가락을 테이블에 탁 소리나게 올려두고는 젓가락으로 남준의 식판에 있던 버섯볶음을 한움큼 집어 지민의 입에 처먹이듯 넣었다.


박지민
"웩, 켁, 야, 야!!! 이, 이 괴상하게 생긴 버, 버섯을, 야!!!!"

김여주
"그럼, 식사 맛있게 하세요."

버섯을 입에 넣자마자 바닥에 퉤 뱉어내고 꽥꽥 소리를 지르는 지민을 가볍게 무시하며 여주는 남준을 향해 꾸벅 인사했다. 완벽한 퇴장이었다.


아직 조례 시간까지 두 시간이나 남았기에 여주는 익숙하게 S클래스 훈련장으로 향했다. 여주에게 S클래스 훈련장은 집과도 같았다.

학교 가기 전에도 들르는 곳이고, 학교 끝나고도 들르고, 쉬는 시간에도 들르고, 주말에도 들르는. 틈만 나면 들르는 훈련장이 여주에게는 곧 집이었다.

설마 여기에도 누가 있는 건 아니겠지…. 어젯밤부터 계속 누군가가 여주 개인 공간을 침범했기에 여주는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조심스레 훈련장 문을 열고 들어간 여주는 귓가를 때리는 큰 소리에, 천천히 눈을 내리감았다. 아… 이번엔 또 누구야….

남쪽에는 S클래스가 여주밖에 없어서 혼자 사용했던 공간을 다른 이가 사용한다고 생각하니, 그 껄끄러움은 온몸으로 표현할 수 없었다.

파지직– 펑!!!

순간, 전기가 흐르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여주가 감았던 눈을 다시 떴을 때에는… 이미 전기가 나가고 난 후였다.


전정국
"……."

김여주
"……."

가뜩이나 지하라 햇빛도 안 들어오는데, 스위치를 눌러봐도 불이 켜지지 않는다. 여주는 머리를 짚으며 짧게 한숨을 쉬었고, 그와 동시에 다시 파지직 소리가 나며 천장으로 얇은 전기가 솟아올랐다.

그리 큰 빛은 아니었지만 주위 1미터 정도는 볼 수 있는 빛이었다. 여주의 인기척을 눈치챈 정국은 손 안에서 전기를 굴리며 여주를 쳐다봤고, 여주도 정국을 쳐다보고 있었기에 둘은 눈이 마주쳤다.

김여주
"두꺼비 집은 내리고 연습하지 그랬어. 전기 다 나갔잖아."


전정국
"……."

김여주
"연습 다 끝냈으면 이만 나가. 전등 고쳐야 돼."


전정국
"……."

김여주
"나가라니까?"

말이 없다는 건 서류를 통해 미리 봐서 알고 있긴 했었는데, 이렇게 실제로 보니 답답했다. 무슨 말을 할 거면 제대로 입을 열던가.

아무 말 없이 두 눈을 꿈뻑이며 바라보기만 하니 기가 찼다. 가뜩이나 화나 죽겠는데,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격이다.

김여주
"야."


전정국
"…김여주."

김여주
"어?"

어, 놀래버렸다. 그렇다고 진짜 말을 할 줄은 몰랐는데. 조금 당황해 말 끝을 올려버리니, 정국은 몸을 여주 쪽으로 돌려 말을 이었다. 뒤에 들은 말은, 정말 가관이었다.

"나랑…."

"대결하자."

정국의 손에서 전기가 솟구쳤다.


쾅–!!!

김여주
"아윽…."


전정국
"……."

뭔 놈의 자식이 저렇게 힘이 세. 최대한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 정국의 공격을 받아치던 여주의 몸이 훈련장의 맨 끝 벽으로 날아갔다.

S클래스 훈련장은 벽이 특수벽으로 만들어져서 다행이지, A클래스 훈련장에서 했으면 벽이 부서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정국은 훈련장 한 가운데에서 터벅터벅 걸어오며 나지막히 물었다.


전정국
"…왜 능력을 안 써?"

김여주
"……."


전정국
"…너도 S클래스라며. 왜 안 써?"

김여주
"…내 마음이야."


전정국
"안 쓰면… 너 여기서 죽어."

김여주
"아아아악!!!!!!"

아무리 S클래스 에스퍼라도 능력을 쓰지 않는 이상, 몸은 그냥 노말과 같은 몸이었다. 정국은 무방비한 상태인 여주에게 전기를 내렸고, 천장에서부터 쏟아져 내려온 전기는 여주의 근육 하나하나를 건드렸다.

신경 세포가 움찔거리며 상하는게 느껴진다. 머리카락 끝에서 오징어가 탄 냄새가 났다. 헛웃음이 나왔다. 이 녀석도 S클래스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말았다.

김여주
"너… 장난 아니구나?"


전정국
"……."

속에서 울컥 터져나온 피를 바닥에 찍 뱉었다. 아무래도 내상을 입은 것 같다. 이렇게 능력 하나 쓰지 않고 있다간, 정말… 정국 말대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김여주
"후…. 이제 와서 말하긴 좀 그렇지만, 난 너랑 대결하겠다고 한 적 없다. 네가 갑자기 일방적으로 공격한 거야."


전정국
"…능력을 써."

김여주
"내 마음이라니까?"


전정국
"……."

반듯했던 정국의 미간이 산 모양을 그리는 게 보였다. 여주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 여주가 허리를 숙여 숨을 내쉬고 있으니 어느새 여주의 발 앞에 깨끗한 운동화 하나가 보였다.

크게 숨을 들이마신 여주는 천천히 허리를 들어올려 정국을 마주봤다. 정국과의 거리는 약 1미터. 아직도 여주의 몸에는 전기가 따깝게 움직이고 있었기에 이 상태에서 정국이 한 번만 더 능력을 쓴다면, …결과는 장담하지 못하겠다.


전정국
"써 봐."

김여주
"싫어."


전정국
"보고 싶어."

김여주
"……."

앞서 나눴던 대화를 듣지 않았다면 연인에게 보고 싶다 말하는 줄 알았을 것이다. 아까보다 한층 부드러워진 목소리에 내심 경계를 풀었던 여주는, 이어지는 말에 다시 경계를 세웠다.

"…그때 봤거든. 학교 뒷산에서 코브라 발견했던 날."

"나무 위에 있었잖아, 너."

인상을 찌푸리는 여주의 손 주위로 정국의 전기가 몰려들었다.



인물들의 능력 정리를 댓글에 적어두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트 눌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