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DEN CARD: 히든 카드
ESPER: 초능력자 [13]


마을 사람들이 여주에게 폭언과 폭설을 내뱉는 사이, 스페이드와 함께 왔던 에스퍼들은 가디언들 몰래 몸을 숨겨 자리에서 달아났다.

그들이 사라지는 걸 눈치챘음에도 불구하고 여주는 움직일 수 없었다. 자신에게 손가락질하는 마을 사람들과 마을 사람들 뒤로 스치듯 보이는 풍경에 과거가 다시 떠오르는 듯했다.


"어, 여주야, 왜 울어. 넘어졌어?"

김여주
"흑, 아, 아빠…. 내가 엄마 잡아먹었어…? 큽…."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누가 그래."

김여주
"하, 할아버지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엄마를 잡아먹어서 그렇다고…. 이 세상에 시체도 없다고…."

"…울지 마. 그런 거 아니야. 할아버지 말씀이든 마을 사람들 말이든 신경 쓰지 마. 응? 울지 마, 여주야."


왜 그때보다 더 빨리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할아버지한테 직접 물어볼 걸 그때 나는 왜, 뭐가 그렇게 무서웠던 걸까. 그때는 왜… 나 자신을 제어하지 못했을까.

"꺼져!!!! 감히 너 같은 게 마을에 들어와?! 당장 나가!!!!"

감히. 나 같은 게? 저런 말에 휘둘리며 반박 한 번 하지 못하는 나에게 화가 났다. 왜? 저들처럼 욕하면 되잖아. 근데 왜 안 하는 거야? 왜? 도대체 왜?


김태형
"지금 이게 무슨,"


전정국
"……."

단미래
"아, 미친!! 쟤 뭐하는 거야!! 야!! 당장 말려!!!"

얼어붙어 아무 말도 못하는 여주 대신 태형이 나서려 할 때, 그보다 먼저 나선 것은 정국이었다.

정국이 마을 사람들이 있는 곳을 향해 손을 뻗으니, 땅에서부터 올라온 전기가 마을 사람들을 중심으로 원모양을 그리며 감쌌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한 마을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며 가운데로 모였고, 미래가 정국에게 그만두라며 소리쳐도 정국은 들리지 않는 것인지 뻗은 손을 거둘 생각이 없어보였다.

단미래
"야!!!!!"


전정국
"……."

단미래
"사람들 다 통구이로 만들 거야, 이 새끼야?!????"

서슴 없이 욕설을 내뱉는 미래에 옆에 있던 서우는 깜짝 놀라며 미래에게서 한 걸음 떨어졌다. 정작, 들어야 할 사람은 꼼짝도 하지 않고 있을 뿐이었지만 말이다.


전정국
"…태울까."

김여주
"……뭐?"


전정국
"……."

방금… 뭐라고 하지 않았나? 정국의 목소리를 들은 여주는 정국을 바라봤지만, 여주의 시선을 마주한 정국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여전히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아!! 악!! 앗, 따가워!!!"

"에, 에스퍼가 우릴 공격한다!!!!!!! 살려줘!!!!"

어쩜 저렇게 이중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을 수 있을까. 살려달라 할 때 구해준 게 누군데, 구해주고 난 뒤에는 당장 나가라고 하더니 이제는 또 다시 살려달라 소리친다.

콰지직–!!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이는 정국에, 결국 윤기가 나섰다. 얼음벽과 전기가 맞부딪히며 듣기 싫은 소리가 났다. 정국의 전기로 인해 얼음벽이 갈렸다.


민윤기
"죽일 거야?"


전정국
"……."


민윤기
"네가 뭔데 죽여. 능력 좀 쓸 줄 안다고 사람 목숨 함부로 해도 돼?"


전정국
"……."


민윤기
"상황 파악 좀 해. 이 사람들 지키려고 나선 나도 기분 좆같은 건 마찬가지니까."

욕설을 내뱉으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윤기의 미간이 뫼산 자를 만들었다. 윤기의 말을 듣고 주변 가디언이 아닌 여주의 얼굴을 쳐다본 정국은 그제야 자신의 능력을 거두었다.

여주를 중심으로 상황이 돌아가는데도 여주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여주의 과거를 알고 있는 서준은 한숨을 푹푹 쉬며 지끈거리는 눈두덩이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여주 마음이 어떨지 예상은 가고, 정국이 능력을 쓰는 바람에 원래도 농작물이 자랄 수 없는 땅은 더 망가졌고, 그 위에 쓰인 윤기의 얼음은 녹을 생각을 안 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을 해야 할까. 이래서 자연계 능력이 위험하고도 귀찮은 거라니까. 없었던 예지력이 생긴 것 같다. 눈앞의 미래가 훤했다.

"너… 너희도 저 년이랑 한패였던 거야. 그런 거야!!!!"

김여주
"……."

"네가 무슨 자격으로 이 마을에 발을 들여!!!!!!"

한서준
"아니, 저기,"


김석진
"그만."

괜히 또 여주를 건드는 마을 사람들에게 뭐라고 하려 입을 여니, 그런 서준의 말을 끊고 석진의 말이 이어들렸다. 그만. 그 두 글자를 말하는 데에 능력을 쓴 듯,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거기서 말 한 마디만 더 해 봐."

"스스로 목을 긋고 싶다면 말이야."

석진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여주에게 삿대질을 하며 폭언을 내뱉는 한 남자를 가리키자, 그 남자는 갑자기 옆에 떨어진 날카로운 유리 조각을 들더니 자신의 목에 들이댔다.

"으… 으으…!!!"

남자가 직접 행하는 행동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뭐라고 입을 움직였다. 물론, 제대로 된 소리는 들이지 않았다.


김석진
"뭐… 서로 말 조심 좀 하자고."

석진의 말이 들림과 동시에 남자는 손에 들고 있던 유리 조각을 바닥에 떨궜다. 여기저기서 훅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바로 마인드킹…. 정신계 최고 능력 마인드킹, 거기다 무려 S클래스인 석진의 능력이었다.


석진의 경고가 꽤 효과적이었는지, 그 이후에는 여주와 다른 에스퍼들에게 향한 비난은 없었다.

중간중간에 정국이 살기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자 마을 사람들도 함께 움직여 예상 시간보다 더 일찍 주변을 정리할 수 있었다.

사상자 7명, 중상 24명, 경상 2명. 총 50명 중 이 정도의 피해나 있었으니 다른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최대한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은 구해냈지만, 결과적으로 본다면 이번 임무는 실패였다. 범인을 잡지도 못하고, 심지어 범인이 누구인지도 몰랐다.

어렵게 알게 된 거라고는 그들 중 주도자의 이름이 스페이드라는 것과 그녀가 여주를 알고 있다는 것. 그뿐이었다.

김여주
"……아."


민윤기
"…괜찮냐."

딱히 여주가 나설 일도 없고, 나서더라도 능력을 쓰려는 모양새를 보이기만 하면 마을 사람들이 한껏 사나운 시선을 보내기에 여주는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있었다.

과거에 대한 생각, 스페이드에 대한 생각, 지금의 나에 대한 생각 등 여러 복잡한 생각들을 하고 있던 여주는 자신의 볼에 갑작스레 닿는 누군가의 손에 놀라 외마디를 뱉었다.


민윤기
"…그냥, 내가 체온이 낮아서."

여주의 옆에 자연스럽게 앉는 윤기를 빤히 쳐다보자, 그 시선이 못내 부끄러웠는지 윤기는 두 귓볼을 붉히며 괜히 말을 늘렸다. 그 와중에 여주의 뺨에 대고 있는 손은 거두지 않았다.

김여주
"…왜 막았어요?"


민윤기
"…?"

김여주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이잖아요. 어차피 우리 아니었으면 죽을 사람들이었잖아요."

마을 사람들을 얘기하는 것이었다. 아무 상관 없는 사람, 어차피 우리가 아니었다면 죽을 사람. 여주는 마을 사람들을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정 없이 내뱉는 여주의 말만 듣기에는 아까 여주가 보였던 행동이 마음에 걸렸다. 모순됐다. 그렇게 상관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마을 사람을 구했던 여주의 행동이.


민윤기
"네가 구한 사람들이잖아."

김여주
"…네?"


민윤기
"네 능력 아니었으면 중상은 무슨, 진작에 이 세상 사람 아니었을걸."

사실 윤기는 아까 여주가 능력을 쓰던 것을 봤다.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파란 머리를 한 여자와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하다 비명 소리를 듣고서 바로 몸을 돌리는 여주를 봤다.

여주가 걸어가는 길은 마치 중력이 거슬러진 듯 무너진 파편들이 바닥으로 떨어지다 중간에 방향을 바꿔 여주에게 당겨졌다. 물론, 여주에게 닿기 전에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말이다.

여주가 능력을 쓴 그 자리에는 윤기도 미처 발견하지 못한 마을 사람들이 있었다. 어린아이부터 임산부까지. 집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 우리가 아니었다면 죽을 사람을 여주가 살렸다. 그래서 윤기도 정국을 막은 것이었다. 상황 파악은 개뿔, 가디언은 개뿔.

애초에 봉사 정신이 그닥 있지 않은 편인 윤기에게는 별로 관심도 가지 않은 것들 뿐이었다. 그래, 그저 정국을 말리기 위한 속임수였다.


민윤기
"왜 맞기만 했어. 어차피 네가 살린 거라 똑같이 몇 대 때려도 되잖아."

김여주
"…안 어울려요. 왜 갑자기 그런 표정, 그런 말을 해요? 그냥 하던대로 해요."


민윤기
"내가 지금 어떤 표정, 어떤 말을 하는데?"

윤기의 눈동자에 언뜻 장난기가 비쳤다. 이를 눈치챈 여주가 자신의 뺨에 닿아있는 윤기의 손을 밀어내려하자, 윤기는 놀고 있던 다른 한 손도 뻗어 여주의 두 뺨을 감쌌다.

김여주
"…선배. 이제 다 식은 것 같,"


민윤기
"말해 봐. 내가 지금 어떤 표정, 어떤 말을 하고 있냐니까?"

장난으로 둔갑한 무언가가 당연히 여주의 눈에도 보였다. 하지만 이건 좀 뭔가 아닌 것 같은데…. 여주는 윤기의 질문에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김여주
"걱… 정?"

걱정. 여주 스스로 자신의 입에 담기에 이토록 어색한 단어는 없을 것이다. 이 생에 걱정을 받아본 적도, 느낀 적도 없으니.

그렇기에 방금 내뱉은 말도 확신하진 못했다. 다른 사람이 나를 걱정하다니. 그것도 불과 본 지 며칠도 안 된 사람이. 심지어, 나를? S클래스인 나를? 흡수 에스퍼인 나를?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혐오 또는 선망의 시선만 받아온 여주에게는 생소하고도 정말 어색한 일이었다.

뒤늦게 여주도 자신이 이상한 말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 윤기에게 사과의 말을 전하려 할 때, 갑자기 꾹 닫혀있던 윤기의 입꼬리가 푸스스 풀어졌다.

"맞는데 왜 그래."

"한 번만 더 걱정시키면 확, 쥐어박는다."

무시무시한 말과는 다르게 윤기의 입가에는 장난스러운 웃음기가 가득했다.



여주를 걱정하는 사람은 많지만, 눈치 없는 여주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걱정한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해요. 이번에 '걱정'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어색해했죠.


ㅜㅠㅜ 엘퍼분들 손팅 하나는 끝내줘요 댓글 진짜 많네요 햄볶 ㅜㅠㅜㅠ 감사합니다 손팅 파워로 3~4일 이내에 계속 올릴게요!

이번 편은 정국, 석진, 윤기가 중점인 편이었습니다!! 평점, 댓글, 응원 3회 부탁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