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친 인스타 좋아요 실수로 눌러버렸어요ㅠㅠ

07. 기억 속 내가 가장 어릴 때

"석진이가 많이 그리워해요."

"요즘 술 엄청 자주 마셔요."

.

"석진이가 많이..."

"석진이가."

"석진이."

김석진.

보고 싶다.

이런 순간일수록 더 보고싶어. 처음 있는 일도 아닌데 꼭 처음인 것처럼 떨려.

"석진이가 많이 그리워해요."

그래서 뭐. 그럼 잡지 그랬어. 난 어짜피 버림받을거야.

"... 요즘 술 엄청 자주 마셔요."

잘 먹지도 못하는 술을 왜 그렇게 많이 마시고 난리야. 속상하게 그걸 왜 남의 입으로 듣게 만드냐고.

지금 앞에 앉은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도 내 눈 앞엔 너만 아른거려. 알아?

"많이 아파하니까 ..."

아. 정확히 기억나지도 않는 그 말들이 머리속에서 오버랩됐다. 이러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안 되는데. 진짜 딴 생각할 수가 없는데, 네 생각이 나.

높은 힐 신은 거 보고 걱정해줬잖아. 짧고 얇은데 딱 붙기까지 하는 옷 입은 거 보고 네가 입은 과잠 덮어줬잖아. 그치.

... 나.

이번에도 그래주라.

나... 내가.

아니. 오빠가 그렇게 해 줬으면 좋겠어.

.

이번에도 그냥 안아주라...

이번에도 그래 줬으면 좋겠어. 나 진짜 돌아갈 곳이 없어.

여주씨?

다 끝나고 오빠만 또 그렇게 해주면 괜찮을 것 같아.

억지로 엷은 미소를 띄고 무대 중앙으로 위태롭게 걸어갔다. 목을 가다듬고 좌석을 슥 훑었다. 티 나지 않게... 후.

이러는 거 솔직히 너무 싫어.

김여주

주주님들, 안녕하십니까.

쇄골에 손을 얹고 상체를 살짝 숙였다.

집중하자...

김여주

P그룹 주주총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임원들을 시작으로 홀에 조그맣게 퍼지는 박수소리.

연습했으니까. 잘 할 수 있어.

.

우리 집은 특이했다.

그런 집에서 자란 나도 마찬가지로 특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억 속의 가장 어릴 때, 4살의 기억이 어렴풋이 있다. 좁은 집, 끝나가는 겨울, 노란 장판 위에서 엄마랑 나란히 잠에 들기 직전인듯 싶다.

문이 쾅 열리고 사람 두 명이 들어왔었다. 한 명은 나를 안고 나갔었고, 다른 한 명이.

아버지라는 것을 늦어서야 알 수 있었다.

또한 내 기억 속 처음으로 등장한 남자 가족이었다.

아무튼 그 날 이후로 엄마는 자주 우셨고, 밥을 자주 거르셨으며, 나보다 일찍 주무시고 나보다 늦게 일어나셨다.

점점 더워지면서 엄마의 배는 점점 불렀고 휑한 집에 썩은 과일도 하나 둘씩 생겼다.

가을 즈음 우리 집에 말린 국화 한 박스가 배달왔고 엄마는 그걸 달이다 하염없이 우셨다.

그게 싫어 작은 꽃잎들을 주워 다시 박스에 담고 현관에 뒀다.

겨울, 크리스마스도 초라하게 보내고 노란 장판이 다시 거실에 깔렸을 때

동생이 생겼다고 했다. 그것도 쌍둥이.

어리고 무지한 나는 자라갔다.

내 스무 살. 모든 게 버거웠는지 엄마는 대학비 등록 기간에 말없이 사라지셨다.

절망 그 자체였다. 다들 한국 최고 대학이라 말하는 ==대에 입학을 허가받았는데 돈이 없어 다닐 수가 없다는 게 실감나 어렵게 아버지를 찾았다.

거기서 빌었다. 어떻게든 장학금 타서 다음 학기부터는 내가 떼울 테니 한 학기만 학비를 부담해달라고. 아버지는 조건을 걸었다.

==대 대학생이 그룹 주주총회에. 그것도 인건비 없이. 아버지는 좋은 사업가였다. 21살부터 주주총회에 참석한다는 서류까지 작성했다.

처음 주주총회에 간 날 평범한 여성용 정장을 입었는데 관계자는 그게 아니라며 짧은 치마에 블라우스, 하이힐을 주셨었다. 신발 사이즈도 어떻게 아셨는지...

진짜 시선강간이라는 게 뭔지 몸으로 실감한 날이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집에도 안 가고 남자친구를 찾았다. 지금은 전남친인, 김석진을.

거기서 진짜 위로를 많이 받았었는데. 지금은 없잖아.

그러니까 내가 알아서 해야 해.

...

알아서 잘 해야 해.

피피티가 끝나간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