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바람피워요, 정식으로”
74 • 고래 싸움에 새우가 조련한다.




전정국
그래서- 이사를 하는게 좋을 거 같아.


도여주
이사라……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냐면. 출산 예정일을 앞 둔 지금. 아이들은 뛰면서 크는게 좋지 않겠냐며, 정국이 이사를 제안하는 상황이였다.

원래라면, 무슨 이사냐며 타박해야 할 여주지만_ 이번만큼은 동감하는 바였다. 그럼그럼, 애들은 뛰면서 커야지.


도여주
좋은 생각이긴 한데. 요즘 주택 집 값이 많이 비싸던데……


전정국
집 값?.

무심코 쳐다본 정국의 얼굴에 물음표가 달렸다. 그걸 왜 걱정해?, 라는 얼굴로. 그제서야 깨닫는, 정국의 직업.

아, 보기는 이래보여도 대기업 총수였지. 무의식적으로 입을 벌린 여주가 꾹- 입을 다물었다. 평소 모습이 워낙 어려서 말이지.

가끔, 정국이 어떤 사람인지 잊을 때가 많았다.


도여주
아… 너 회사 대표였구나.


전정국
뭐야?, 방금 깨달았단 그 표정은?.

차마, 아니라곤 못 하겠네. 하마터면, 웃음이 터져나올 뻔한 것을, 입술을 말아 물고는 꾹- 참았다.


도여주
아냐, 아무것도.

와, 진짜 터질 뻔 했네. 웃음을 참는 여주의 앞에, 정국은 갸웃거렸다. 아무것도 아닌게 아닌 것 같은데?.

일단 찝찝하긴 하지만, 넘어가겠단 얼굴을 한 정국은 마저 못한 말을 꺼냈다.


전정국
이미 몇 개 찾아봤는데-.

핸드폰을 꺼내 사진첩으로 들어간 정국이, 여러장의 사진을 꺼내 보여주었다. 넓은 정원이 있는 집 부터, 수영장이 있는 집까지. 다양한 집이였다.


전정국
나중에 빈 곳은 애들 놀이터를 만들까?.


도여주
그것도 좋은 것 같긴한데-……

아이 한 명인데, 놀이터까지 짓는 건 가성바가 너무 안 나오지 않나. 차라리, 키즈카페를 가는게 나을텐데. 그와중에, 가성비를 따지는 여주였다.


전정국
씁, 또 머리 돌아가는 소리 들린다.


전정국
우리 애들한테는, 돈 같은 거 아낄 필요 없어.


도여주
아, 나도 그 말에 동감하긴 하는데-

그래도, 이건 너무 효율이…… 텁, 하고 정국의 손에 입이 막혀버린 여주는 입이 자동으로 다물렸다.


전정국
그럼, 수락한 걸로?.


도여주
아니요. 저기, 아저씨… 내 말 아직 안 끝났는ㄷ,



전정국
그럼, 다음 집은-

어째, 말을 들을 의지 자체가 없는 것 같은데. 소파 헤드에 자연스레 머리를 기댄 여주는 웃음이 새어나왔다. 저런 모습도, 귀엽다니까.


도여주
애초부터, 내 의견은 들을 생각도 없었, 윽.

갑작스런 배의 움직임에 돌란 여주가 자동으로 배를 감싸며 몸을 웅크렸다. 그 움직임에 더욱 소스라치게 놀란 것은 정국이였다.


전정국
왜, 왜!?… 아파? 지, 진통인가?…


도여주
아니, 그게 아니라…

태동이야. 라고 말한 여주가 부른 배를 자연스럽게 쓰다듬었다.


전정국
…태동?, 이제서야 볼 수 있는건가?.


도여주
보여줄 마음이 생겼나봐.

사실, 이 태동엔 마음 쓰린 사연이 있다.

태동이 시작된 건, 진작 오래되었는데. 이상하게, 정국이 오기만 하면 조용한 것이였다.

그래서, 정국은 마음이 무척이나 상해있었다. 벌써부터, 자신을 견제하는 것 같다면서_ 요한에게 속을 털어놓았지.


전정국
네가 말 해봐. 네가 생각해도 정말 그래?…


김요한
글쎄요. 그건 참 신기하네요. 어쩌면, 벌써부터 아빠가 싫은 걸 수도 있고.


전정국
자기 일 아니라고, 태연한 것 좀 봐. 난 이렇게 진지한데.


김요한
제가 상관의 고민을 들어줄 만큼, 한가한 사람이 아니라서.



전정국
신기해……

만져봐도 되냐고 허락을 받고서, 조심스럽게 부른 배에 손을 살짝- 올린 정국은 감탄했다. 수평에서보면, 꼼지락거리는게… 눈에 보였다.


전정국
약간, 우리 토끼 천재인거 같애.


도여주
응?, 왜?.


전정국
좀, 서운하긴 하지만… 태통까지 막, 컨트롤 하잖아. 나중에 태어나면, 프로게이머를 시켜볼까?.

어이구,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상대로 벌써 장래희망까지. 정국이는 진심인지 눈동자를 반짝거렸다.


도여주
내 생각엔- 그냥 아빠를 싫어하는 거 아닌가 몰라.


도여주
지금은 자기를 위해서 이사한다고 하니까, 좋아서 움직여 주는 거고?.

정국의 낯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벌써부터, 주도권 싸움을 하는거야?. 정국의 낯빛이 어두워진 포인트는, 자신을 싫어한다가 아니였나보다.


전정국
완전 속물이네, 속물. 벌써부터, 혼자 엄마 차지 하려고-.

꼼지락 거리던 뱃 속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정국의 어이없음이 담긴 숨을 내뱉었다. 허, 진짜 인가 보네?.


전정국
태어나기만 해봐, 내가 몸에 좋은 채소란 채소는 다 집어넣어줄거야-.


도여주
풉.

웃음이 터진 여주는 땡기는 배를 부여잡고 소파에 등을 기댔다. 겨우 생각해낸 복수가, 채소를 넣어주는 거라니. 하는 짓이 꽤 앙큼했다.


도여주
채소를 좋아할 수도 있잖아?.


전정국
……어?, 거기까진 생각 안 해봤는데.


전정국
흐음. 그럼, 엄마랑 떼어놓기?.

쿡, 하고 다시 찔러오는 배의 통증에 여주가 눈쌀을 찌푸렸다. 이번엔 진짜 화가 난건지, 발로 찬 느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도여주
….읏, 이것들이 진짜.

나 가지고 뭐하는거야. 싸우는 것은 아빠와 아이인데. 고통받는 것은 엄마였다.


전정국
괜찮아?…

성이 난 음성이 금세 사그라지는 정국. 뱃 속의 아이도 자신의 엄마가 화가 났다는 것을 느꼈는지, 발길질이 멈췄다.


도여주
…나와서 니들끼리 싸우란 말이야.

안 그래도 불러가는 배 때문에 허리 땡겨죽겠는데. 아주, 지들끼리 살판났지?.


전정국
…네.

이 가족은 고래싸움에 등 터진 새우가 아니라,

큰 고래들을 조련하는 현실 갑(甲) 새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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