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사람 친구
11. 걱정은 곧 마음



남자 사람 친구,


제 11화. 걱정은 곧 마음



그렇게 시간이 좀 흐르고… 얼떨결에 우리 편에 남게 된 넷. 그보다 더 충격인 건 그 넷 중에 내가 포함이란 소리다. 나 피구 진짜 못한단 말이야.

솔직히 아직도 안 믿겨서 두 눈만 말똥말똥 뜨고 있다가 남자애한테 한 소리 들었다. 상대편에는 대충 세도 열 명은 넘거든.

윤여주
…하! 우리 반 피구에 유독 약하구나.

"그럴 리가. 골고루 다 약할 걸."

혼자 해 본 소린데 뜬금없이 옆에서 들려오는 여자애 목소리에 갑자기 전우애(?) 같은 게 생겼다.

이 전쟁통같은 분위기(상대편 남학생 수비수들의 이글거리는 눈빛과 공 날리기에 최적화된 자세) 속에서 자연스레 드는 감정이랄까.

별로 안 친한 여자애였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친해지게 되는 기적. 공이 왔다 갔다 하는 동안 공에만 시선 꽂혀있다가…



박지민
네가 받아. 넘길 테니까.


박지민
구석에 몰린 애들부터 죽여.

드문드문 어쩔 수 없이 그에게로 향하게 되는 내 시선이었다. 하…. 짝사랑 한 번 지독하다.

다른 남자애들이 저러면 왜 저렇게까지 열심히 하나 싶은데… 박지민 한정 존나 멋있다. 멋있어 죽겠다.


그렇게 한동안은 박지민이 죽어가는 팀 살려내느라 나와 주고받는 대화는 없었다. 내심 서운했지만 그래도 뭐…… 어라?

윤여주
……?

윤여주
뭐야, 어디 갔어 얘네?

그나마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전우애 넘치는 친구 하나랑, 박지민 옆에서 보조하던 친구 하나마저 탈락.

난 진짜 여태껏 어떻게 살아남은지 의문인데, 정신 차려 보니까 박지민이랑 나 둘뿐이더라.

윤여주
…그냥 포기하는 게 낫지 않아?


박지민
그럴까.

우리 둘이서 열댓 명을 어떻게 이기니.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게임이었다. 이미 끝난 게임.

그나저나 대화하는 와중에 땀에 젖은 머리칼 하며… 목 부근만 젖은 하얀 반팔 티가 눈에 들어왔지 뭐야. 어우 정신 차려 윤여주!

속으로 뺨 몇 번은 치면서 이내 고개를 돌렸다. 이러다 나 죽는 거 아니야? 싶을 때면 지겹게도 박지민이 공을 잡아주곤 했고.



첫판이 끝나고 시간이 남아 한 판을 더 했는데, 그 점수마저 상대팀에게 넘겨주는 바람에 완패로 끝난 피구.

이기진 못했지만, 나로서는 나름의 소득(?)은 많았던 아주 행복한 시간이었달까.

자리로 돌아와서 표정 관리 못하고 있으니까, 어느새 교복으로 다시 갈아입고 온 박지민이 날 보며 옆에 앉았다.


박지민
재밌었어?

윤여주
나름!


박지민
수고했어.

땀 냄새날까봐 탈취제까지 뿌리고 온 모양인지, 그가 살짝 고갯짓할 때마다 포근한 비누 향이 코 끝을 간질였다.

윤여주
내가 뭘. 수고는 네가 다 했지.

윤여주
너 없었으면 애초에 시간 그렇게 끌지도 못했어.

내 말에, 만족한다는 듯이 아무 말 없이 웃음 지은 그는 보라는 내 얼굴은 안 보고 애꿎은 책상에만 시선을 고정했다.

설마… 지금 부끄러움 타는 건가.

윤여주
다음에는… 내가 더 실력 키워서 올게, 꼭…ㅋㅋ

윤여주
적어도 너한테 민폐는 안 돼야겠어.


박지민
실력은 어떻게 키우려고.

윤여주
…그야,

윤여주
나름대로 잘……? 하면 되지 않을까.

여전히 내 눈은 피한 채 박지민이 활짝 웃었다. 그렇게 대책이 없어도 되는 거냐며.

윤여주
공 받는 정도는…ㅋㅋㅋ 가족이랑 연습할 수 있어!

어쩜 내가 말할 때마다 더 웃어, 얘는.


그렇게 잠깐의 달콤한 꿀같은 쉬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을까… 교실 앞쪽에서 언성이 높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 시발 진짜 기분 엿같게 하네."

어느새 가득 몰려든 친구들에, 잘은 보지 못하고 박지민이랑 제자리에서 상체만 최대한 펴고 보는데…


우리 반에 좀 못되게 구는 애 하나랑…


전정국
아… 또 시작이네, 이 새끼.

엥, 전정국?


그 둘이서 마주보고 서서 차마 흉내낼 수 없는 쌍욕들을 주고받고 난리가 난 상태. 곧 있으면 주먹이라도 한 대 날아갈 기세였다.

윤여주
……뭐야, 무슨 일인데 저래.


박지민
뻔하지. 일방적으로 시비 털었네 쟤가.

윤여주
누구.

천승호. 전정국의 앞에 독기 가득한 눈빛을 품고 서 있는 남자애의 이름이었다.

박지민 또한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윤여주
…둘이 자주 저랬었나?


박지민
그랬던 것 같은데.

무슨 일 때문에 저러지… 근심 가득하게 상황을 주시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먼저 주먹을 휘두른 쪽은 천승호였다.

윤여주
…!

주변에서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친구들의 입에서 아 하고 놀라는 짧은 숨이 뱉어져 나왔다. 물론 나도.

이러다가는 진짜 일 커지겠다 싶어 여전히 한 손으로 입은 틀어막은 채, 무의식적으로 지민의 어깨를 쳤다.

윤여주
야… 저거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

둘이 이성적으로 판단할 때는 이미 지나친 듯한 눈빛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저 둘을 제지할 수는 없으니까… 그냥 물어보기만 했는데


눈 깜짝할 새에 천승호, 전정국 둘 사이에 가 있더라.

여태 앉아있던 나도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친구들이 있는 곳을 향해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래도 기존에 전정국과는 친분이 있던 박지민이라, 살살 달래듯이 두 사람 사이에서 무어라 말하는 것 같더라.

뭐라 말하는지는 잘 안 들려서 모르겠ㄷ……


윤여주
…!

순간이었다. 천승호가 내두른 손으로 인해 또다른 마찰음과 함께 박지민의 고개가 돌아간 것이.

곳곳에서 여자 애들이 놀란 듯한 소리가 들렸다. 나도 순간 육성으로 나쁜 말 내지를 뻔. 지금 저 상처도 아직 아물기 전인데 저 놈이 지금…!

잔뜩 열이 오른 나를 눈치챈 듯한 박지민은 나를 향해 시선을 돌리더니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오지 말라고.

그새에 잠깐 확인하게 된 그의 입술은 맞은 탓에 터진 듯했다.

아니 저번에 골목길에서 중딩들 혼낼 때에는 잘도 험한 말 쓰더니 지금은 왜 참고만 있는지… 저 바보탱구리.



박지민
…아. 존나 아프다.

제 입술의 피를 손가락으로 슥 닦아낸 그가 말했다. 그것도 잠시, 천승호를 향해 다시금 차분한 어조로 말을 꺼냈고.

일 더 커지기 전에 그만하자고 말하는데, 거기서 느꼈다. 처음 들어보는 톤이라서… 쟤도 지금 엄청난 화를 억누르고 있는 중이라는 걸.

천승호
…뭘 자꾸 그만하래.

천승호
뭐 니 새끼가 선생이라도 돼?!

지민의 입이 굳게 닫혔다. 아무 말 않고, 여태 내게는 단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던 가라앉은 눈빛으로 그를 노려봤다.

하지만 거기에 더 자극받았던 걸까. 천승호는 이내 교실이 떠나가라 큰 고함을 지르며 제 눈에 보이는 교과서 몇 권을 신경질적으로 집어 들었다.

그리고서는 바로 공중에다 대고 집어던져 버렸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 책들의 방향이 근처에 있던 나를 향하는 바람에, 얼굴 을 스치거나 내 팔에 맞고 바닥에 떨어졌지 뭐야.

순간 이걸 던지던 걔의 표정과 상황이 너무나도 충격이었어서, 속으로 너무 멘붕와버렸다. 그것도 잠시 일단 책은 주우려…



박지민
아 시발 진짜…….

는 무슨. 박지민 분위기에 더 쫄아서 그 동시에 얼음.




박지민
그만하라고. 새끼야.




윤여주
아 선생님…!!

윤여주
정말이라니까요…!!!

"내가 네 말을 어떻게 믿니."


윤여주
하…. 진짜 돌겠네.

윤여주
야, 뭐라고 말 좀 해봐. 천승호.

천승호
…….

어쭈, 아까 잘만 나불대던 놈이 이제와서 입막귀막 시전. 진짜 환멸날 지경이다.

그러니까 지금 무슨 상황이냐면, 그 상황을 목격한 담임쌤한테 천승호랑 전정국, 박지민이 불려온 것. 나는 박지민 따라왔고.

전정국은 잠시 화장실 다녀온다 했고… 담임쌤은 죄 없는 박지민 앉혀놓고 추궁하시는 중.

윤여주
진짜 박지민은 아무 죄가 없다니까요…?!

윤여주
치고 박고 싸우려는 둘 막으려다가 지금 이 꼴이 난 거예요….

지금 얘 상태를 좀 봐. 입술 다 터지고 난리도 아니에요. 어제도 누구한테 맞고 왔다고.

윤여주
정 안 믿기시면 전정국한테 물어보시면 되잖아요.

"그거야 정국이가 오면 물어 보겠지."


윤여주
아 쌤 진ㅉ…!

갑자기 손끝을 감싸오는 온기에, 당황해서 뒤를 쳐다보니까 박지민이 내 손을 잡고 있더라. 자기가 다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라는 듯한 눈빛을 보내며.

윤여주
…….

윤여주
너 잠깐 나랑 이야기 좀 해.

"이야기는 무슨. 윤여주, 지금 선생님이랑 이야ㄱ…"


"야! 윤여주! 어디 가!"




윤여주
…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어.

윤여주
너는 그냥 싸움 말리려던 것뿐이라고 말하ㅁ…



박지민
다친 데는, 없어?

윤여주
…….

윤여주
……으이그, 이 바보탱이야!

쿡, 박지민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약하게나마 찔렀다. 네 상태를 먼저 보라는 충고와 함께.

윤여주
내 걱정은 내가 해.

윤여주
그러니까 넌 네 걱정 좀 해. 응?



박지민
내 걱정 전에 네 걱정.


박지민
아까 어디 맞았는데.

급기야 내 양팔까지 붙잡고서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물어오는 그에, 계속해서 안심시키려고도 해봤지만…

윤여주
그냥 얼굴이랑 팔 살짝 스친 게 다야.

윤여주
다친 곳도 없고, 무척이나 멀쩡해.


박지민
아까보다 수척해진 것 같은데.

걱정왕 박지민에게 먹힐 리가.





++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뭔데.


+++ 지금까지 신원 불분명한 사람 두 명. 천승호, 그리고 지민이 다치게 만든 모옷된 사람. 차차 풀어 나갈 테니 기다려주시와요-


++++ 이 작품을 기다려주시고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치만 당분간의 업로드는 시험으로 인해 늦어질 수 있으니 그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