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 Blue (메리즈 블루)”

49화 | 갑과 을, 을과 갑

전정국 image

전정국

여주야, 나 다녀왔어.

신발을 벗고 들어가자 거실에는 힘 없이 앉아있는 여주가 눈에 들어왔다. 아까와 별 다름없는 멍한 표정이였다.

‘여기서 뭐하고있어.’ 소파에 다가가 무릎을 굽히고선, 담요를 어깨에 둘렀다. 어깨에 올린 손위로 여주의 손이 닿았다.

김여주 image

김여주

오빠… 만나고 왔어?.

전정국 image

전정국

…어?, 그게…

응… 솔직하게 말해야할지 망설이던 정국은 뒤늦게 대답한 머리를 끄덕였다.

김여주 image

김여주

얘기도 전부 들었겠네.

전정국 image

전정국

……어쩌다 보니.

얘기가 길어질 것 같은 느낌에 여주의 옆에 나란히 앉았다. 말하기 싫었을 수도 있는데, 너무 섣불리 얘기를 들은 건 아닐까. 싶다.

전정국 image

전정국

형이, 많이 울더…라.

알아. 봤으니까. 아무대답도 없이 정면만을 바라보는 여주에, 정국은 제 허벅지에 올라간 손을 가만히 두지 못했다. 만지작거리기도하고, 손톱으로 뜯기도 하고. 여주가 말했다.

김여주 image

김여주

…내가 오빠랑 만나길 얘기를 하길 바라는거야?.

슥, 바라보더니 헛웃음을 뱉는 여주. 그러더니, 잠긴 목소리로. 그래… 얘기는 당연히 해야겠지. 혼자 중얼거렸다.

전정국 image

전정국

…넌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김여주 image

김여주

모르겠어. 그냥… 그냥, 눈 앞이 캄캄해.

여주는 마른 세수를 하며 미간을 찡그렸다. 결정을 해야하는데. 답은 정해져있어서 그런가, 결정을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았다.

답은 정해져있지만, 난 그 답이 정말로 싫었다.

김여주 image

김여주

…알아서 할게. 괜히, 너 신경쓰게해서 미안.

소파에서 일어난 여주는 그대로 방으로 쾅. 하고 들어가버렸다. 누가 더 힘들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두 사람 모두, 위태로워 보였다.

다음날. 여주는 그날 일 이후로, 처음 집 밖으로 나섰다. 우현에게 얘기를 들었던 그 카페. 다시금 발을 들이니 그날이 다시 생생하게 기억나는 듯 했다.

김지원 image

김지원

여주야, 너 괜찮아?…

불륜 사건이후로 꾸준히 연락을 하던 김 대리님. 그녀가 알려준 바에 따르면 권우현은 퇴사를 했단다.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녀에, 여주는 가장 밝은 미소를 하고서 그녀의 건너편에 앉았다.

김여주 image

김여주

잘 지내셨어요?.

김지원 image

김지원

내 안부가 중요해?, 네 안부가 더 중요하지.

쓰게 웃었다. 저 정말로 괜찮아요-. 말하는 여주에, 지원은 미간을 더욱 좁히며 손을 붙잡았다.

김지원 image

김지원

넌 괜찮을지 몰라도, 다른 사람이 볼 때 너… 너무 위태로워.

김여주 image

김여주

진짜 괜찮은데…

김지원 image

김지원

얘기 들었어. 디자이너님이랑 그렇고 그런 사이라며. 권 팀장이 퇴사하기 전에, 나한테 다 말해주고 갔어.

뭐, 나는 널 끝까지 믿었으니까. 믿을만 하다나 뭐라나. 생각만으로도 치가 떨리는지, 어깨를 부르르 떠는 지원이였다.

김지원 image

김지원

많이 힘들었지?, 가족이랑 연결되어 있으면… 말 다 했지.

김여주 image

김여주

……

김지원 image

김지원

그래서, 디자이너님이랑 얘기는 해봤어?.

고개를 저었다. 차마, 얼굴을 마주하고서 대화를 나눌자신이 없다고 말하니, 지원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김지원 image

김지원

…그래, 나한테도 그런 일이 생기면 그럴 것 같아.

김지원 image

김지원

하지만, 정말 후회 안 하겠어?. 대화도 안 하고 이렇게 헤어지는 거.

여주의 입이 다물렸다. 무서운 것도 알겠고, 마주하는 것도 힘들다는 것도 알겠는데. 이렇게 아무 말 안하고 헤어지면, 나중에 정말 후회 안 할까?.

김여주 image

김여주

……

김지원 image

김지원

나는 그렇게 생각해. 이 세상에 후회만큼 사치스러운 건 없어. 아무리 두려워도, 나중엔 말 하지 못한 이 순간을 후회할거야.

머리를 감싼 여주가 한탄을 하듯 숨을 내뱉었다. 헤어지기 싫은데, 아직도 너무 사랑하고 좋아하는데. 그렇다고해서 모른척 하고, 계속 만나는 것도 죄책감이 들어요…

김지원 image

김지원

여주야……

김여주 image

김여주

대리님, 저 이제 어떡하면 좋아요?…

의자를 뒤로 끌어 일어난 지원은, 아무말 없이 여주를 품에 안고 등을 쓸어내렸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여주에게 지원의 품이 엄마의 품처럼 느껴졌다.

한참을 그러고 서로 부둥켜 안고 있었을까. 지원은 여주와의 거리를 살짝 벌리고서 말했다. 어딘가 단단히 결심한 듯한 얼굴이였다.

김지원 image

김지원

여주야, 너 나랑 미국으로 안 갈래?.

김여주 image

김여주

……네?. 갑자기 미국은, 왜…

김지원 image

김지원

사실 이직하려고 알아보다가, 미국 회사에서 커리어를 쌓는게 좋다고 해서. 좋은 기회를 얻었거든… 그래서, 같이가면 좋을 것 같아서.

손사래를 쳤다. 미국이라니. 제가 끼어들면 아무래도 좀…

김지원 image

김지원

무슨 소릴 하는거야. 내가 너랑 같이가고 싶어서 제안하는건데.

갑작스러운 제안이라 어버버- 한 상태로 눈만 지원을 바라보고 있으니, 지원이 무릎을 굽혀 여주의 허벅지 위로 손을 붙잡고 말했다.

김지원 image

김지원

한국에 있을 수 있겠어?, 이런 일이 있었는데. 내 생각에는 잠시 떠나있는 것도 괜찮은 방법일 수도 있어.

김여주 image

김여주

……대리님

잠깐 망설였다. 미국으로 가면 훨씬 낫겠지. 더 배우고 싶었던 패션도 공부할 수도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에서 도망칠 수 있을테니까.

김여주 image

김여주

생각할 시간을… 주시면 안 될까요?.

얼굴이 활짝 피었다. 당연히 주고말고, 굽힌 무릎을 피며 일어난 지원은 말했다. 출구은 한 달 뒤야, 아직 시간 많이 남았으니까. 잘 생각해봐.

김여주 image

김여주

…감사합니다.

얼마안가, 지원은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 밖으로 나갔고. 여주는 핸드폰 버튼을 눌러 화면을 켰다. 여전히 지민의 얼굴이 자리잡고 있는, 배경화면.

그래, 더이상 후회할 일 만들면 안된다. 가파른 숨을 고르던 여주는 조용히 머릿속에 있는 전화번호를 눌렀다.

뚜르르, 몇 번의 신호음이 울리다 멈췄다. 전화 너머로 불안정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김여주 image

김여주

…우리 지금 만날까?.

전화 끝에 딸랑, 하고 열리는 카페 문,

“……”

처음 만나던 그 순간. 갑이던 그와, 을이던 그녀. 첫만남과 다르게 여주는 이젠, 을이 아니였다.

곧 연재될 새 신작입니다 : ) 수사물이구요. 코믹과, 다크물을 오가는 그런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아직 정식 연재는 아니지만, 혹시 관심있으신 분들은 미리 가셔도 좋아요!.

아 그리고, 메리즈 블루는 외전도 나갈 예정이에요 : ) 오늘 하루도 잘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