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 Blue (메리즈 블루)”

51화 | 아름다운 이별

막상 떠나려하니 실감이 안났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국을 떠나리란 생각은 단 한번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떠날 줄은 누가 알았을까.

최소한의 짐만 챙겨 캐리어에 넣어두고, 어느새 최소한의 가구만 남겨진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됐다. 이 집에서 그와 함께 지내지 않아서. 만약, 이 집에서 그와 함께 지냈던 시간이 많았더라면. 이렇게 손쉽게 정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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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그건 오빠도 마찬가지겠지.

오빠는 과연 정리를 잘 했을까. 그리고, 내 흔적들을 잘 치웠을까. 그리고 함께 든, 이질적인 생각. ‘안 치웠으면 좋겠다.’

정말로 나쁜년이네,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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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가구들은 어떻게 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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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글쎄, 가져갈 수도 없으니까. 중고나라에 팔아야될 것 같은데.

처음에 미국으로 떠난다고 말을 전했을 때. 유정은 잠시 놀라는 것도 잠시, 금방 받아들였다. 차라리, 그러는게 훨 나을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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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그럼 넌 그냥 편히 가.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팔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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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그래도 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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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아니, 안 그래도 요즘… 이것저것 때문에 힘들텐데. 이거라도 도와줘야지.

게다가, 짐 정리까지 도와주니. 세상에 이런 친구가 어디있겠나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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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출국은 언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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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사흘 뒤. 마음먹은 김에 빨리가서, 자리 잡아야지.

이제 정말 안 남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자, 유정은 입술을 저도 모르게 내밀며 울상을 지었다. 친해진 뒤로 이렇게 오랫동안 떨어진 적 없었는데… 울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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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뭐야. 너 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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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아 씨… 아니거든?. 그냥 좀, 울컥해서…

그게 그거지. 오랜 친구의 울것 같은 모습은, 꽤나 코믹이였다. 하지만, 이것도 사흘 뒤면 끝이겠지.

갑자기 진지해지면 재미없는 건 알지만, 여주는 울먹이는 유정을 향해 다가가 그녀를 품에 꼭 껴안았다. 그리고 달래는 목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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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우리가 평생 떨어지는 것도 아니잖아. 아님, 휴가때 놀러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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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그래도.

그럼에도 계속 울상인 유정이 마냥 귀엽게만 느껴졌다가 문득, 지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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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저 나 하나만 부탁해도 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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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부탁?, 무슨 부탁?

붉어진 눈가를 손으로 만지작 거리며 되묻는 유정. 여주는 손가락을 매만졌다. 아, 이거 말하면 김유정 또 엄청 뭐라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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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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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그… 우리 앞집에 사는 지민이 오빠있잖아. 네가 가끔 들여봐주면 안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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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어?.

반응이 예상과 다르게 좋지않자, 여주는 황급히 손을 허공에 휘저으며 말했다. 아니, 뭐… 다른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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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오빠. 자책 엄청… 많이 하거든. 이러고 떠났다간, 정말로 밥도 안 챙겨먹을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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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그래서, 걱정되신다?.

어익후. 내 마음을 어째 이렇게도 잘 아실까. 멋쩍게 웃어대자 등줄기를 따라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은 기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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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넌 진짜… 에휴, 그래 내가 무슨 말을 하겠냐. 네 연애사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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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그 대신에 너도 나랑 약속 하나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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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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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3년 뒤에는 꼭 돌아와야 해. 거기 좋다고 계속 살면 안 돼. 알았어?.

손까지 잡아오며 진지하게 말하는 유정에 웃음이 터진 여주는, 입꼬리를 겨우 내리누르며 생각했다. 내가 그럴리가 없잖아, 여기엔 너도 있고, 정국이도 있고. 게다가…

오빠도 여기 있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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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내가 거짓말 하는 거 봤어?. 꼭 돌아올게. 걱정하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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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조심히 다녀오고. 올땐 선물도 사서 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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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

그게 목적이였구나?ㅋㅋㅋ.

떠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지운다는 의미도 있지만,

새로 시작한다는 의미도 있는 법.

부디 모든 것을 지우고 돌아왔을 땐,

[너도 나도 모든 죄책감을 털어놓고,]

[마음껏 사랑하길.]

사흘뒤, 차마 나가서 마중할 자신이 없어 집 안에서 꼼지락 대다가, 뒤늦게 용기내 현관문을 열었을 땐. 이미 네가 떠난 뒤였다.

하지만, 넌 떠나는 그 순간 까지도 용기 없는 나보다, 더 용기있게 행동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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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여주야.

떠나기 전 남기고 간 여주의 편지를 읽으며, 지민은 연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똑같은 말만 되풀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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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알았, 어. 네 말 잘 들을테니까. 제발… 꼭 돌아와줘.

슬프고, 목도 메였지만. 지금 이 순간 단 한가지는 알 수 있었다. 넌 분명히 돌아올거라는 걸,

분명히 다시 돌아와, 나를 사랑해줄 것이라는 것을.

[결혼 블루, 끝_]

+ 외전으로 돌아오겠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