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사…랑?

***

여주는 이미 깬 채 사라진 정한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쪽지가 없어진 것을 보니 정한이 그 쪽지에 적혀져 있는 곳으로 갔음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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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한

일어나 있었네요?

이여주

어디… 갔다 왔어요?

이여주

혹시 제 쪽지 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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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한

무슨 쪽지? 난 잘 모르겠는데.

잠깐 밖에 나갔다 온 정한은 어쩐지 전보다 차가워져 있었다.

항상 여주에게 살갑게만 대했던 그였는데.

아마 본인은 꼼짝 없이 죽어야 하니 정이라도 떼려고 그런 것이겠지.

자신은 이미 그녀를 사랑해 어쩔 수 없지만 그녀만이라도 미워하라고.

미워해서 자신이 죽을 때 슬퍼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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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한

근데 내가 어디 갔다 왔는지는 왜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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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한

우리가 그 정도를 궁금해할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여주는 어쩐지 가슴 한쪽이 아려오는 느낌이었다.

왜 그런지는 본인도 의문이었다.

그저 그의 차가운 행동들이 서운한 것 같았다.

전이랑 확연히 다른 그의 모습을 옆에 있던 지수도 느꼈는지 한마디 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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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수

좀… 까칠해진 것 같다?

정한은 영혼 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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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한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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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한

난 원래 이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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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한

아 참, 나 또 어디 좀 갔다올게.

정한은 코트만 벗어놓고는 그대로 다시 집을 나갔다.

여주는 왜인지 모르게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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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서영 씨는 왜 이렇게 어두운 곳을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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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혹시 뱀파이어는 서영 씨인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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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영

그런 끔찍한 소리하지 마시죠.

야심한 밤, 깊은 골목에서 짜증이 섞인 목소리와 껄렁대는 목소리가 섞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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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영

여기가 지름길이라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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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흐음~

민규는 갑작스런 인기척에 걸음을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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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영

뭐야, 갑자기 왜 멈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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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여긴 웬일인지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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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정한 형.

민규는 자연스럽게 서영을 제 몸 뒤로 숨긴다.

결코 그가 의도한 행동은 아니다.

그저 자연스럽게 그런 행동이 나왔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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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형이 먼저 찾아올 줄은 몰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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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한

그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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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한

절대로 내가 먼저 찾아갈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정한은 순식간에 민규에게 달려들어 그의 목을 조른다.

정한이 밀어붙이는 탓에 민규의 몸은 벽에 부딪히고 만다.

위협만을 하기 위해 졸랐던 예전과는 다르다.

점점 민규의 숨통이 조여옴과 동시에 그의 목에는 정한의 손톱이 파고들어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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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한

미안하다.

윤정한 image

윤정한

나는 지금 널 죽여야만 해.

두려움이 가득한 정한의 눈동자 속에 괴로워하고 있는 민규가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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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큭……

민규는 온 힘을 다해 정한의 손목을 으스러지도록 붙잡는다.

그의 목을 붙잡았던 정한의 손에 힘이 조금씩 풀리자 민규는 그 사이에 확 밀치고는 상처가 난 제 목을 어루만지며 숨을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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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와, 진짜 죽을 뻔했네.

민규가 잠시 숨을 고르는 것조차 기다려 주지 않고 정한은 바로 달려든다.

당장 저 손을 막지 못 하면 무서운 힘으로 달려드는 정한의 저 손은 민규의 배를 뚫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그럴 만한 힘이 돌아오지 않아 망설이고 있던 찰나에…

서영이 달려든다.

서영 본인도 지금 자신이 왜 달려든 것인지 모른다.

민규를 도와주기 위해 달려든 것인지

아니면 본인이 일하는 레스토랑 근처에서 살인이 일어나는 것은 볼 수가 없어서 달려든 것인지

본인도 의문이다.

그렇지만 지금 그녀는 어떻게 막아야 할 것인지도 생각하지 못 한 채 달려들고 있다.

한낱 인간일 뿐인 그녀가 뱀파이어에게 달려들고 있다.

자신의 몸으로 막으려는 것인지

그래도 무섭긴 한 것인지 서영은 눈물을 머금고는 두 눈을 꾹 감는다.

그 순간,

이여주

그만해요!!!

골목 입구에서 빠르게 달려온 여주는 정한에게 그만하라 소리친다.

그 덕에 정한은 정신을 차리곤 공격을 멈춘다.

조금이라도 늦었더라면 아마 서영의 배가 뚫렸을 것이다.

서영은 자신의 몸이 성한 것을 확인하고는 긴장이 풀렸는지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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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영

와…… 죽는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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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미쳤어요? 갑자기 왜 달려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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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영

몰라요,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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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영

나도 왜 달려들었는지 모르겠다고.

이여주

정한 씨 정말 왜 그래요??

이여주

하마터면 저 여자분 죽을 뻔했어요, 당신 손에.

이여주

정한 씨, 제가 가지고 있던 쪽지 본 거죠??

이여주

거기 적혀 있던 주소에 갔다 온 거죠??

이여주

대체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이여주

대체……

이여주

뭐가 당신을 그렇게 만든 거예요…

여주는 차마 정한을 껴안지는 못 하고 그저 그의 소매만을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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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한

이렇게… 궁금한 게 많은 사람일 줄은 몰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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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한

그보다 여주 씨 여기는 어떻게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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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수

내가 데리고 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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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수

난 네가 어디에 있든 다 알 수 있으니까.

아마 지수에게서 정한의 피가 흐르기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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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수

아무리 봐도 평소랑 다르고 이상하길래 여주 씨 데리고 온 거야.

이여주

정한 씨, 빨리 말해 봐요.

이여주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정한은 망설이다 이내 여주의 간절한 눈빛을 이기지 못 하고 김희연이 했던 말들을 전부 말한다.

여주는 어렸을 적의 기억이 없었던 터라 자신이 실험체였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리곤 화가 치밀어오른다.

자신의 목숨을 이용해 정한에게 친구들을 죽이게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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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와, 그 연구원장이 살아있었다니…

민규 또한 화가 치밀어오른다.

자신을 그리 괴롭게 했던 연구원장이 지금 살아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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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형,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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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한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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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지금 다들 연구원장이 적인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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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원래 적대 관계인 사람들에게 같은 적이 나타났을 때 더 뭉치는 법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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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우리 잠깐 협력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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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그리고 최대한 형도 살릴 방법도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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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그 연구원장을 고문해서 어떻게 해서든 알아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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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한

난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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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한

여주 씨만 살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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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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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형은 내 손에 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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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그때 날 버리고 도망친 값은 갚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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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근데 난 이런 독 품은 사람은 별로 죽이고 싶지가 않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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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그러니 잔말 말고 그냥 내 말대로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