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돌아가겠습니다

12 ❀ 운명

방에서 눈을 떴을 때쯤, 머리가 띵하게 아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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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유현

아우으..

작게 신음을 내뱉은 유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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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유현

어레.

내 기억이었다.

아니, 분명 내 기억인데. 기억한 적이 없다.

그런 상황 같은건 온 적도 없다.

한 여성 앞에서 피를 흘리고 죽어있는,

또다른 나.

이 시대부터 그 날의 기억까지 모든 미래가 보이기 시작했다.

트럭이 오는 소리,

빨간 불을 모르고 지나가던 여자.

몰려드는 사람들,

멈춰있는 여자.

그리고 그 전, 조선의 왕의 정인.

그자의 죽음.

정인이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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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유현

뭐야, 이게.

조금은 당황한 유현은 별거 아니란 듯이 대수롭게 지나갔다.

물론 내 기억에 있던 것들이 모두 일어나기 전까지는.

정말 사소한 것까지 기억났다.

내 눈으로 볼 수 있는 범위에서는 모두 기억났다.

장터에서 사과 하나가 굴러 떨어지는 장면.

그리고 그걸 주우려다 넘어져버리는 주인.

우연이겠거니, 했다.

그 아이를 보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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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온

나, 나 이런거 싫은데ㅡ

어.

그 여자다.

내 앞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겁에 질린 표정으로 서있던 아이.

내 사촌 동생.

모든게 기억났다.

아니, 뭐랄까.

저 아이와의 시간만 똑똑히 기억났다.

마치 내 앞에서 벌어진 일인것 같이 기억났다.

쟤가 왜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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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온

언니.

내가 찾던 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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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온

내 소중한 사람.

여기 있으면 어떡해.

여기 언니가 왜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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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유현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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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유현

하나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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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유현

팬던트,

너한테도 있을거야.

언제 왔는지 내 앞에 서 있던 유현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라지려던 유현의 옷자락을 가온은 살며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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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온

...가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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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온

아무것도...

아무것도 안 들려도 괜찮으니까, 내 옆에 있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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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유현

내가 옆에 있으면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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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유현

한낱 인간은 미래를 바꿀 능력따윈 없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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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유현

네 옆에 있을 사람은 따로 있어, 가온아.

이가온. 내 이름이었다.

그렇게 듣고 싶었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해주는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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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유현

다음생, 아니. 먼 훗날에 우린 다시 만날거고, 그렇게 난 네 앞에서 마지막을 맞이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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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유현

그리고 또다시 다음 생이 생겨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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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유현

그렇게 반복되는거야 가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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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유현

그게 사람인거야.

너무 당연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반박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하고 싶었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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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온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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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온

내가 아니란 거 증명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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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온

사람은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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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온

차이점을 찾으라면 한없이 말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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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온

사람은 다 그런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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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온

항상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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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온

모든게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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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온

그게 사람이잖아,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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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온

안이 보이지 않는 연못처럼 옅으면서도 깊은거야. 그게,

사람이자 사랑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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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온

그렇게 당연하다는듯이 말해버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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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온

난 살았어야 운명이 맞았고, 언니는 죽었어야 운명이 맞았다는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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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온

그런거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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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온

내가 꼭 증명할거야. 미래는 달라질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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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온

다음에 우리가 만날때면, 꼭 계속 만날 수 있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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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유현

가온아.

사람은 죽어.

너무도 당연하게 말해주는 언니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머리가 아파올 정도로 울었는데 잊혀지질 않았다.

사람은 죽어, 가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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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온

흑,

소리 없이 울다 나온 울음소리에 입을 헙 다문 가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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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건

왜 우느냐.

아, 깜짝이야. 이 사람도 내 언니만 하단 말야. 홍길동이 널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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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온

아, 아닙니다. 하품 해서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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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건

눈가가 빨간데.

이정도면 좀 넘어가 주시면 안됩니까, 왕이시여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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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온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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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온

왜 죽어야 합니까.

힙겹게 말을 내뱉은 가온은 다시 벅차오르려던 눈물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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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온

사람은 왜 죽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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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온

영원히 살면 안되는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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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건

영원히 사는게 행복이라고 생각하느냐.

때에 맞춰 마지막을 맞이하는것이 가장 행복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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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건

불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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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건

모든 생물의 죽음을 지켜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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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온

모두가 불사면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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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건

생명의 가치따윈 사라져 버릴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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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건

물론 죽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 그런 소중한 사람도 사라져버리는데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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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건

더이상 소중해질 수 없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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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온

소중하기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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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온

끝이 있어야 한다는 소리입니까..

눈을 감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의건의 행동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 알 수 없는 감정이 차올랐다.

손끝에서, 심장까지. 온 몸에 퍼졌다.

그런 느낌에 다시 눈물을 흘리자, 의건은 자신의 행동을 멈추고 허리를 굽혀 내 얼굴을 살폈다.

으응, 이거 보면 못생겼잖아요. 보지 말라니까. 눈치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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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온

..폐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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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온

저에게 웃어주실 수 있습니까.

그런다면 저는 폐하의 마지막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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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온

한없이 이어지는 마지막도 기다릴 수 있습니다.

말을 이어가려 하는 찰나 살포시 꼬옥, 안아주는 의건에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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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온

사랑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뒷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느낌이 좋아 의건의 손을 풀기는 커녕 가온도 의건을 안았다.

웃고 있었다.

안 보여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