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게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27, 우연 (4)


- 수둔 산맥 -


여주
.. 여전히 좀 쌀쌀하네.


원우
거의 늦가을이니까요.


한솔
단풍도 다 질 만큼이면 .. 앞으로 일주일 안엔 훨씬 추워질 거예요.


여주
이제 어디로 가야하지..


원우
.. 아는 곳이 하나 있긴 한데, 지금은 위험해.


한솔
.. 풍안인가요?


원우
.. 응.


여주
풍안..?


원우
내 고향이야. 아는 사람이 그쪽에서 여관을 운영하거든.


원우
전쟁이 끝나야 그쪽에 조금이라도 편하게 갈 수 있-

말을 잇던 원우가 멈칫했다.

나머지 둘은 의아해 했으며,


여주
... 무슨 일이야?

대략 상황을 파악한 듯한 한솔이 여주에게 조용히 하라는 제스쳐를 취하자,

그제서야 여주도 이해한 듯 했다.

셋은 큰 나무 뒤에 숨었다.

원우는 그 자리에서 눈동자만을 굴리며 대략 위치를 파악하는 듯 했고,

한솔과 여주는 두리번거렸다.

그때, 한 쪽에서 낙엽을 밟는 발 소리가 났다.


원우
.....!

그리고, 그 소리의 주인은


승철이었다.

얼굴을 확인하자 마자 원우는 금방 심장이 터질만큼 증오심이 폭발했다.

금방이라도 창을 꺼내드는 걸 한솔이 힘껏 막는 사이에,



여주
최승철.

여주가 뛰쳐나가 승철과 마주하고 있었다.


한솔
... 아니...!

한솔이 급한 마음에 소리쳤고, 다행히 그걸 듣지 못한 것인지 승철의 신경은 여주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승철
서여주.

승철은, 증오인지 아픔인지 모를 감정을 담은 인상을 썼다.


여주
묻고싶은 것이 있어.


승철
... 무엇인가.


여주
네가 왕위를 쟁취해 얻고자 한 것이 무엇이지?

지금 여주는, 승철의 생각 외였다.

애인을 여의고서, 분명히 한참 나약해져선 힘이 없을 터인데.

어째서 이 여자는 이렇게나 강한 기운을 뿜어내는가.

어째서 이렇게나 용맹할 수 있는가.



승철
얻고자 한 것이라.

승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인정하고싶지 않았지만 확실했다.

제 기운이 여주의 기운에 눌려 흔들리고 있다는 것.

이대로 있다간 기운에 눌려 곧 제가 바스라지고 말 것.

승철은 처음으로,

여주에게서 두려움을 느꼈다.

승철이 마른 기침을 두어번 했다.


승철
누구나 알 거라 믿어.


승철
권력이지.

승철은 이 말을 끝으로 다시금 여주를 지나쳐 걸어가기 시작했다.


여주
하나만 알아둬요.

여주가 뒤돌아보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승철 또한 마찬가지로 돌아보지 않았다.

다만 승철은 걸음을 멈추었다.


여주
그건 양날의 검이예요.

가벼운 한 마디에 묵직한 의미가 담겨있었다.

승철이 다시 발걸음을 움직이기 시작했으며.

승철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원우와 한솔이 나타났다.


한솔
.....


여주
난 최승철이 뭘 원하는지 알아.

단 한명.

여주만이,

승철의 마른 기침에서 묻어나온 혈흔을,

본인의 두 눈동자에 기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