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벽남 꼬시기

19

자리에 앉아 정국이 푼 식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태형은 그대로 문제집을 덮었다. 화가 나기도,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그 중에서도 자신에 대한 한심이 앞섰다.

샤프를 힘껏 쥔 손은 핏줄이 하나하나 보일 정도였다. 하얗던 손은 서서히 빨개지고 있었다. 겉은 누구보다 차분해 보였지만 속은 겉과 다르게 모든 감정들이 뒤섞여있었다.

한심하다.

정말 한심하다.

고작 한 문제였지만 그 한 문제는 태형이 잘 알고 있었던 문제였다. 그래서 지금 자기 자신을 더 한 없이 비판적으로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한심하다. 김태형.

해가 서서히 지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게?"

"돌려주게? 그냥 돈만 좀 갖고 갖고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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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뭔 강아지가 백 덤블링하는 소리야, 돌려줄 거야.

쳇. 조용한 효과음과 함께 아이들이 쪼잔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정국을 바라보았다. 그냥 가져가도 모를텐데. 아깝네. 등 많은 말들이 아이들 사이에서 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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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야, 우리 도둑이냐 남의 돈 함부로 손대게.

아니 그래도, 보니까 돈 많던데. 돈 딱 한장만 꺼내도 티 하나도 안 날 걸? 아이들의 말을 듣던 정국의 인상이 팍 구겨졌다. 지갑 디자인만 보라며 귀엽다고 겉만 보여주었다. 하지만 속에 있던 지폐는 보여준 기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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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야 너희 지갑 안에 봤냐?

아이들의 동공이 방황했다. 말 없이 방황하던 동공은 정착할 곳을 잃었다. 보려던, 건... 아니고. ㄱ, 그냥... 책상 위에 있길래 조금만 들여다 본 거야. 말을 더듬으며 느리게 말하는 아이들을 보던 정국의 표정은 한층 더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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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야, 정신차려 남의 거 함부로 만지지 마.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모습을 처음으로 본 아이들은 급히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자리를 옮겼다. 가자, 가자. 그거 조금 만졌다고 화를 내냐. 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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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 이해를, 하자. 이해를.

요즘 공부하니까 애들이 너무 예민해진 거야. 이해해. 이해하자. 합리화를 하며 어떻게든 이해를 하려하던 정국은 겨우겨우 아이들을 이해했다.

백여아

야, 나 어제 지갑 잃어버렸다.

힘 없는 목소리로 얘기하던 여아의 고개가 곧 책상으로 고꾸라졌다. 어떡해. 나 이번에 용돈 받은 거 다 거기에 들어있는데. 안 그래도 기분 안 좋은데 도 기분 안 좋게 만드네.

마침 강의를 다 들은 류아는 자세를 고쳐 앉아 여아의 머리를 쓰담아 주었다. 뭐 어쩔 수 없지, 냐가 해줄 말이 뭐 있겠냐. 여러 위로의 말을 건내주긴 했어도 사실 기분은 풀리지 않았다. 그냥,

백여아

땡큐, 오늘 집가서 카드 정지하고 엄마랑 아빠한테도 말해야겠다.

괜찮은 척 웃었다.

시험이 코앞인지라 열심히 공부하던 류아에게 피해를 끼치면 안 되니까 그냥 조용히 넘어갔다. 어차피 나 혼자만의 일이였다. 굳이 방해 되지만 말자라는 생각이였다.

탁탁, 불안한 발소리가 여아의 발 밑에서부터 들려온다.안 쓰는 층을 이용해 복도 가운데에서 태형을 만나기로 한 여아는 태형을 기다리고 있다. 원래 여자 기다리게 하는 남자가 매력 없다던데. 없긴 무슨. 기다리게 만들어서 매력있게 만드는 것도 능력이다.

백여아

언제와...

여아의 말에 답하기라도 하는 듯 저 멀리서 태형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힘 없는 걸음으로 천천히 걸어오는 태형은 매력을 있게 만들었던 것을 금방 떨어뜨리게 만들었다.

백여아

왜 불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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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

우무쭈물 어떻게든 말하려고 입을 떼보려는 듯 했지만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은 태형은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던 여아는 고개를 돌려 앞에 보이는 아무도 안 쓰는 반을 바라봤다.

백여아

야, 할 말 있어서 부른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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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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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나, 이번 시험 기간에 너랑 못 갈 것 같아서.

그냥 기다리지 말라고.

백여아

아, 응.

여아의 짧은 대답이 들려왔다.

백여아

근데,

굳이 이렇게 만나서 얘기 했어야 돼?

그냥 연락했어도 됐잖아.

안 그래도 안 좋았던 기분이 더 안 좋아진 것 같았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시험 끝나고 느슨해질 줄 알았는데 더 바빠지더라고요, 죄송합니다. 얘기한 건 지킬 건데 요새 일이 꼬여서 언제 올릴 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빨리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