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벽남 꼬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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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또, 전정국... 성적 듣고 오셨어요...?

김태형은 부모님 앞에 서기만 하면 한없이 작아졌다. 키가 큰 것도 작아 보였고, 넓은 어깨도 한 없이 좁아 보였다. 호랑이 앞에 작은 새끼 고양이가 발발 떨면서 놓여진 느낌이랄까.

어머니
그럼, 어떡해? 선생님이 잠깐 보자해서 보러갔더니 정국이 아버지랑 정국이가 보이는데.


김태형
아...

태형은 정국의 아버지를 아는 듯 탄식만 내뱉었다.

정국의 아버지와 태형의 어머니는 서로 아는 사이이다. 3년 전 같이 사업을 준비했었지만, 정국의 아버지가 먼저 그만하자는 제안에 태형의 어머니도 그냥 알겠다고 수락한 사이였다. 한마디로 아무사이는 아니였지만, 둘 사이에는 묘한 라이벌 기운이 있었다.


어머니
정국이는 이번에 만점이라 하던데.

입을 꾹 닫고, 주먹만 세게 쥘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나서봤자 득이 되는 것도 없고, 무엇보다 이 상황 이런 일은 이미 익숙했다.

결국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말은,


김태형
죄송해요, 이번에 컨디션이 많이 안 좋았던 것 같아요...

죄송하다. 얘기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어머니
쯧, 컨디션 조절은 니가 기본적으로 챙겨야 할 건데 그런 거 하나 못 챙겨?

날카로운 말들이 저를 향해 날아온다. 마치 과녁이 태형이고, 화살이 어머니 같았다. 일방적으로 날아오는 화살들이 정확하게 아픈 곳을, 저가 제일 힘들었던 것을 아프게 찔러온다. 그 화살들이 박히면, 10점 만큼의 고통이 밀려온다.


어머니
김태형 정신차려, 너 그러라고 이렇게 키운 거 아니야.

어머니
저번에도 정국이 보다 뒤쳐고, 저저번에도 뒤쳐졌었잖아. 어? 정신차려.

태형의 이마를 꾹꾹 찌르며 누를 때마다 손가락의 힘이 점점 세졌다. 이마가 눌릴 때마다 자존심이, 자존감이 모든 감정들이 후드득 추락하는 것 같았다. 긍정적인 면에서는 특히 더.

어머니
어릴 때가 더 잘한 것 같아, 지금 보다.

아무 말도 못한다. 사실 아래뵈도 다 맞는 말이니까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다. 분명 전정국보다 더 뒤쳐지게 되었고, 어느순간부터 전정국이 저보다 우위를 달리고 있었다.

표면으로 안 보여서 그렇지, 인정하기 싫지만 저보다 공부가 한 수 위였던 것이 맞았다.

겉으로 보면 모범생처럼 보이는 태형이 더 잘해 보이지만, 노는 애 같은 전정국이 실질적으로 공부를 더 잘했다.

그래서 분했다. 분해서 또 열심히 하고, 또 해서 저번달에 비슷하게 맞췄는데도 전정국보다 아래였다.

어머니
됐다. 다음달에 테스트나 신경써.

어머니
그땐 정국이보다 잘해야 된다고 생각해야 될 거야.

어머니
곧있음 돌아오신다.

딸랑, 이 말을 남기고 카페를 나선 어머니의 자리가 차가웠다. 사람이라면 따뜻한 온기라도 남을 텐데, 남기는 커녕 차가웠다. 태형은 주고 있던 온 몸의 힘을 풀었다. 긴장이 되었는지 손은 땀으로 가득 차있었다. 축축한 손은 땀방울이 송골, 맺혀있었다.


김태형
아...

아까 어머니께 들었던 그 말이 귓속에서 맴돈다. 돌아오신다는 말은 태형을 무척이나 긴장하게 만들었다. 괜히 심장도 빠르게 뛰는 것 같았다.


남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자, 들어있던 얼음들이 하나 둘 갈피를 못 잡고 요동치기 시작한다.



딱 학원 가기 좋은 시간, 태형은 학원 건물 앞에 서서는 괜히 가방을 똑바로 고쳐 매었다. 그래야만 할 것 같기도 하였고, 그래야지 잘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김태형
후, 들어가자.

검정 캔버스가 발을 내 딛은 순간, 저 멀리서 익숙한 두 명이 시야에 잡혔다.



전정국
고마워요 누나. 다음에는 카페 같이 가요.

백여아
생각은 해볼게.

여아의 새침한 대답에 정국은 재밌었는지 하하, 웃었다. 그리고는 여아의 머리를 한번 쓰담아주고는 인사하고 곧장 학원 건물로 발을 옮겼다.

여아도 슬슬 출발하려는 듯 발을 옮겼다. 옮겼는데, 눈 앞에 어느샌가 나타난 김태형이 시야를 가렸다.

백여아
뭐야, 김태형...


김태형
너 뭐야, 왜 쟤랑 같이 와?

학원 앞, 신호등은 어느새 초록불로 바뀌어있었다.




아직 정국이랑 태형이는 어디서 처음 만났는 지 안 나왔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