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와 사냥꾼

<1화>: 기약

<1화>: 기약

그 남자가 죽은 아빠를 보러 온 손님이 아니라는 건 금세 알아챌 수 있었다.

장례식에서 흔히 보이는 단정한 검은색 정장이 아닌 남자는 흰색 깔끔한 가운을 걸치고 있었고,

무엇보다 우리 아빠가 누군가를 만나고 관계를 이어나갈 사교성 있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쯧. 한심한 년.' 아빠가 생전 나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

폭력이 어떤 상황에서건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어본 것도 같다.

어떤 세상 물정 모르는 놈이 지껄였는지 모르겠지만 귀한 집 도련님이였겠지, 아마도.

세상은 다수의 강자에 파묻혀 서서히 죽어가는 약자들로 가득한 잔인한 곳이다.

무언가 하나가 뒤틀린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자라서 자신이 겪었던 더러운 세상을 자식에게 그대로 물려주기 마련.

'버둥거려봐야 지 어미만큼밖에 하겠어?'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강했고,

'찐따 같은 년.' 그들은 생각보다 다수였으며,

'가정교육 못 받은 거 티내는 것도 아니고, 참.' 그들이 하는 말은 나에게 비수가 되어 꽂혔다.

저집에 사는 애 아빠가,.. 어머, 세상에. 애 불쌍해서 어쩌니.

동네 아줌마들이 모여 하는 티타임엔 가십거리로 내 이름과 아빠의 이름이 들렸고, 정작 나를 '불쌍하다'고 칭한 사람들은 동정표를 던질 뿐 그 이상의 어떤 행동을 취하진 않았다.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모두가 모른 척한 나를 연민으로 둘러싸인 '조롱'하는 눈빛으로나마 바라봐주었던 사람들에게, 한낱 내가 지독한 사람들이라며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지독한 사람들에 빠져

'뭐. 어쩌라고.'

결국에 변해버린 나도

'죽고 싶어서 그러는 거 맞다고. 그러니까 같이 죽고 싶으면 더 지껄여 봐.'

나쁘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You

"-장례식장이 이 옆 병원소속이라구요, 그러면?"

"네, 그 이런 말씀 드리게 되서 정말 죄송하지만, "

You

"괜찮아요. 내일 당장 뺄게요. 어디다 말씀드리면 될까요?"

남자의 눈이 커졌다. 아아, 대답이 너무 빨랐나.

그래도 어째, 없는 돈 다 끌어모아서 이틀이나마 장례도 치뤘고 그렇게 좋아하던 술도 상에 한가득 올려줬는데 뭘 더 바라, 바라길.

한심한 딸한테 이 정도 받은 걸 감사해야지.

흰색 가운에서 묘한 알코올 냄새가 난다. 수첩과 펜이 옷 주머니에 걸린 채 나란히 모아져 있었다.

백설공주같아. 검은색 예쁜 눈에 흰 피부가. 나도 모르게 조용히 중얼거리고 있다 왠지 모를 시선이 느껴져 눈을 따라가보니 내 손을 보고 있었다.

평소랑 다를 것도 별로 없는데, 다시 고개를 들어 남자를 쳐다봤다. 그리고 내 시선 끝엔, 그가 있었다. 남자의 입술이 열렸다.

황 민현 image

황 민현

"내 이름은 민현, 황민현이에요. 혹시 어려운 일 있으면 언제든.. 찾아와요."

어려운 일이라, 첫만남 치고 다음을 기약하기에는 별로 적절하지 않은 단어 선택인데.

무엇보다 다시 마주치기나 할까.

아, 그래. 이것도 동정이고 연민이고, 나는 이제 익숙해진 거구나. 나를 불쌍히 여기는 시선에.

말을 내뱉으며 씁쓸한 웃음을 자아낸 그의 표정이, 이때까지와의 다른 사람들과 겹쳐보였다.

그러나 슬픔이 조금씩 묻어나는 그의 어투에 나는, 옅은 미소로 밖에 화답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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