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너를 닮아서
그 애의 자리


이른 아침 햇살이 부서진다.

교실 문이 열리고 한 학생이 조용히 문턱을 넘었다.

이곳은 서울에 있는 일반고등학교 온빛고등학교이다.

남들이 없는 교실에 들어온 학생의 이름은 이은아

온빛고등학교 2학년 3반이자 방송부 아나운서이다.


이은아
우선 대본 준비부터..

은아의 역할은 아침방송을 통해 학생들에게 시를 읽어주는 것.

은아는 방송실에서 준비해온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오늘 아침 방송에서 읽을 시

작고 얇은 글자들이 가지런히 적혀있다.


이은아
너를 바라보는 이 계절이..

은아는 나즈막한 목소리로 시를 읽으며 방송을 준비하고 있다.

07:52 AM
어느덧 시간은 등교시간, 학생들이 교실에 들어선다.

08:00 AM
8시가 되자 예정된 방송이 시작되고, 은아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이은아
너를 바라보는 이 계절이 얼마나 따뜻한 지 너는 모른다.


이은아
나의 계절에는 언제나 네가 머문다.

시의 작가 이름은 없다.

왜냐하면 이 시를 쓴 사람은 은아 자신이다.

물론, 그 누구도 모른다.

매일 익명의 시를 고르고 읽는 컨셉 덕분에 아무에게도 의심받지 않았다.


이은아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2학년 3반 이은아였습니다.

방송이 끝나고 교실로 돌아왔을 때, 창가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박지민
박지민.

맨 뒷자리, 창가.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아이.

모두 그의 키워드였다.

박지민은 은아와 같은 반으로 장난기는 많지만 은근 섬세하고 다정해 인기가 많은 학생이다.

고개를 벽에 기대 창밖을 바라보던 그가, 은아가 들어오는 소리에 시선을 돌린다.


박지민
오늘 시, 좋더라

짧은 말, 웃는 얼굴, 그리고 다시 창밖.

은아는 심장이 내려앉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무너질 듯한 기대가 피어오른다.


이은아
'혹시..내가 쓴 건 줄 알까?'

아니다. 박지민은 모른다. 알 리가 없다.

은아는 괜히 교과서를 뒤적이며 고개를 숙인다.


이은아
그냥 시가 맘에 들어서 물어본거겠지..

그런데 창밖을 바라보던 지민이 조용히 묻는다.


박지민
그거, 네가 쓴 거야?

숨이 멎는 기분이었다.

말을 꺼내려는 순간, 지민이 은아를 바라보며 말을 먼저 가로챘다.


박지민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박지민
그럼, 내가 누굴 좋아하게 된 건지 알 수 있으니까.

은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지만 눈빛이 그녀의 대답을 대신했다.

흔들리는 눈빛이 너무 솔직해서, 은아는 지민의 눈을 바로 볼 수 없었다

수업 종이 치자, 지민이 다시 창밖을 봤다.

그러나 은아는 속으로 느꼈다.

지민이 어떻게 알게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시의 주인이 자신인 것을 눈치챘고,

은아의 흔들리던 눈빛을 보고 확신했을 거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