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어린 옆집 과외 선생님
#29_절정의 1cm 앞



김동현
"이날 만날래?"

마주 앉은 이연에게 동현이 이틀 뒤인 토요일을 가리켰다.


한이연
"음... 나 이날 안돼."


김동현
"무슨 약속 있어?"


한이연
"비밀이야."

한이연과 만나며 알아낸 몇 가지 사실이 있다.

1. 한이연은 동현이 묻는 질문에는 다 대답한다.

+단 말하기 곤란한 것은 대충 얼버무린다.

사람에게 쉽게 신뢰를 주는 그의 다정함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결과였다.

이번에 이연이 비밀이야라고 대답하며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곤란한 사실→정확한 답변이 나오지 않은 일은 모두 애빈을 만나러 가는 일이었다.

=애빈을 만나러 간다.



김동현
"뉴욕에서 살다 왔다 했잖아, 부모님이 지원 많이 해주셔?"


한이연
"외동이라 지원 많이 받았지, 어쩌다 신뢰 깨버려서 겨우 다시 세웠긴 한데 간당간당해."

2. 한이연은 예전과 같은 신뢰와 지지를 받지 못한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느낀 한 가지.

3. 한이연은 서애빈의 인생을 죽이려고 한다.

.

..

토요일 오후 11시.


끝나가는 장마가 전혀 아쉽지 않게 비가 끝장나게 많이 내렸다.

독서실 앞에서는 학생들이 부모님, 친구들의 우산을 빌려 다정하게 걸어갔다.

30분 정도 지나니 혼자 남았고 느껴지는 서글픔이 꽤 컸다.

핸드폰은 방전, 보조배터리를 안 챙긴 탓이었다.


김동현
"그냥 뛰어야지..."

주춤하다가 맘을 굳히고 건물 밖으로 뛰어 나갔다.

흰 티는 점점 투명해졌고 팔에는 물방울이 떨어지는 촉감이 세세하게 전해졌다.

머리카락은 제들끼리 젖고 뭉쳐져 시야를 가려왔다.

잠시 가게 앞에 몸을 숨기려 가게를 향할 때.

선명한 촉감은 빗속을 뚫고 들어오는 강력한 이끌림에 의해 사라졌다.

서애빈
"왜 다 맞고 다녀..."

애빈은 바람대로 그날 일을 기억하지 못한 듯했다.

애빈아 너 머리카락 젖고 있어.

애빈이 우산을 어설프게 기울인 탓이었다.

그녀는 온몸으로 비를 맞고 있고 동현의 한쪽 어깨는 여전히 비를 맞았다.


김동현
"안 씌워줘도 돼요, 집 금방인데요 뭐."

서애빈
"너 씌어주는 거 아니고 책 씌어주는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집 여기서 먼 건 알지?"

아, 나 책 있었지.

서애빈
"이거 쓰고 가."

우산을 건넸지만 그는 괜찮다고 할 뿐이었다.


김동현
"없어도 돼요, 누나 써요."

서로의 손에 쥐여주려 투닥대더니 우산이 물웅덩이에 내동댕이 쳐졌다.

동현은 허리를 숙여 우산을 주웠고 애빈은 그를 지나쳐 뛰어가던 참이었다.

참 너답다. 피식 웃으며 든 생각이었다.


김동현
"가는 길에 우산 사!"

감기에 잘 걸리는 애빈이 걱정되어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던졌다.

고요하게 내려앉은 밤이었고 1시간이 남은 시각이었다.


안 그래도 사람이 뜸한 길가에 위치한 낡은 가게 앞.

이곳이 한이연이 애빈과 만날 장소이다.

비가 오는 탓에 가게 모두 문을 닫고 근처에 사람 하나 돌아다니지 않았다.

애빈이 준 우산을 쓰고 근처에서 서성였다.

우연한 만남인 척 이연을 애빈에게서 떨어뜨릴 작정이다.

지겹게 내리는 비는 주변 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게 했다.

심지어는 10cm 떨어진 거리에 있는 사람의 발소리도.

비가 내리듯 피가 쏟아졌다.


이연이 말한 시간이 얼마 안 남았음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하지만 아픈 몸은 움직이고픈 의지가 없었고 색색대는 숨소리만 들렸다.

후폭풍을 맞기로 선택했다.

신경 쓰였지만 약 기운은 자신을 잠들게 만들었다.

한이연 기억하지? 안 나오면 죽여버릴 거야. 오후 10:56

잠든 애빈이었고 당연히 톡은 보지 못했다.

잠시 후, 알림 하나가 더 울렸다.

.

동현에게서 온 장문의 편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