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어린 옆집 과외 선생님

#5_번호

서애빈

"동현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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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아, 안녕하세요."

뒤에서 소리가 들리자 이어폰을 빼고 뒤를 돌아 인사하는 동현이다.

서애빈

"예습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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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네."

서애빈

"아주 장해, 바로 시작하자."

애빈은 가방에서 책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놨다.

그리고 필통을 꺼내 지퍼를 열었다.

서애빈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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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왜요?"

띠용한 애빈의 표정에 동현은 일어서서 필통 안을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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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엄..."

그는 급하게 방을 둘러보더니 책장에 놓인 물티슈를 가지고 왔다.

서애빈

"하... 진짜 왜 이러냐아..."

어찌 된 상황이냐 묻는다면 빨간색 펜의 잉크가 터져 필통 안을 피바다로 만들어 놓은 상황이다.

잉크는 애빈의 손에도 덕지덕지 묻어버렸고 동현은 대신 의자를 빼줬다.

동현의 도움으로 겨우 의자에 앉은 그녀는 자신의 손부터 대충 닦아내고 피해 규모를 파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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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여기에 올려놓고 해결하세요."

그는 A4용지 한 장을 옆에 놔줬다.

펜들이 종이 위로 하나씩 떨어졌다, 서로 끈적하게 엉겨 붙어 보기만 해도 한숨이 새어 나왔다.

서애빈

"... 동현아, 샘 도와줄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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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당연하죠."

그렇게 둘은 10여 분 동안 수많은 펜들을 정신없이 닦아냈다.

당연히도 손은 엉망이 됐고 어쩌다 보니 얼굴에도 조금씩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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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샘, 이 종이는 뭐예요? 뭐 적혀 있는데."

필통 안에 또 뭐가 남았는지 확인하던 그가 종이 하나를 꺼내 들었다.

서애빈

"응? 어... 아, 맞아. 아까 도서관에서 어떤 사람이 자리에 붙여놓고 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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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뭐 적어놓고 갔어요?"

서애빈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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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오올~."

동현은 능글맞은 표정으로 애빈을 바라봤다.

서애빈

"뭔 오올이야."

애빈은 피식 웃으며 펜들을 가방에 있는 작은 주머니에 넣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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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잠깐만요, 그 필통 버리시고 제 필통 하나 드릴까요?"

서애빈

"어어, 그럼 고맙지."

허리를 숙여 서랍을 뒤적거리더니 거의 새것인 필통 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서애빈

"땡큐!"

펜들을 모두 담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애빈

"손 씻고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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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그래요."

동현의 엄마

"둘 다 손이 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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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펜 잉크가 터졌어요."

동현의 엄마

"아아..."

둘은 화장실에 들어가 세면대 앞에 나란히 선 후 손을 닦았다.

잘 닦이진 않았지만.

서애빈

"얼굴에 묻은 건 왜 번지기만 하고 안 닦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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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집 가서 세수하시면 되죠."

서애빈

"그치, 얼른 수업하자!"

방에 들어온 지 약 20분 만에 드디어 정상적인 수업을 시작하게 됐다.

.

..

...

수업 시간이 7분 남았을 때 조금 쉬고 싶어진 그는 대화의 운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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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근데 저 전화번호 뭔지 몰라도 돼요?"

서애빈

"네 전화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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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아뇨아뇨, 이거요."

책상 한구석에 버려져있던 작은 쪽지를 집어 들었다.

서애빈

"흠,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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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연애할 생각 없어요?"

서애빈

"풉, 혼자 너무 간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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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번호 남기는 거면 관심 있다는 거죠!"

그는 쪽지를 뚫어져라 보더니 번호를 깨끗한 종이에 옮겨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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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이거 주면서 그 사람이 뭐라 했어요?"

서애빈

"제 번호니까 연락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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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끝?"

애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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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엥, 좀 싱겁네. 연락해 볼 거예요?"

서애빈

"동현이가 번호 복원해 준 김에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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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잘되면 고기 사주기?"

서애빈

"김칫국 마시기는, 그때 기분 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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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좋아요!"

동현은 고기 먹을 생각에 벌써부터 헤헤 웃었다.

.

하지만 동현은 살면서 가장 후회하는 일이 애빈에게 그의 번호를 준 것이 됐다.

자신이 과거로 간다면 절대로 연락하라고 하지 않았을 거라고 그 종이를 찢어버렸을 거라고.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