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관전중

(백 명 특별편) 진짜 예화는 지금

나는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 했다.

사실, 한 달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조차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간단하게 설명해주겠다.

내 이름은 한예화, 시섬을 가진 열여덟 살, 유토피아에 다니는 실런의 빈민가 출생 소녀이다.

그리고 지금, 불가피하게 열여섯 살 000의 몸에서 생활하고 있다.

000

여기가, 어디야…?

미러 근처에서 천천히 걸으며 산책을 하던 중, 이상하게 생긴 물병을 찾았다.

우리가 주로 쓰는 물병들과는 전혀 다른, 유리가 아닌 무언가로 이루어져 있는 물병이었다.

속에 들어있는 것은 그냥 물이었지만, 뚜껑이 돌려서 여는 형식이라 그걸 열어보느라 고생깨나 했다.

그리고 신중히 냄새를 맡다가, 한 모금을 마셔보았다. 내 호기심이란 끝도 없으니.

그런데.

한예화 image

한예화

…아아아악!

머리가 종잇장처럼 죽죽 찢어져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서운 감정이 훅 끼쳐 귀를 막았는데, 눈을 뜬 곳은 어느 작은 교실이었다.

내가 방금 마신 물병이 내 손에 들려 있었지만….

옷이 바뀌어 있었다.

하얀 와이셔츠? 게다가, 안감이 있다?

겉옷을 만지작거리자 누가 봐도 빳빳한 재질의 마이가 손에 집혔다.

000

이게 뭐지…?

나는 혼자 중얼거리다가, 주변을 더 자세히 둘러보기로 했다.

짙은 녹색 칠판에, 선생님처럼 보이는 사람이 흰색으로 된 분필로 보이는 물체로 글씨를 쓰고 있다.

아이들은 전혀 즐겁지 않은 표정으로 책에 뭐라고 적어넣고 있었다. 깃펜이나 만년필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전부 특이하게 생긴 필기구로 글씨를 쓰고 있다.

끝을 눌러서 글씨가 써지는 검은 막대를 빼내는 형식의 펜이다.

나는 내 옷을 열심히 뒤져보았다. 주머니에 이름이 써진 판이 하나 있다. 작고, 뒤에 뾰족한 뭔가가 달려있다.

000

…「000」…?

사람 이름으로 보이는 세 단어가, 그 명패 위에서 빛났다.

처음에는 내가 좋아하는 사랑이야기 같은 곳에서 나오는 평행세계인 줄 알았는데, 내 이름 같은 게 다른 걸 보니 그건 아닌 거 같고.

난 조심히 선생님의 눈치를 보며 사회과 부도라고 적힌 책을 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언어인데, 특이하게도 알아들을 수는 있다.

000

…대한민국.

선생님

000!

그 때, 선생님이 몸의 주인 이름을 불렀고, 나는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교실의 아이들이 전부 나를 바라본다.

000

네, 네!

선생님

공부에 집중해야지, 곧 시험인데. 수학 시간에 역사를 보고 있으면 어쩌니?

000

네에, 잠깐 확인할 것만 봤습니다.

나는 단정하게 책을 집어넣었다.

마법도, 저주도 없는 이 대한민국이라는 곳은 어디일지. 또 왜 학생들이 전혀 기쁘지 않은 표정으로 공부를 하는 건지.

수업시간 한참 동안 보이는 걸 이 아이의 노트에 다 적어넣었다.

그 때, 난잡한 전자음이 구멍이 한가득 뚫린 하얀 상자에서 갑자기 튀어나왔다.

엑스트라

아, 쌤 종 쳤잖아요! 저희 밥 먹어야 돼요!

한 여자아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수업시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거울만 보고 있던 아이였다. 이곳의 거울은 놀라울 만큼 반사력이 강했다. 꼭 미러처럼.

우리는 모습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는데…. 대한민국이라는 곳은 어디일까?

선생님

아 그래, 그래. 끝내자.

저게 종소리라고?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조잡한 피아노 소리 몇 번이 종소리란 말이야?

아니, 종이 치지 않는데 왜 저게 종소리야!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앞을 바라보자 선생님이 묻는다.

선생님

000, 왜 그렇게 바라봐. 질문 있니?

000

아, 아니요. 아닙니다.

나는 고개를 도리젓고 조심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릎 살짝 위까지 올라오는 치마가 거슬린다. 치마라니, 웬만해선 안 입는데.

그보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한 키가 자그마한 여자아이가 나에게로 달려온다.

그 아이의 명패에 적혀 있는 이름은, 이혜진이다. 이혜진?

이혜진 image

이혜진

야, 000!

000

어?

이혜진 image

이혜진

점심시간이랑께, 오늘 매점 갈 겨? 빨리 말해.

000

매점?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그 아이도 같이 고개를 갸웃한다.

이혜진 image

이혜진

어, 오늘 메뉴 봐야지. 김선빈한테도 물어봐.

000

김선빈?

나는 깨달았다. 여기서 의심을 안 받으려면 자연스럽게 적응해야 한다는 걸.

그리고 수업시간에 남학생들이 쓰던 말을 말 중간중간에 섞었다.

언제 돌아갈진 몰라도, 이 몸의 주인에게 해를 끼쳐선 안 되겠지.

000

야, 오늘 걍 매점 기기. 점심 맛 존나 없을 거 같아. 콩밥 실화야?

이혜진 image

이혜진

아, 그거 인정. 초코빵 사먹을래?

000

몰라, 아무거나 취향인 거 질러야지.

이혜진 image

이혜진

김선 부르자 김선. 야 김선빈!

이렇게 하면 되겠지?

그로부터 일 주일쯤이 지났다.

나는 이 000의 몸으로 평소에 친했던 아이들뿐만 아니라, 처음 보는 아이들과도 친해지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다.

수업시간에는 열심히 들리는 대로 노트에 필기를 했다. 그리고 깨달은 것은 하나였다.

이 수많은 알파벳들의 향연이 수학이라니, 미친 거 아니야?

하지만 과학과 언어는, 처음 배우기 시작했음에도 너무 쉬웠다. 쉬운 수준을 넘어서 간단했다.

원래도 좋아하는 과목인 수학을 못 하게 된단 건 너무 슬펐지만, 일 주일 간 집에 들어가기만 하면 인터넷 강의를 찾아보았다.

이 세계에선 인강이라고 하던데, 무튼. 그렇게 죽어라 하니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학원이라는 게 있었다. 학교가 끝나고 나면, 학생들이 문제집이라고 하는 교과서의 일종과 연필들을 챙겨 보충학습을 위해 가는 곳이었다.

보충학습이라니, 완전 멋지잖아! 모든 걸 알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난 그곳이 학교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싸늘하게 얼어붙은 분위기에, 그저 종이만 조용히 풀고 있는 학생들. 선생님들은 뭔가를 열심히 설명했지만 아이들은 집중하고 싶지도 않아 보였다.

…뭘까.

사실, 처음 학원에 갔을 때는 당혹스러웠다. 지금도 조금은 그렇다.

하지만 다행히도 적응하는 방법을 배웠고 적응하면 할수록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마지막. 엄마라는 사람을 보았다.

엄마

000, 들어오니.

000

…엄마?

엄마

왜?

가족, 부모, 내가 결핍되어 있던 존재라 그런지. 난 000의 엄마라고 하는 사람을 보자마자 왈칵 울음부터 터뜨렸다.

엄마

어이구, 얘가 얘가. 왜 울어 갑자기? 무슨 일 있었어? 왜, 점수라도 잘 못 받았니?

000

아니요, 아니요 엄마….

엄마

존댓말까지 하고, 왜 그래? 어디 아파? 학원 가기 싫어?

엄마라니, 000은 행복하겠다.

나는 이 아이를 대신해서 내가 머무를 얼마인지 모를 기간 동안, 이 000의 엄마가 바라는 가장 큰 점인 똑똑한 딸을 충족시켜주고자 했다.

사실 전에도 한 모르는 사람의 몸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이렇게 움직이지는 못 했지만.

하지만 그 때는 일주일만 머무르고 다시 돌아갔는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이 주가 흘렀다. 한예화의 몸에 돌아가지 못 한 채로.

결론만 말하자면, 놀라우리만치 똑같은 일상이었다. 학교를 갔다가, 집에 왔다가, 학원을 갔다가, 집에 와서, 인강을 듣고, 잠을 잔다.

친구가 시험을 본다는 소식을 알려온 것이 다른 점이었다.

날짜는 다음 주, 난 여태껏 메모해둔 모든 점들을 죽어라 뒤져서 이 아이의 어머니에게 감사를 표하고자 했다.

비문학, 삼각비, 또 수많은 숫자들과 영어, 중국어. 한자와 역사…….

매일을 공부에 한을 쏟으며 지냈다. 원래 몸에서 지능이 좋았기도 했고, 한을 품으면 뭐든 가능했으니까.

마법이 없는 나날이 지루하진 않았다. 오히려 진부하지 않아서 더욱 재미있었다. 수준 높은, 안녕 클레오파트라 같은 게임이 많기도 하고.

그리고 삼 주, 어머니에게 삼 학년 석차 일 등이라는 수치를 안겨드리고야 말았다.

이 아이의 어머니는 크게 기뻐하시면서 이 아이의 아버지에게 알려드렸다.

아이의 아버지는 다른 곳에서 홀로 아이를 위한 돈을 벌어오고 있었지만, 그 소식이 전해지자 000의 집까지 찾아왔다.

000

사랑, 가족의 사랑.

나에게는 벨라밖에 없었는데, 예쁘게 꽃이 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 이 아이에게는 조금 버거운 탈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면 내가 미리 여기에 메모를 해 주면 되잖아.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점수가 잘 나오는지, 포스트잇이라는 작은 종잇장에 메모를 해서 붙여주면 이 아이도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 000은 사랑을 받아 마땅한 존재일 것이다.

시험이 끝나고, 아이의 친구들은 나를 불렀다.

이혜진 image

이혜진

000 뭐야, 왜 공부 잘하냐. 개웃겨.

000

아몰랑, 하다 보니 되드라. 니들도 함 해봐,

김선빈 image

김선빈

와 진짜 내로남불 지려. 언제는 나 전교 십이 등 했다고 지랄지랄 별 지랄을 다 하더니.

나는 그 때 한 무리의 사람이 복도에 걸터앉아 있는 것을 봤다.

000

아 미안해~ 야, 근데 쟤네 누구냐? 좀 분위기 이상하지 않어?

나는 슬쩍 그 누가 봐도 좀 놀고 다니는 아이들을 곁눈질했다. 네 명 즈음 되는 남자아이 무리였다.

김선빈 image

김선빈

쟤네 몰라? 뭐 잘생겼다 말빨 좋다 그러면서, 존나 뜨잖아 지금, 누군 착하다고도 하는데….

000

하는데?

이혜진 image

이혜진

아, 질문할 필요도 없이 걍 개소리지. 양아치가 착하겠냐?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고 그래.

양아치. 실런에서도 많이 본 인간들이다. 자신보다 약하다고 생각하면 그저 꺾어내리고, 간혹 예쁜 아이가 있으면 끝도 없이 따라붙는다.

열여섯 살 때에 한 번 당해본 적이 있고, 아주 쓰레기같았다. 왜인진 모르겠지만.

000

쟤네 이름이 뭔데?

이혜진 image

이혜진

기억 안 나.

김선빈 image

김선빈

난 앎.

김선빈 image

김선빈

황민현이랑 강다니엘이랑, 그 뭐냐, 하나 더 있었는데.

000

다니엘? 이름이 그래? 어디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 같다.

김선빈 image

김선빈

어. 이름이래.

이혜진 image

이혜진

미친, 개명한 겨?

김선빈 image

김선빈

몰라 새끼야, 오늘따라 질문이 많아 왜.

000

아 알았어, 그래서 하나 더 뭔데?

이혜진 image

이혜진

그 누구냐, …누구냐. 김선빈 아냐?

김선빈 image

김선빈

왜 나한테 덮어씌워.

000

그래서 누군데?

어딘지 나를 돌려보내줄 수 있을 것만 같은 상태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양아치라는 게 좀 접근하기 힘들었지만.

내가 가만히 고민하고 있는 동안에도, 선빈이와 혜진이는 계속 이름이 뭐네 하며 다투었다.

김선빈 image

김선빈

그, 아, 그, 짹짹이 있잖아.

이혜진 image

이혜진

뭔 짹짹이, 파랑새? 트위터?

김선빈 image

김선빈

아니 새끼야. 뭐야… 박, 박. 뭐냐. 이름이 기억이 안 나네.

박우진 image

박우진

박우진.

김선빈 image

김선빈

와악 시앙!

박우진 image

박우진

박우진.

그 때, 무리의 한 남자아이가 우리 옆에 서 있었다.

나야 박지민 튀어나오는 거 하루 이틀 아니라서 적응했지만, 다른 친구들은 놀랐는지 가슴을 부여잡는다.

그 애… 그러니까, 박우진은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본다.

박우진 image

박우진

넌 안 놀라냐.

000

놀라야 하냐.

박우진 image

박우진

키야, 말투 봐라. 니 되게 겁이 없거나 아님 빽이 있거나 둘 중 하나겠네.

000

빽은 모르겠고, 겁이 원래 없는데.

열심히 받아치자 박우진이 피식 웃더니 무리 쪽으로 걸어가서 나에 대해 뭐라고 말한다.

다른 애들이 다 내 쪽을 바라보고, 내 친구들은 아연실색해 있다.

엑스트라

야.

000

누구야?

황민현 image

황민현

쟤 친구고, 황민현인데, 말 왜 그렇게 해?

아니, 원래 겁이 없는데 겁이 없다고 대답한 걸 내가 어째야 하냐고.

쟤네도 나이 어린 도적공갈단 비슷한 애들인가…. 나는 아직 학교에 완벽히 적응하진 않은 거 같다.

000

원래 겁이 없어.

황민현 image

황민현

하, 안 무서워?

그 차갑게 생긴 아이는 피식 웃었다. 서로 친한 관계가 아니니 표정을 알 수가 없다.

000

무서워야 해? 너희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인데?

황민현 image

황민현

뒤질 수도 있으니까.

000

너희한테?

아참, 여기는 시섬 없지. 까먹을 뻔 했네. 나는 바로 정신을 차리고 최대한 친절한 표정을 지었다. 00이에게 해를 끼치면 안 되니까.

000

…뭐가 필요한데?

황민현 image

황민현

그냥, 너 좀 특이하다 싶어서. 그러다간 위험해지겠네.

000

내가?

황민현 image

황민현

응. 네가.

그 아이는 가볍게 돌아서더니 애들을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가버렸다.

뭐지 싶어 고개를 갸웃하니, 혜진이가 말해 준다. 떨리는 목소리이다.

이혜진 image

이혜진

야, 너 황민현한테 찍힌 거 같은데….

000

찍혀? 뭐가?

김선빈 image

김선빈

눈엣가시 됐다는 거지. 뒤질 수도 있다는 거고. 진짜 내 친구를 어쩌면 좋냐.

000

…뭐어어어어?

00아, 미안해. 내가 네 몸을 잘못 사용한 거 같아.

예화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에 대한 스토리가 나왔네요!

성격이 워낙 활발하고 친절한 탓에, 친구들과는 물론 000의 반 아이들과도 교류하고 있답니다. 다만 양아치들을 너무 싫어하는 바람에. (안습)

백 명의 애기님들께 너무너무 감사해요ㅠㅠ 앞으로 된다면 이백 명 삼백 명 쭉쭉 달려요!

예화도 나름대로 찍혀서 고생중이에요….

그리고 이번 편은 워너블님들을 위한 편. 다음 내용은 각자 기대하시기로. 희희.

아무튼 구독자 백 명 너무너무 감사하구요, 앞으로도 더 좋은 내용과 전개로 찾아뵙도록 할게요!

그럼 인예님은 이만…! 늘 좋은 하루, 좋은 오늘 되세요!